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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지 Feb 13. 2022

 진정한 자기 주도 학습이 이루어지는 호주

교사는 그저 준비만 해준다. 모든 건 아이들의 몫이다.

내가 처음 호주에서 유아교사를 시작하고 한 일주일 즈음되었을 때였다. 우리 반 아이들은 만 3살 아이들이 모여있는 토들러반이었는데, 이 아이들과 함께 미술활동 하나를 준비해야 하는 주간이었다. 나는 그 주를 위해 몇 주 전부터 인터넷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며 자료들을 찾았다. 만 3살의 나이에 맞는 미술놀이들 중 특히 아이들도 재밌어하면서 오래 간직할 수 있는 것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여러 가지로 고심을 하다가 물감을 묻힌 자동차 바퀴를 굴려가며 작품을 만들기로 하였다. 자동차 바퀴의 크기나 모양도 다양하게 준비하고, 색깔도 애초에 배색을 조금 예쁘게 준비해주면 그럴싸한 작품이 나올 것이라 여겼다.


나는 집에서 미리 준비한 다양한 종류의 자동차 장난감들을 챙겼다. 물감은 유치원에 있는 것으로 사용하였는데 주로 색이 섞였을 때 또 다른 색이 나올법한 것들로 선정하였다. 그렇게 선택된 색은 빨강, 파랑 그리고 노란색이었다. 색깔이 섞이면서 오렌지, 초록색 혹은 보라색도 나올 수 있음을 염두에 두고 고른 것이었다.


나는 먼저 아이들에게 말로, 설명을 해 보았다. 그런데 아직 만 3살짜리가 이해하기에 어려운지 아이들은 그래서 뭐 어떻게 하라는 거냐는 식의 눈빛을 나에게 보냈다. 나는 아이들에게 시범을 보였다. 그러자 아이들은 이제야 좀 이해를 했는지  소매도 채 걷지 않고 자동차 장난감을 하나씩 잡아서 도화지에 바퀴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런데 어떤 아이는 제법 이 미술놀이의 목적과 방법에 맞추어하는 반면에 또 다른 아이는 손에 힘을 미쳐 꽉 주지 못하여 바퀴를 제대로 굴리지 못한다던지, 색깔을 한 번에 너무 여러 가지를 다 사용해서 도화지를 온통 거무칙칙한 색깔로 만들어 버린다던지, 심지어 자동차 장난감은 관심도 없고 온통 자기 손바닥에 물감을 묻혀서는 도화지에 마구 찍어대기 시작했다. 그야말로 난장판이 되었다.


물감으로 뒤엉켜서 엉망이 되어가는 테이블을 보자마자 나는 아이들의 활동을 잠시 중단시켰다. 그리고는 다시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나름대로 좀 더 쉽고 간단하게 아이들에게 이야기를 했다. 


"우리 바퀴가 어떤 모양이 있는지 한 번 볼까? 바퀴는 동그랗게 생겨서 잘 굴러가나 봐, 그래서 우리가 이렇게 바퀴 모양을 찍어볼 수 있구나~!" 하면서 말이다. 

그런데도 아이들은 나의 교육 의도와는 다르게 미술놀이를 하고 있었다. 그야말로 촉감놀이가 된 상황이었다. 


순간 나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 오늘 내가 선정한 미술 놀이가 아이들 연령과 안 맞나 보네, 잘 못 골라왔다보다.' 


그냥 자포자기 마음을 비우고 아이들을 바라보고 있는데, 다른 선생님이 지나가다 한 마디를 던지셨다. 

"세상에, 이게 다 뭐야. 너무 멋진 작품들이잖아! 네가 지금 그리고 있는 게 뭐니? 대단한데?"

그러면서 나에게도 이렇게 말했다. "이거 다 하면 오늘 우리 유치원 벽에 걸어놔야겠어요. 너무 멋지네~"


나는 적잖이 당황스러웠다. 그래서 내가 그 선생님께 말했다.  

"이걸 걸어놓자고요? 이건 제가 계획했던 게 아니에요. 물론 아이들이 한 거라 의미는 있는데, 원래 계획했던 거랑은 조금 달라요."


그러자 선생님은 나에게 말했다. "우리의 계획은 그저 필요한 것을 미리 준비해주고 위험하지 않게 관찰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면 돼요. 그 과정과 결과물까지는 우리가 계획할 수 없죠. 모두 아이들이 결정해서 완성하는 게 맞아요. 지금 아이들이 즐겁게 하고 있으니 이 작품들은 모두 성공한 거예요."


나는 갑자기 아차 싶었다. 잊을 만하면 스멀스멀 기어 나오는 결과 중심적인 사고가 다시 내 발목을 잡았다. 


호주는 특히나 과정 중심적이다. 어릴 때부터 그렇게 교육을 받아서 그런지 성인이 되어서도 어떤 일이 발생하면 늘 결과보다는 "그래서 너는 행복해? 그럼 됐어!"라고 말하는 식이다. 이런 사고방식이 아이들의 생각과 표현을 자유롭게 만들어 준다는 점이 내가 이곳에서 살기로 하고, 내 아이를 이곳에서 키우기로 마음먹은 중요한 이유 중 하나인데, 주입식 교육으로 자란 나는 쉽사리 바뀌지가 않는다. 


그러고 보니 내가 준비한 미술놀이로 인해 아이들은 얼굴에까지 물감을 묻혀가며  즐겁고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런데 나는 왜 그건 안 보고 종이에 그려진 그림만 바라보며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을까.


호주에서 유아교사를 하며 사실 나도 새롭게 교육을 받는 기분을 느낄 때가 참 많다. 아기 때 하나씩 배우는 것처럼 문화도 예절도 하나씩 알아가는 중이다. 그래서 나는 이민자로서 이 유아교사의 직업을 가졌다는 게 참 좋은 것 같다. 


내일은 또 무얼 배우고 깨우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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