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진재 Aug 04. 2018

지긋지긋한 열대야의 다섯

잘 있어라, 지긋지긋한, 그럼에도 또 보고 싶을 것 같은 여름아.

1. 잠이 안 온다. 너무 덥다. 뜨겁다는 말이 조금 더 잘 맞는 것 같다. 이런 날씨에 회사까지 다녔다면 분명 끔찍한 여름이었겠지. 몇 시간 동안 침대 위에서 천천히 녹아내리다가 결국 바닥에 눌어붙었다. 이제 좀 잠이 오려는데, 암막 커튼 사이로 햇살이 비집고 들어온다. 


2. 여름이 되면 엄마는 어디선가 덤으로 받은 작은 연두색 선풍기를 꺼내 주시곤 했다. 바람이 썩 세지도, 편하지도 않지만, 제 몫은 묵묵히 해내던 그런 작고 귀여운 선풍기. 이 녀석이랑 그 무더운 여름밤을 꾸역꾸역 버텨내곤 했는데. 


3. 지금은 그 자리에 에어컨이 있다. 버튼 한 번 누르면 찬 바람이 쌩쌩 나오는, 시원하고 편리한 문명의 이기. 그러나 여름밤은 전보다 더 길고, 잠들지 못해 괴롭다. 오늘따라 작고 귀여운 그 연두색 선풍기가 생각난다. 


4. 얼마 전 기다리던 비자가 나왔다. 드디어 스톡홀름으로 돌아간다. 참 오래도 기다렸다. 두 가지 생각이 머릿속을 맴돈다. 더 일찍 갈까? 조금 더 있다가 갈까? 이번에는 조금 타협해서 원래 계획보다 하루 늦게 가기로 했다. 


5. 잘 있어라. 무덥고도 습하던, 매일 밤 잠 못 들던, 밤새 에어컨을 껐다 켰다 하던, 잠보다 아침이 먼저 찾아오던, 지긋지긋하던, 그럼에도 또 보고 싶을 것 같은 여름아. 


내년 여름은 조금 시원했으면 좋겠다
이전 08화 무더위에 녹아내린 한낮의 다섯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