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웨덴 디자인 스쿨 하이퍼 아일랜드 유학 이야기 #17
인턴십 모듈은 15주 동안 학교에서 배운 내용을 실제 업무에 적용해 볼 수 있는 기간이다. 학교와 실무가 어떤 차이가 있는지, 앞으로도 내가 이 일을 하고 싶은지, 그러기 위해서 더 필요한 것에 대해 생각해보는 과정이다. 여기서부터는 철저히 본인의 몫이다. 포트폴리오 준비부터 일자리 찾기, 지원, 면접 모두 본인 힘으로 해야 한다. 역할이 인턴이 아니어도 상관없고, 위치가 스톡홀름이 아니어도 상관없다. 창업을 해도 되고, 그에 상응하는 개인 프로젝트를 해도 된다.
처음에는 R/GA, AKQA 혹은 Work & Co같이 뉴욕에 있는 디지털 에이전시에서 일해보고 싶었다. 나는 포트폴리오부터 만들기 시작했다. 준비는 쉽지 않았다. 포트폴리오라는 걸 제대로 만들어 본 적이 한 번도 없었고, 어떤 직무로 지원해야 하는지 확신이 들지 않았다. 여기저기 물어가며 첫 번째 포트폴리오를 완성했다. 최선의 상태는 아니었지만, 조급한 마음에 위의 회사들에 일단 지원서를 제출했다. 몇 주가 지나도록 그 어느 곳에서도 연락은 오지 않았다.
방법을 바꿔서 스웨덴에 있는 디자인 회사 중 내가 아는 사람이 있고, 마음에 드는 작업을 하는 곳에 찾아가 보기로 했다. 모바일 퍼즐 게임 모뉴먼트 밸리 Monument Valley 시리즈로 유명해진 디자인 스튜디오 어스투 Ustwo와 브랜딩 모듈 인더스트리 리더 스타이너가 수석 서비스 디자이너로 일하고 있는 제품 디자인 에이전시 어보브 Above가 눈에 들어왔다.
먼저 디자인 콘퍼런스에서 만난 디자인 스튜디오 어스투의 디자인 디렉터 마티나에게 링크드인으로 장문의 메시지를 보냈다. 마침 디자인 인턴을 뽑고 있다면서 실무자와 연결해주었고, 면접 기회를 얻었다. 다음으로 브랜딩 모듈 인더스트리 리더였던 어보브의 수석 서비스 디자이너 스타이너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이전에 찾아가도 되는지 물어봤던 덕에 훨씬 수월하게 미팅을 잡을 수 있었다.
어스투와의 인터뷰는 인턴 채용을 담당하는 UX 디자이너와 1:1 화상 면접으로 진행되었다. 간단한 일상 대화로 시작하여 자기소개와 포트폴리오 프레젠테이션으로 이어졌다. 내 이야기가 끝나자 어스투가 어떤 회사이며 어떻게 일하고 있는지에 대한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왜 어스투에서 일하고 싶은지,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 또 무엇을 배우고 싶은지 같은 질문도 이어졌다. 대화를 주고받다 보니 어스투는 모바일 경험이 있고 비주얼 디자인이 강한 디자이너를 찾고 있으며, 그들이 찾는 사람이 내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다. 면접 분위기는 괜찮았으나, 다음은 없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다음 날, 어보브에 찾아가서 먼저 이야기를 꺼냈다. “저는 사용자도 알고 리서치도 곧잘 합니다. 디자인, 코딩, 프로토타이핑 모두 조금씩은 합니다. 비주얼은 흥미가 없고, 코딩은 자신이 없습니다. 경험 디자인에 관심 있고, 손으로 직접 만드는 걸 좋아합니다. 앞으로 디지털과 물리적 세상을 연결하는 경험을 만들고 싶습니다. 저는 뭘 하면 좋을까요?”
“네가 말하는 걸 인터랙션 디자인이라고 불러. 우리 회사에 마침 너 같은 사람이 필요한데, 여기서 인터랙션 디자이너로 일해보지 않을래?” 어보브의 스타이너의 대답이다. 인터랙션 디자인을 안다고 생각했는데, 잘못 이해하고 있었음이 틀림없다. 하고 싶은 일을 찾아 그렇게 오랜 시간을 헤맸는데, 알게 되어 설레었다. 긍정적인 답변을 주고 한껏 상기된 채로 사무실에서 나왔다. 긴 겨울을 보내고 3월, 나는 어보브의 인터랙션 디자인 인턴이 되었다.
