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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진재 Aug 29. 2018

특별한 일도 없고, 딱히 바쁘지도 않은 오후의 다섯

할 수 있는 만큼, 욕심부리지 않고, 무리하지 않고

1. 출근 3주 차. 특별한 일도 없고, 딱히 바쁘지도 않다. 인턴 때처럼 내 자리가 어디인지, 어떤 역할을 하면 좋을지 천천히 살펴보고 있다. 인턴 때처럼 조급하지는 않다. 비자가 있는 동안은 괜찮을 테니까. 잠시 한국에 있었다고 영어가 다시 말썽이다. 다음 주 지나면 조금 괜찮아지겠지. 스톡홀름은 그 사이 여름에서 가을로 접어들고 있다. 환절기라 감기 환자가 속출하고 있는데, 아직까지는 잘 버티고 있다. 뭐 그렇다. 아직까지는 그럭저럭 괜찮다. 대단히 행복하지도, 딱히 불행하지도 않은 평범한 오후가 지나가고 있다.


2. 에어프라이어로 후라이드 치킨 만들기에 도전했다. 에어프라이어로 치킨이라니, 이 무슨 건강한 패스트푸드, 무한동력, 혹은 무안단물 같은 소리란 말인가. 믿음에 도전한 결과는 처참했다. 치킨의 8할은 기름 덕분이라는 걸 배운 저녁이었다.


3. 요즘 참 말이 길다. 조언과 오지랖, 선배와 꼰대의 경계에 있는 말을 자주 한다. 말하면서 아차 싶다가도 멈출 수 없어서 적당히 얼버무리고는 집에 가서 후회한다. 정리가 잘 안 되거나, 내 세상에 빠져 주위를 제대로 둘러보지 않는 모양이다. 입보다 귀를 열고 살아야 하는데 몇 달 동안 무언가에 취해서 정신을 못차리고 지냈다. 숙취가 꽤 오래 갈 모양이다.


4. 한 동안 내 선택이 틀리지 않았다는 걸 증명하고 싶었다. 소셜미디어에 행복 냄새가 풍기는 사진을 올렸다. 그렇게 받은 관심은 잠시나마 위안이 되었다. 그러다 곧 현타가 온다. 허무함과 공복감이 밀려든다. 이게 무슨 의미가 있나 싶다. 다른 사람 인스타그램에 들어가 그들의 행복을 훔쳐보고, 잔뜩 부러워한다. 남들이 부러워한다고 내 삶이 행복할 거라는 생각은 큰 착각이었다.  


5. 지금은 다행히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다. 화면 밖에서 살고자 애쓰고 있다. 일은 여전히 이것저것 하고 있지만, 굳이 서두르지 않는다. 내키지 않는 일을 할 생각도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욕심부리지 않고, 무리하지 않고 해낼 뿐이다.


어느 비오던 스톡홀름의 저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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