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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진재 Jul 04. 2018

무더위에 녹아내린 한낮의 다섯

오늘은 뭐라도 해야지. 안되면 말고.

1.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종종 말했었다. 그런데 정작 그렇게 영향을 주고 보니 되려 겁이 나기 시작했다. 일순간 책임감이 밀려왔고, 한 동안 괜찮았던 위가 울렁거리기 시작했다. 내가 뭐라고 감히 타인의 삶에 영향을 주려고 했던 걸까. 글의 힘을 얕봤다. 나 자신을 과신했다.


2. 한 번의 강연, 두 번의 모임을 진행하면서,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되물었다. 결과물 하나 당당하게 보여주지 못하는 나는 과연 디자이너인가? 디자이너면 말보다 행동, 결과물이 앞서야 하는 게 아닐까? 소임이가 해준 이야기, 은경님과 나눈 대화가 머릿속을 맴돈다. 


3. 태풍이 물러간 자리에 더위와 습기가 눌러앉았다. 더워도 너무 덥다. 사진 한 번 찍겠다고 광화문에 갔다가 30분 만에 포기하고 그늘에 주저앉았다. 그 사이 스톡홀름에서 1년 동안 흘린 땀보다 더 많은 땀을 쏟았다. 제발 좀 살려주면 안 되겠니. 


4. 오랜만에 만난 후배에게 글이 나른해졌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딱히 틀린 말은 아니다. 어느 순간부터 인생이 단순해졌다. 멀리까지 생각하지 않게 되었고, 억지로 버텨내지 않게 되었다. 진 빠진 노래를 듣고, 진 빠진 하루를 보낸다. 악에 받쳐 무언가를 먹지도, 술을 마시지도 않는다. 반드시 해야 하는 게 없다. 재미없다. 그렇다고 재미를 찾아 나설 생각이 드는 것도 아니다. 그러려니 한다. 무더운 날씨 탓이라도 해본다. 딱히 도움이 되는 것 같지는 않다. 


5. 요즘은 boy pablo 노래만 듣는다. 그 나른함이 좋다. 오늘은 뭐라도 해야지. 안되면 말고.  

다시는 서울의 여름을 무시하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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