인턴은 총 14주 동안 진행되었다. 어떤 일을 어떻게 진행했는지 나누고 싶지만, 내가 참여한 프로젝트들이 여전히 개발 중에 있어서 보안상 아무것도 이야기할 수가 없다. 대신 스웨덴의 디자인 에이전시의 일주일을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월요일 9시. Monday Hi5라고 부르는 전체 회의가 있다. 스웨덴 서남부 도시 말뫼 Malmö 와 스톡홀름 오피스가 모두 참여해서 프로젝트 현황, 신입 직원 소개, 휴가 계획 등 회사 이야기를 공유하는 시간이다. 한 손에 커피, 다른 한 손에는 노트와 펜을 들고 소파 구석에 앉았다.
9시 반부터는 주간 일정을 공유하는 회의가 진행된다. 한 명씩 돌아가면서 어떤 프로젝트에서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어느 정도의 시간을 쓸 계획인지 이야기했다. 나는 제품 디자이너 사이먼과 진행하고 있는 UI 프로토타이핑 작업에 50%, 비주얼 디자이너 파니와 진행하고 있는 모션 디자인 작업에 30%의 시간을 투입할 예정이라고 말하고, 나머지는 남겨두었으니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 알려달라고 말했다.
회의가 끝나고 자리로 돌아왔다. 일단 UI 프로토타이핑을 슬슬 마무리해야 한다. 이미 발매한 제품의 인터페이스를 사용자가 쉽게 이해하고,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처음부터 다시 디자인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사이먼은 프로젝트의 UX 리드, 나는 사용자 인터랙션을 디자인하고 프로토 타이핑하는 작업을 맡았다. 클라이언트 리뷰가 이번 주 목요일이라 작업에 속도를 붙여야 한다. 프로토타입에 들어가는 LED를 지난주에 주문했는데 아직도 안 와서 큰일이다.
나는 프로토타입에 들어가는 PCB 기판을 설계하고 있는 전기 엔지니어 신두라와 사이먼에게 찾아가서 앞으로 일정과 투자할 수 있는 시간이 얼마나 있는지 물었다. 사이먼은 내게 40시간을 주고, 2주 안에 완성하면 된다고 말했다. 중간에 클라이언트 요구 사항도 늘어나고, 기판 설계 시간도 늘어나면서 4주로 늘어났다. 정작 클라이언트가 회의를 미루고 있어서 마감일을 가늠하기 어려운 상황으로 변하고 있었다.
무작정 기다릴 수는 없기에 먼저 프로토타입을 마무리 짓고, 무리해서라도 회의 일정을 잡기로 했다. 다행히 오후에 LED가 도착했다. 신두라가 기판에 16개 LED를 한 땀 한 땀 납땜했다. 나는 지난주에 아두이노에 작성한 코드가 제대로 동작하는지 마지막으로 확인하고, 입력 값을 바로바로 수정할 수 있도록 한 줄 한 줄 주석을 붙였다. 정신없는 월요일이었다.
2주 전, 첫 번째 인턴십 팔로우업 미팅이 있었다. 나는 지금까지 어떤 프로젝트에 참여해 어떤 일을 했고, 그 과정에서 무엇을 배웠으며, 팀원에게 어떤 피드백을 받았는지 이야기했다. 만족한 눈치로 한참 듣고 있던 그는 나에게 정규직을 제안했다. 인턴 기간 연장을 예상했는데, 이렇게 빨리 정규직으로 오퍼를 받을 줄이야. 너무 기쁜 나머지 연신 고개를 끄덕였고, 스타이너도 웃으면서 같이 즐거워했다.
그는 UX 디자이너로 일하면 어떤지 물었다. 당연히 인터랙션 디자이너 자리를 생각했기 때문에 의아했다. 그는 크리에이티브 테크놀로지스트라는 직무를 설명해주었다. 그러면서 이 포지션도 무리 없이 해낼 것 같은데, 내가 두 직무 중에 더 잘 맞고, 더 하고 싶은지 잡 디스크립션을 써오라는 과제를 주었다.
