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진재 Aug 05. 2018

힙스터 강박증의 다섯

만드는 사람은 없고, 편집하는 사람만 가득하다

1. 친구와 이태원에서 점심을 먹고 사운즈 한남에 갔다. 스틸 북스에 들어가 한층 한층 둘러보는데 불현듯 위화감이 들었다. 어디서 본 것 같은 공간, 어디서 본 것 같은 책, 어디서 본 것 같은 상품. 책은 들러리였고, 나는 들러리를 보러 온 불청객이었다. 나는 황급히 그 자리에서 벗어났다. 


2. 요즘은 어디를 가도 비슷비슷하다. 사운즈 한남, 회현동 피크닉, PARRK  모두 어디서 본 것만 같다. 정확히 말하면 다이칸야마 츠타야 서점, 에이스 호텔, 블루보틀 커피, 혹은 포틀랜드 어디에 있는 카페 같다. 만드는 사람은 없고, 편집하는 사람만 가득하다.


3. 작년에는 인스타그램 피드에 포틀랜드 여행사진이 조금 올라오는가 싶더니 올해는 포르투갈 여행사진이 계속 올라온다. 도쿄와 교토 여행 사진은 꾸준히 올라온다. 방문지는 대부분 비슷하다. 이럴 거면 차라리 힙스터 패키지 여행을 만드는 게 낫지 않을까? 세명은 요즘 같이 여행이 유행인 시대에는 집에서 에어컨 틀고 쉬는 게 가장 힙하지 않냐고 물었다. 일리 있는 말이다. 


4. 출국 전 날, 무더위를 뚫고 앤트러사이트 서교점에 갔다. 아이스 드립 커피 한 잔 주문하고 자리에 앉았다. 이리저리 두리번거리며 사진을 찍다가 가져온 책을 꺼내 읽었다. 글이 천천히 눈에 들어온다. 조용한 분위기에서 차분하게 커피 한 잔 마시면서 쉴 수 있는 곳, 나는 그런 공간을 찾고 있었던 것 같다. 그게 동네 이름 모를 카페면 어떻고, 스타벅스면 어떻고, 탐앤탐스면 어떤가. 힙스터 강박에 빠져 원래 목적을 잊고 있었다.


5. 취향. 마음이 가는 방향. 아무도 상관할 필요 없는, 누구의 허락도 필요 없는 내 마음의 방향. 좀 촌스럽더라도, 좀 볼품없더라도, 좀 웃기더라도 이것은 나의 취향. 나의 소중한 취향. 하루의 취향, 김민철, 7쪽


좋은 커피와 함께한 좋은 시간이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