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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진재 Sep 06. 2018

유난히 정리 안 되는
하루하루의 다섯

뭐가 되었든, 나만 잘하면 된다

1. 유난히 정리가 안 되는 요즘. 전반적으로 의욕이 없다. 잘 쳐내고 집중할 수 있으면 좋을 텐데 마음처럼 안 된다. 하기 싫다고 안 할 수는 없는 일들이라 결국은 해야 한다. 이럴 때는 잘하려는 마음을 내려놓고 하나씩 차분하게 해내는 수밖에 없다. 


2. 엊그제 지인의 새벽 감성에 취해 둘이 한참 동안 뜬구름 잡는 대화를 나눴다. 음악 이야기에서 시작해서 재미가 어쩌고, 행복이 어쩌고, 사랑이 어쩌고 하다가 나름 정리가 되었다. 행복이라고 별다른 거 없다. 좋은 일 있으면 맥도날드 가서 맥플러리 사 먹고, 좋은 일 있었다고 좋은 사람이랑 이야기하고, 힘든 일 있으면 집에 가서 맛있는 거 먹고, 같이 있으면 편한 사람이랑 이야기하면서 풀고, 뭐 그런 거 아닐까.


3. 2년 전 스물아홉, 아홉수가 내 인생 여기저기를 태풍처럼 쓸고 지나갔다. 일도 연애도 모두 끝났다. 그동안 세운 인생 계획도 허사로 돌아갔다. 안이고 밖이고 성한 구석이 없었다. 이때부터 뭔가에 취해 바쁘게 살기 시작했다. 유학 계획도 세우고, 퇴사 계획도 세웠다. 밴드도 하고, 공연도 보러 다녔다. 틈틈이 영어 공부도 하고, 코딩 공부도 했다. 그렇게 2년이 흘렀다. 나는 그때와 얼마나 다른 삶을 살고 있을까. 


4. 소확행으로는 어림없다. 잠깐 행복할지는 몰라도 카드 값이 안 나가는 것도 아니고, 방에는 안 쓰는 물건만 늘어난다. 기왕 소비로 행복할 거라면 크고 확실한 걸 사고 싶다. 지금 재정 상황으로는 어림없지만 차를 산다던가, 집을 산다던가, 뭐 대충 그런 거. 내 집 마련의 꿈은 서른 넘어서도 요원하다.


5. 스톡홀름으로 돌아온지도 어느새 한 달이 넘었다. 특별히 한 것도 없는데, 시간 참 잘 간다. 지지난주에 새 집으로 이사 왔다. 지금까지 살았던 집 중에 가장 좋다. 안전하고, 깨끗하고, 조용하고, 세탁기도 집 안에 있다. 침대는 있는데, 책상이랑 서랍장이랑 스탠드를 사야 한다. 이케아 한 번 가야 하는데 왠지 갈 틈이 없다. 덕분에 짐은 아직도 바닥에서 뒹구는 중. 요리는 하는 둥 마는 둥 하고 있다. 아직 적응이 안되어서 그런가, 집에 오면 의지가 안 생긴다. 주말에 카쿠니 한 번 더 하려고 등심이랑 파 조금 샀다. 아 맞다. 생강도 사야 하는데. 수영은 이 핑계, 저 핑계 대면서 요리조리 잘도 피해 다니고 있다. 이번 주말에는 꼭 가야지. 회사는 아직 바쁜 일은 없고, 내부적으로 작은 변동이 있었다. 생각도 안 했던 일이라 조금 당황했지만, 어찌 보면 잘 된 것 같다. 뭐가 되었든, 나만 잘하면 된다. 서른한 살 생일은 이렇게 차분하고 조용하게 지나갈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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