오늘은 두 번째 미팅이 있는 날. 나는 스타이너가 준 과제뿐만 아니라 희망 입사 일자, 희망 연봉을 준비했다. 아무리 마음에 들고, 좋은 회사라도 공짜로 일할 수는 없다. 얼마나 받아야 하는지, 얼마까지 받을 수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스웨덴에서 일한 경험이 있는 학교 친구에게 도움을 구했다. 친구는 신입 디자이너의 평균 연봉과 그 이상 받는 팁을 몇 가지 알려주었다.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서 이전 직장에서 받은 연봉, 동료에게 추가로 받은 피드백 등을 준비해 갔다.
스타이너는 고민한 결과 인터랙션 디자이너가 잘 맞는다고 생각했고, 내 생각을 물었다. 나 역시도 인터랙션 디자이너를 하고 싶었다. 그는 새로 작성한 잡 디스크립션을 읽어주면서 추가하고 싶은 문구가 있는지 물었다. 이전 회사에서 해왔던 VR, AR 등의 신기술을 연구하는 역할도 추가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부담 주기 싫어서 넣지 않았는데 먼저 말해줘서 고맙다며 잡 디스크립션에 바로 추가했다. 그는 이어서 생각하는 연봉이 있냐고 물었고, 나는 준비한 희망 연봉과 왜 그만큼을 받고 싶은지 이야기했다. 그는 그 정도는 회사에서 줄 수 있는 범위 안에 있다며 다행이라고 이야기했다. 입사 일자는 모두가 휴가에서 돌아오는 8월 둘째 주로 잡았다.
매일 3시가 되면 모두 모여 간단한 다과와 함께 커피를 마시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다. 스웨덴에서는 이를 피카라고 한다. 피카를 북유럽의 대단한 의식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는데, 사실 별거 없다. 다른 점이라면 정해진 시간에 모두 함께 마시고, 30분이면 다시 자리로 돌아간다는 것. 나는 보통 가만히 듣는다. 그럴 때면 인터랙션 디자이너로 일하고 있는 트루비가 이것저것 물어보면서 나를 대화의 장으로 끌어준다. 오늘은 마침 북미 정상회담이 다가오고 있어서 그런지 궁금한 게 많아 한국과 북한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주었다.
오전에 미팅이 있어서 클라이언트 회사로 출근을 했다. 오늘의 회의 어젠다는 새로 개발하는 IoT 디바이스의 UX, UI 디자인 업데이트 및 전체 진행 상황 공유. 우리 쪽에서는 비주얼 디자이너 파니와 내가, 클라이언트는 프로덕트 매니저와 프로젝트 매니저가 들어왔다. 나는 이 프로젝트에 출근 2주 차부터 파니, UX 디자이너 래리와 같이 참여해서 사용자 테스트, 인터랙션 디자인, 모션 디자인, 프로토타이핑을 진행했다.
이 프로젝트는 다른 프로젝트와 달리 하드웨어 개발, 산업 디자인, UX/UI 디자인, 공장 생산만 우리가 진행하고, 제품에 들어가는 소프트웨어는 클라이언트가 지정한 에이전시가 개발하고 있다. 일정은 어떻게 잡아야 하는지, 우리가 어디까지 작업하고, 어떤 파일 포맷으로 전달해야 하는지 등 커뮤니케이션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디자인 시스템부터 UX 디자인 원칙, 와이어 프레임, UI 디자인, 인터랙션, 모션 그래픽, 카피라이팅까지 지난 회의에서 받은 클라이언트 피드백이 어떻게 적용되었는지 리뷰하고 전체 흐름과 인터랙션을 확인할 수 있는 프로토타입을 보여주었다. 클라이언트들은 한참을 만지작거리더니 너무 만족스럽고, 기존 피드백이 잘 반영된 것 같아서 고맙다고 말했다. 평소 프로덕트 매니저와 프로젝트 매니저 의견이 항상 달라서 이번에도 꽤 길어질 줄 알았는데 오늘은 이견이 없는 눈치다. 이어서 다른 에이전시에 작업물을 보내기 전 최종 컨펌을 요청했다.
