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뭐라도 해야지. 안되면 말고.
1.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종종 말했었다. 그런데 정작 그렇게 영향을 주고 보니 되려 겁이 나기 시작했다. 일순간 책임감이 밀려왔고, 한 동안 괜찮았던 위가 울렁거리기 시작했다. 내가 뭐라고 감히 타인의 삶에 영향을 주려고 했던 걸까. 글의 힘을 얕봤다. 나 자신을 과신했다.
2. 한 번의 강연, 두 번의 모임을 진행하면서,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되물었다. 결과물 하나 당당하게 보여주지 못하는 나는 과연 디자이너인가? 디자이너면 말보다 행동, 결과물이 앞서야 하는 게 아닐까? 소임이가 해준 이야기, 은경님과 나눈 대화가 머릿속을 맴돈다.
3. 태풍이 물러간 자리에 더위와 습기가 눌러앉았다. 더워도 너무 덥다. 사진 한 번 찍겠다고 광화문에 갔다가 30분 만에 포기하고 그늘에 주저앉았다. 그 사이 스톡홀름에서 1년 동안 흘린 땀보다 더 많은 땀을 쏟았다. 제발 좀 살려주면 안 되겠니.
4. 오랜만에 만난 후배에게 글이 나른해졌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딱히 틀린 말은 아니다. 어느 순간부터 인생이 단순해졌다. 멀리까지 생각하지 않게 되었고, 억지로 버텨내지 않게 되었다. 진 빠진 노래를 듣고, 진 빠진 하루를 보낸다. 악에 받쳐 무언가를 먹지도, 술을 마시지도 않는다. 반드시 해야 하는 게 없다. 재미없다. 그렇다고 재미를 찾아 나설 생각이 드는 것도 아니다. 그러려니 한다. 무더운 날씨 탓이라도 해본다. 딱히 도움이 되는 것 같지는 않다.
5. 요즘은 boy pablo 노래만 듣는다. 그 나른함이 좋다. 오늘은 뭐라도 해야지. 안되면 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