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광고회사 하쿠호도의 새로운 팀 만들기
모든 광고 회사에서 칸 광고제 수상작 분석으로 정신이 없을 오늘, 나는 수상작보다 광고 비즈니스와 광고 회사의 미래에 대해 간단한 세미나 내용과 이에 대한 내 생각을 이야기해볼까 한다. 나의 앞날과 관련된 이야기이기도 하기에 더 주의 깊게 들었던 게 사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긴 이야기가 될 것이 분명해 보이지만, 일단 시작해보자.
일본의 대표적인 광고 회사 하쿠호도가 올해 칸에서 진행한 세미나는 바로 Agency Beta: The secret of team prototyping. 하쿠호도의 월드 와이드 CCO (최고 크리에이티브 책임자) 마사루 키티카제가 직접 단상에 올라왔다. 게임은 상용 버전이 출시되기 전 베타테스트를 반드시 진행한다. 이를 통해 사용자들이 겪게 될 오류를 미리 걸러내고 보완할 부분들을 찾아내면서 게임을 완성해나간다. 그리고 하쿠호도는 미래를 대비하는 차원에서 이 방식을 새로운 조직을 만드는데 적용했다.
하쿠호도가 베타 에이전시를 만드는 세 가지 원칙,
베타 에이전시는 최소의 구성으로 테스트해보고, 거기서 최고의 방법들을 찾아내야 한다. 최소의 움직임으로 우리가 창조하는 방식을 만들자.
베타 에이전시는 광고 회사의 크리에이티브 역량을 축으로 새로운 영역의 활로를 찾을 수 있는 또 하나의 다리를 가져야 한다.
베타 에이전시에게 반복되는 실수는 용납되지 않는다. 그 누구도 해보지 못한, 세계 첫 번째 실패를 하자.
하쿠호도는 그동안 이 세 가지 원칙을 바탕으로 최소의 기능과 인원으로 구성된 다섯 개의 자회사, 베타 에이전시들을 만들었다. 각 회사마다 각기 다른 영역의 도전 과제들이 주어졌고, 이들은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그 과제를 해결해나갔다. 여기서는 세 가지 사례만 소개하겠다.
이들은 innovative integrated campaign을 만드는 것을 목표로 세웠다. 아이디어는 모든 곳에서 나온다는 기조하에 다양한 출신의 사람들을 모았다. 이들에게 기존 직무 이름을 버리고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크리에이티브 플래너, 프로듀서, 매니징 스태프이라는 이름을 주었다. 이들은 'method neutral', 즉 방법 중립적 크리에이티브 스킬을 기반으로 광고 캠페인부터 뉴스, 책방, 리테일, 커뮤니티 플랫폼 등의 다양한 영역으로 뻗어나갔다. 당연히 실패도 있었다. 회사 내부에 모든 사람이 함께할 수 없음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모든 분야의 전문가와의 협업을 시작했다. 서점 전문가와의 협업으로 서점의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어냈고, 심리학자들과의 프로젝트 덕분에 새로운 과학적 사실을 발견해냈다.
하쿠호도와 TBWA가 함께 만들어낸 퀀텀. 이들의 목표는 'Build start up innovation'이었고, 업계에 그동안 없었던 전혀 다른 팀을 만들어냈다. 산업 디자이너, 컨설턴트, 엔지니어 절반과 기존 광고 회사의 인력 절반으로 팀을 구성했다. 퀀텀의 핵심 역량은 Human-centered thinking, 수많은 광고 캠페인들을 만들며 고민한 끝에 얻은 소비자들에 대한 이해력과 스토리텔링 능력이다. 위대한 이노베이션은 위대한 스토리에서 온다. 이들은 이 능력을 바탕으로 클라이언트와 함께 새로운 사업(B/D)을 만들고 새로운 제품들을 R&D 부문과 개발한다. 예전과 달리 더 이상 클라이언트를 위해 일하지 않는다. 클라이언트와 함께 일한다.
Big business in digital creative, 광고든 컨텐츠든 플랫폼이든 형태에 상관없이 세계를 더 낫게 만드는 것이 SIX의 목표로 'not trying to create, but to innovate'라고 이야기한다. 디지털 크리에이티브 능력과 경험을 가진 아트, 애니메이션, 자동차, 음악, 게임, 동물 오타쿠 6명과 비즈니스 프로듀서로 시작된, 그래서 이름이 SIX이다. 이 팀은 스피커 전면에 설치된 투명 스크린을 통해 가사가 실시간으로 시각화되어 보이는 'lyricspeaker'를 만들었다. 전 세계 테크 스타트업들의 경연장인 SXSW의 interactive award에서 본상을 수상했고, 현재 출시를 앞두고 있다.
알파고가 칸 라이언즈 그랑프리를 타는 시대, 광고 회사들은 거대한 변화에 직면하고 있다. 살아남을 것인가 혹은 도태되어 없어질 것인가. 수많은 사람들이 답을 찾고 있지만 그 누구도 명확한 답을 내지는 못 했다. 이는 우리가 가진 핵심 역량이 무엇인지 파악하고, 고유한 방식으로 창조하는 것에 그 해답이 있다. 어느 영역으로 피벗 할 것인가, 또 어떤 프로토타입을 만들어낼 것인가, 혹은 어떤 세계 첫 번째 실패를 할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세미나는 이렇게 끝났다. 이 내용에 실험적인 팀에서 1년 반 동안 지내며 들었던 내 생각들과 더해보자면, 먼저 기회는 준비된 자에게만 온다. 그리고 광고 회사도 종목이 바뀔 그 어느 날을 준비하는 팀이 있어야 한다. 이들의 목표는 끊임없는 시행착오. 새로운 미래에 무엇이 필요할지 알 수 없기에 이렇게도 실패하고, 저렇게도 실패해야 한다.
맨땅에 헤딩하라는 말이 아니다. 광고 회사의 핵심 역량, 짧지만 강력하고, 또 상업적으로 팔리는 스토리를 만들어내는 능력을 다른 분야에 적용해보자는 이야기이다. 그것이 이 세미나에서 말하는 피벗이고, 프로토 타이핑이다.
전혀 다른 목표를 세우자. 다양한 배경의 사람들을 모아놓고 세상을 바꾸든, 상을 타든, 전에 없던 무언가를 만들어보라고 해라. 이들에게 실적은 마치 야구 선수에게 축구 골대에 골을 넣으라는 것과 같다. 광고 회사에 있어 R&D란 이런 것이 아닐까.
그리고 마지막, 결국은 사람이다. 도전하고, 파괴하고, 앞서나가고 싶은 오타쿠 두목들을 찾아라. 이들만 모아놓으면 큰일 난다. 이들이 무언가를 하고 싶어 할 때, 아이디어가 아이디어로 끝나지 않도록 실무를 도와줄 사람을 붙여놓아라. 그래야 뭐라도 나온다.
나는 신규 디지털 비즈니스를 개발하고 신규 테크 기반 캠페인을 기획하고 제작하는 실험적인 팀에서 기획과 제작, PM의 역할을 넘나들며 일하고 있다. 팀에는 기획, 제작, 미디어 인력은 물론 개발과 UX 인력이 섞여있다. 세미나를 들으며 팀이 걸어온 길을 되돌아볼 수 있었다. 이 세미나는 우리 팀이 시행착오를 겪은 이유, 과정 그리고 결과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리고 꾸준한 실패에도 언젠가의 그날을 준비하는 우리 팀의 실험은 계속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