회의가 끝나고 사무실로 돌아왔다. 오늘은 UI 프로토타이핑을 마무리해야 한다. 이제부터는 디테일을 잡아야 한다. 가동 속도를 알려주는 LED는 10개를 사용할지, 5개를 사용할지, 각 LED 밝기는 어떻게 할지도 정해야 하고, 잠금 상태로 진입하기 위해 잠금 버튼을 몇 초나 누르고 있게 할 것인지도 정해야 한다. 물론 최종 결정권은 클라이언트에게 있다. 클라이언트가 결정하게 하면 되는 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지만, 디자인 전문가로서 우리가 생각하는 최선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결정해서 이들에게 제안하는 과정도 필요하다.
오후 내내 티끌 같은 디테일과 씨름했다. 오늘 내로 프로토타입도 완성하고, 인터랙션을 정의하는 문서도 만들어야 했기 때문에 고민만 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빠르게 여러 가지를 테스트해보고 그럴듯한 근거가 있는 방향으로 정해나갔다. 마지막으로 사이먼이 3D 프린터로 만든 목업에 내가 만든 아두이노, 신두라가 만든 PCB 기판을 얹으면서 프로토타입 개발을 마무리 지었다.
오전 내내 워크숍이 있다. 이틀 연속 클라이언트 회사로 출근이다. 워크숍은 제품을 개발하는 과정에서 생긴 이슈에 관해 의논하고, 어떤 방향으로 갈지 끝장 토론을 해서라도 의사결정을 내리기 위해 진행되었다. 어제와
달리 오늘의 워크숍 분위기는 꽤 무거웠다. 사이먼과 나는 서로 눈치만 보면서 차례가 오기만을 기다렸다. 그렇게 한 시간 반이 흘러 우리 차례가 되었다. 우리는 기존 제품의 인터페이스만 업데이트하다 보니 설명할 것이 그리 많지 않았다. 어떤 과정으로 작업했는지, 어떤 UX 원칙을 적용했는지 설명하고, 바로 프로토타입을 보여주었다.
회의실에 있는 사람들 모두 프로토타입 앞으로 모였다. 나는 버튼을 누르면서 인터랙션을 보여주고, 어떤 의미가 있는지 설명을 붙였다. 인터랙션을 하나씩 보여줄 때마다 심각하게 굳어있던 사람들 표정이 밝아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프로젝트 매니저도 마찬가지. 이 정도 프로토타입까지는 기대하지 않았었던 것 같다. 나도 자신감이 붙어서 마지막 인터랙션까지 막힘없이 시연했다. 사람들은 한참을 프로토타입에 둘러서서 이렇게 저렇게 눌러보고, 질문도 하다가 이내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자리로 돌아갔다. 그렇게 워크숍도 무사히 마무리되었다.
우리는 클라이언트와 함께 점심을 먹었다. 프로젝트 매니저는 프로토타입 덕분에 워크숍이 잘 끝났다고 이야기해주었다. 사무실로 돌아오는 길에 사이먼도 프로토타입 작업을 잘 마무리해줘서 고맙고, 같이 일해서 재미있었다고 말해주었다. 언제쯤 내가 처음으로 디자인한 인터랙션이 들어간 제품을 만져볼 수 있을까. 설레는 하루였다.
아침부터 공기가 미묘하다. 어제 클라이언트 회사 대표가 바뀌었다는 이야기는 들었는데 그것 때문인가. 사이먼도 표정이 어둡다. 정말 무슨 일이 있긴 있나 보다. 나는 옆자리에 앉아 가볍게 안부를 물었다. 사이먼은 짧은 시간 동안 너무 고생했는데,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클라이언트 사정 때문에 어제 반나절 동안 진행한 워크숍에서 컨펌받은 내용은 물론 4주 동안 진행했던 프로젝트 전체가 취소되었다고 말해주었다. 이전에도 이런 경험이 있었고, 어제 대충 예상은 해서 당황스럽지는 않았지만, 허탈한 기분을 감출 수 없었다. 프로젝트 엎어지는 건 스웨덴이라고 크게 다르지 않구나.
