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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진재 Mar 11. 2018

스톡홀름 신학대학교를
리브랜딩하다 (상)

스웨덴 디자인 스쿨 하이퍼 아일랜드 유학 이야기 #12

디자인 매거진 CA에 실린 하이퍼 아일랜드의 기록 2부 브랜딩 모듈 기사 일부입니다.

전문은 CA 2018년 1-2월호에서 확인하세요. 


1주차 클라이언트 브리프 

기다리고 기다렸던 클라이언트 발표. 슬라이드를 넘기자 화면에 클라이언트 이름이 어렴풋이 보인다. 다른 팀 클라이언트로 금융 스타트업, 패션 회사 등이 있었던 가운데 우리 클라이언트는 무슨 대학이란다. 어째 이름이 길다. 자세히 읽어보니 스톡홀름 신학대학교 Stockholm School of Theology 라고 쓰여 있다. 신학대학교라니. 설렘이 실망, 아니 당황으로 바뀌는 순간. 팀원들 표정을 살펴보니 당황스럽긴 마찬가지다. 우리는 갈 곳 없는 마음을 부여잡고 책상 앞에 앉았다. 


뭐부터 해야 할까. 클라이언트를 바꿀 수 있는 건 아니었기 때문에 일단 과제부터 파악하기로 했다. 과제는 생각보다 넓고 흥미로웠다. 스톡홀름 신학대학교에 속한 인권 학부를 포괄하는 새로운 학교 이름과 비주얼 아이덴티티 정립하기. 과제 정리가 끝나고 우리가 제대로 이해했는지, 우리가 클라이언트와 같은 그림을 그리고 있는지, 우리에게 무엇을 제공할 수 있는지, 또 우리에게 무엇을 기대하는지 구체화하기 위한 첫 번째 미팅을 잡았다. 그래, 어디 한 번 해보자.  


다 같이 모여 클라이언트를 만나러 가는 길, 지하철이 말썽이다. 늦는다고 연락을 했더니 아주 짧게 알겠다고 답장이 왔다. 시작도 안 했는데 벌써 불안하다. 시간에 민감한 스웨덴 친구들은 얼굴이 점점 사색이 되어간다. 다른 친구들은 우리가 잘못해서 늦은 것도 아닌데 어쩔 수 없지 않느냐며 걱정하지 말자고 말한다. 하긴 뭐 어쩔 수 있나. 액땜했다고 치는 수밖엔. 그렇게 30분을 늦어서 학교에 도착했다. 미팅은 스톡홀름 신학대학교 총장 우베와 홍보 담당자 소피아가 참석했다. 서로에 대해 간단히 소개한 후 우베가 학교와 과제에 대해 더욱 자세히 이야기해주었다. 


스톡홀름 신학대학교는 스톡홀름 브롬마 지역에 위치한, 설립된 지 20년 된 단과 대학으로 학생 200명이 재학 중인 작은 학교이다. 그런데도 신학과 인권 교육에서는 스웨덴 다른 대학과 비교할 수 있을 정도로 높은 수준의 교육을 제공하고 있다. 문제는 인권 학부다. 학교 절반가량을 차지하고 있는 인권 학부는 학교 이름 때문에 모든 학생이 신학 전공 혹은 종교인으로 오해 받고 있으며, 그로 인해 취업 시장에서 종종 불이익을 받고 있다. 학교 측은 그 해결책을 리브랜딩이라고 생각했고, 하이퍼 아일랜드에 그 작업을 의뢰한 것이었다. 


회의는 한 시간 반가량 진행되었다. 우리는 궁금한 내용을 빠짐없이 물어봤고, 우베와 소피아는 우리 질문에 솔직하게 답해주었다. 회의가 끝나고 나오면서 팀원 모두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우리 걱정과 달리 클라이언트는 새로운 아이디어에 열려있었고, 네이밍부터 디자인까지 브랜딩의 모든 영역을 커버할 수 있다는 점에서 프로젝트도 더 흥미진진해 보였다.



2주차 리서치 

가벼운 마음으로 학교에 돌아와 리서치 계획을 짰다. 무엇을 알아야 할까. 어떻게 찾아야 할까. 어디서 찾아야 할까. 일단 학교 구성원의 생각이 궁금했다. 교수, 학생, 임원진에 학교, 학교 이름, 로고 디자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어보았다. 학생 대부분이 스웨덴 사람이기 때문에, 스웨덴어가 가능한 굴리 형, 크리스티나, 잭이 직접 학교에 찾아가 대면 인터뷰와 전화 인터뷰를 진행했다. 카롤리나는 설문조사를 만들어 그들이 생각하는 학교 이미지를 알아보았다.  


인터뷰 내용은 꽤 긍정적이었다. 인터뷰이 모두 학교에서 제공하는 교육에 만족하고 있었고, 자기전공에 자부심을 느끼고 있었다. 다만, 인권 학부 학생들은 학교 이름에 불만을 느끼고 있었으며 종종 소외감을 느꼈다. 로고 디자인에 대해서는 의견이 갈렸으나, 로고 안에 기독교 상징인 물고기가 있다는 점 그리고 아직도 저런 로고를 사용하고 있다는 점에 대다수가 놀랐다. 이런 경향은 전교생의 30%가 참여한 설문조사에서도 찾아볼 수 있었다. 