지나가는 사람마다 나를 위로해주었고, 나는 신두라, 사이먼과 함께 재미있었다며 서로를 위로했다. 그렇게 한 시간 정도 멍하니 있었다. 아쉬움은 뒤로하고, 이 프로젝트에서 무엇을 배웠는지 생각해봤다. 사실 산업 디자이너, 전기 엔지니어, 소프트웨어 개발자와 함께 내 손으로 진짜 움직이는 프로토타입을 만들고, 클라이언트 앞에서 프레젠테이션까지 직접 진행한 건 처음이었다. 덕분에 코딩은 물론 커뮤니케이션, 회로 설계, 문서 작업, 프레젠테이션 등 수많은 시행착오에 부딪혔지만,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또한 같이 일한 사람은 물론 다른 회사 사람에게 내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태도로 일하는지, 어떤 능력이 있는지 자연스럽게 보여주고 증명하는 계기가 되었다. 특히 사이먼은 내가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코딩과 디자인을 자유롭게 넘나들면서 무언가를 빠르게 만드는 모습을 높이 샀다. 그리고 인터랙션 디자이너로서 내가 무엇을 잘하고 못하는지, 무엇을 고민하면서 디자인해야 하는지, 그래서 나는 어떤 인터랙션 디자이너가 되고 싶고, 무엇을 디자인하고 싶은지 생각해볼 기회가 되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정말 많은 걸 배운 프로젝트였다.
매주 금요일이 되면 소파에 앉아 모두 함께 주문한 도시락을 먹으면서 누군가 준비한 이야기를 듣는다. 주제는 매번 다르다. 지속가능성이 왜 중요한지 이야기하는 날도 있고, 조직 내에서 다양성과 포용을 추구하는 방법을 이야기하는 날도 있다. 오늘은 지난주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디자인 콘퍼런스에 다녀온 파니가 콘퍼런스에서 인상적인 내용을 이야기해주었다.
한참 진행하던 프로젝트가 갑작스레 끝나버리면서 한가한 오후가 찾아왔다. 생각해보니 어느새 인턴도 다음 주가 끝이다. 책상과 컴퓨터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는 프로젝트 관련 노트, 디자인 작업물, 프로토타입을 하나씩 꺼내서 읽어보고, 한 곳에 정리하면서 배운 점을 하나씩 적어 내려갔다. 그리고 지난 14주가 스톡홀름에서 보낸 그 어느 기간보다 빠르지만, 그 어느 때보다 많은 걸 배운 시간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3시가 되자 테라스로 갔다. 커피, 다과, 과일은 물론 맥주와 감자칩이 함께하는 금요일의 피카는 다른 날보다 조금 더 여유롭다. 우리는 테라스에 앉아 맥주 한 병씩 들고, 이번 주는 어땠는지, 주말은 어떻게 보낼지 이야기한다. 맥주 두 병 정도를 비우고 나면 하나둘씩 자리에서 일어나서 주말을 즐기러 나간다. 수다스럽던 테라스와 사무실에도 이내 주말이 찾아왔다. 나도 자리로 돌아와 간단하게 책상을 정리하고 사무실을 나섰다.
6월의 스톡홀름은 긴 겨울을 보상하는 듯 아름답다. 햇살은 따갑고 공기는 경쾌하다. 백야에 가까워지면서 하루는 점점 길어지고, 사람들 표정도 차차 밝아진다. 오늘은 조금 이른 여름 파티가 있는 날, 아침부터 준비로 사무실이 분주하다. 테라스를 고치고, 맥주와 음료를 실어 나르고, 파티에 먹을 음식을 준비했다. 나도 여기저기 손을 거들었다. 3시가 되자 회사 테라스에 술과 안줏거리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우리는 샴페인으로 간단히 목을 축이고, 서로의 안부를 물었다. 음식이 준비되자, 각자 한 접시씩 들고 배를 채웠다.
그렇게 한참 먹고 마시고 있는데, 디자인 디렉터가 나를 부른다. 인쇄실에서 누가 기다리니 가보란다. 나는 설레는 마음으로 인쇄실로 달려갔다. 인쇄실에는 HR 매니저가 종이 뭉치를 들고 서 있다. 인턴도 아니고 풀타임 근로계약서다. 그녀는 기쁜 얼굴로 계약서를 나에게 내밀었다. 나는 망설임 없이 계약서에 사인을 하고, 그녀와 한 부씩 나눠 가졌다. 8월부터 또다시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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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 매거진 CA에 실린 하이퍼 아일랜드의 기록 6부 인턴십 모듈 기사의 일부입니다.
원고 전문은 CA 2018년 9-10월호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