우리는 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한 더 큰 이야기가 궁금했다. 스웨덴에서 종교는 어떤 의미일까. 변화에 어떻게 대처하고 있을까. 다른 종교는 어떻게 하고 있을까. 더 나아가 종교는 미래에 어떤 역할을 해야 할까. 다른 신학교는 어떻게 브랜딩하고 있을까. 나와 비슈누, 아드리안은 일단 데스크 리서치를 통해 기본적인 내용을 조사했다. 이 내용을 바탕으로 서로 끊임없이 토론하며 각 주제에 대한 답을 조금씩 찾아 나갔다. 


그 결과 우리는 스톡홀름 신학대학교가 리브랜딩을 하고 싶어 하는 이유를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스웨덴은 현재 무신론자와 무종교 인구가 다수를 차지하고 있으며, 그나마 있었던 종교 인구도 감소하고 있다. 게다가 교회세를 강제하는 문제까지 겹쳐 젊은 층 사이에 교회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자리 잡고 있다. 스웨덴 교회는 이런 변화에 따라가기 위한 시도를 하고 있었으며, 스톡홀름 신학대학교의 리브랜딩도 사회에 녹아들기 위한 시도 중 하나로 해석할 수 있었다. 


우리는 지금까지 진행한 리서치에서 지금 브랜딩이 가진 세 가지 문제점을 찾았다. 첫째, 스톡홀름 신학대학교라는 이름과 로고 디자인에 담긴 종교적 의미가 학교에 학생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는 것. 둘째, 학교 구성원 전부를 포괄하지 못한다는 것. 마지막으로 잘못된 커뮤니케이션으로 학교 안팎에 잘못된 브랜드 이미지를 심어주고 있다는 것.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어디서부터 접근해야 할까.



3주차 전략  

우리는 스톡홀름 신학대학교가 가야 할 방향을 수립하기 위해 스타이너가 알려준 대로 새로운 브랜드 플랫폼을 구축하고, 그 내용에서 브랜드 가치를 도출하기로 했다. 이 학교의 본질은 무엇이고, 핵심 가치는 무엇일까.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웹사이트 내용, 학교 홍보물, 클라이언트가 제공한 자료, 리서치 내용을 포스트잇에 옮겨 적고, 하나씩 붙이면서 각 내용이 서로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논의하고 그 답을 브랜드 플랫폼에 하나씩 채워 넣었다. 


스톡홀름 신학대학교는 소명의식을 가진 학생이 더욱 거시적인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보고 이해하여,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데 일조할 수 있도록 올바른 지식과 방법을 제공하는 교육 기관이다. 이들이 추구하는 가치는 세 가지다. 첫 번째, Humane(인도적인). 신학과 인권 모두 타인에 대한 이해와 공감을 기본으로 하는 학문이며, 작은 규모 덕분에 학생과 교수가 개인적으로 교류할 수 있다. 두 번째, Open(열려있는). 다양성을 인정하고, 추구하고 있으며, 학교에 있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제공하는 교육 전반에도 그 사상이 녹아있다. 마지막, Dedicated(헌신적인). 신학과 인권 모두 높은 수준의 교육을 제공하고 있으며 재학 중인 학생 대다수가 열정적이다. 


전략 수립 마지막 단계로 브랜드 스프린트를 진행했다. 구글 벤처스가 공개한 브랜드 스프린트는 사람마다 다른 브랜드에 대한 추상적인 생각을 짧은 시간 안에 구체적인 단어와 문장으로 정리해주는 워크숍 툴이다. 그 결과 팀원 모두 브랜드에 대한 공통적인 언어를 갖게 되고, 네이밍, 로고 디자인, 어조를 보다 쉽게 정할 수 있게 된다. 


우리는 이미 상당 부분을 완성했기 때문에 여섯 단계 중 세 단계만 진행했다. 먼저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면 좋을지 알아보기 위해 20년 로드맵을 그렸다. 이어서 현재 어떤 성격의 브랜드이고, 어떻게 나아가고 싶은지 확인하기 위해 퍼스널리티 슬라이더를 그렸고, 마지막으로 다른 브랜드와 비교했을 때 현재 어디에 있고, 어디로 가야 하는지 확인하기 위해 포지셔닝 맵을 그렸다. 



사실 이 많은 작업을 하면서도 과연 우리가 제대로 가고 있는지 불안했다. 일단 스타이너에게 피드백을 요청했다. 스타이너는 일단 어려운 주제였는데 잘 정리했다는 말로 우리를 안심시켰다. 그리고 우리가 만든 많은 내용 중, 클라이언트가 필요한 내용 위주로 좁혀 들어가면 좋겠다는 의견을 주었다. 우리는 이 여세를 몰아 클라이언트와 현재까지 진행된 내용을 공유하고, 어떻게 생각하는지 피드백을 받아보기로 했다. 


스타이너 의견처럼 중요한 내용만 추려서 슬라이드에 정리한 후, 학교에 직접 찾아가서 우베와 소피아 앞에서 간단한 프레젠테이션을 진행했다. 그들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우리가 학교에 대해 잘 조사했으며,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말해주었다. 그리고 네이밍의 경우 마땅한 대안이 없다는 걸 자신들도 수년간 고민을 했다 보니 잘 알고 있다면서, 정말 좋은 아이디어가 있다면 제안하면 좋겠지만 너무 부담 갖지 않아도 괜찮다고 덧붙였다. 클라이언트와 같은 곳을 바라보고 있다는 걸 재차 확인하고, 최종 결과물에 대한 부담도 덜 수 있었던 좋은 중간 점검이었다.



+ 퍼블리와 인터랙션 디자인에 관한 리포트 열심히 쓰고 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아래 링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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