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 제작한 춘향의 영정을 두고 말이 많다. 열일곱 춘향이라기에는 너무 나이 들고 중성적이라는 지적이다. 남원시 시민사회단체들은 성명서를 통해 “춘향의 덕성이나 기품을 제대로 표현해내지 못했다. 영정의 봉안 문제에 대해 다시 객관적이고 민주적인 공론조사를 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남원시와 남원문화원 그리고 영정을 그린 화가는 단오를 맞아 그네를 타기 위해 나온 18세기 여인상을 염두에 두고 그렸다고 해명했지만, 쉽게 수그러들지 않았다. 다른 한편에서는 “억지 춘향을 만들어서 춘향 정신을 모독하지 말라”며 최초 영정을 다시 봉안할 것을 촉구하기도 했다. 좀처럼 해결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2010년 6월 ‘방자전’이 개봉되었을 때도 논란이 있었다. 포스터에 당당히 ‘춘향전을 범하다’라고 내건 부제처럼 영화는 파격이었다. 몽룡(류승범 분)은 순진한 글방 서생도, 오직 춘향만을 생각하는 순정파도 아니다. 금수저를 입에 물고 태어나 출세에 눈이 먼 양아치로 다시 태어난다. 몽룡은 여전히 주연이지만 방자전의 주인공은 당연히 방자다. 원작에서 향단과 더불어 맛깔난 조연이었던 방자(김주혁 분)는 섹시하고 다정한 남자로 춘향에게 접근한다. 신분의 한계 때문에 망설이기도 하지만 연정을 포기하지 않는 솔직함과 신분 질서에 분노할 줄 아는 용기도 가졌다. 파격의 백미는 춘향(조여정 분)이다. 그녀는 세속적인 욕망을 감추지 않고 적극적으로 드러낼 줄 아는 21세기 춘향이다. 몽룡과의 연분을 이어가며 신분 상승의 기회를 호시탐탐 노리는 한편 방자가 가진 따뜻한 사랑을 놓지도 않는다. 방자와 몽룡 사이에 형성된 삼각관계에서 춘향은 양다리를 걸치며 밀땅도 하고 거래도 한다.
고전 소설인 춘향전을 모티브로 한 사극이지만, 영화 장르가 에로 코미디로 분류될 정도로 방자전의 노출 수위는 높다. 춘향은 자신의 욕망을 위해 농염한 매력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순결 의식이나 정조 관념은 처음부터 찾아볼 수 없다. 그러다 보니 “불멸의 춘향 사랑을 단순 노리갯감으로 모독했다.”는 춘향문화선양회의 항의도 이해할만하다. 하지만 “10만 남원 시민과 사회단체의 힘을 모아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영화 상영을) 저지하겠다.”던 선양회 관계자의 우려와는 달리 시장의 반응은 썩 나쁘지 않았다. 무엇보다 원작이 가진 서사적 구조를 비틀어 현실적인 인물들의 이야기로 그럴싸하게 풀어나가는 전개가 흥미롭다.
춘향전은 작자미상의 연애소설이다. 구전되던 판소리 춘향가를 원본으로 하고 있다지만, 구전문학의 특성이 그러하듯 다양한 버전으로 창작되어 왔다. 신분을 초월한 청춘남녀의 연애담이다 보니 일찌감치 19금을 넘어서는 노골적인 표현들이 적지 않다. 춘향이 미인이 아니라 박색이라는 이야기도 있고 모진 고문을 받은 춘향이 불행히도 옥중사망했다거나 출세한 몽룡이 일찌감치 바람을 피워 춘향이 끝내 자살했다는 비관적인 결말도 있다. 그런가 하면 백치미를 가진 춘향과 바람둥이 양아치 기질을 가진 몽룡으로 배치하고 춘향의 몸종이었던 향단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학식이 뛰어나고 외모 또한 출중한 변 사또에게 들이댄다는 웹소설도 있다. 소설가 김연수 또한 세상 물정도 모르고 괜한 고집부리다 스스로 팔자를 꼰 춘향으로 재해석하기도 했다.
영화 방자전 이전에도 춘향전은 여러 감독과 배우를 바꿔가며 제작되어 왔다. 임권택 감독의 춘향뎐은 칸 영화제에 출전하기도 했고, 몽룡을 맡았던 조승우의 출세작이기도 하다. 휴전선 너머 북한에서도 제작되었고, 형식도 다양해져 만화는 물론이고 뮤지컬이나 발레로 각색되기도 했다. 춘향과 몽룡이 주인공인 게임도 있다고 한다. 어느 방송 프로그램에서는 춘향과 심청, 콩쥐가 한 마을 친구가 되어 이야기를 엮어가는 드라마도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작가가 따로 없기에 누구라도 춘향전의 작가가 될 수 있다.
남원이 춘향이라면 곡성은 심청이다. 섬진강 물길로 이어진 남원과 곡성은 행정구역의 경계를 넘어 같은 생활문화권이다. 자동차로도 20분, 걸어가도 반나절 걸음이다. 전승되는 판소리 중 춘향가와 흥보가가 남원, 심청가가 곡성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하지만 춘향과 몽룡이 단오날 광한루에서 만났다는 식의 구체적인 언급이 심청전에는 없다. 오히려 임당수와 연화리 같은 지명이 서해 백령도에 남아 있다. 때문에 심청의 연고지를 둘러싸고 옹진군과 곡성군이 서로 경쟁하기도 했다. 단순히 학술적 차원의 관심을 넘어서 문화콘텐츠 발굴을 통한 지역 경제 활성화라는 의도가 개입되다 보니 호사가들의 요깃거리가 될 만큼 갈등이 불거지기도 했다. 더구나 이미 수십 억 원 예산을 들여 ‘심청각’과 심청 동상을 짓고 심청 효행상까지 제정하며 마케팅에 나섰던 옹진군으로서는 후발주자 격인 곡성군이 달갑지 않았을 것이다. 지명이나 배경을 따져보면 바다에서 멀리 떨어진 산골인 곡성이 웬 심청이냐 싶겠지만, 곡성군은 결정적인 카드 하나를 쥐고 있었다. 심청전의 근원 설화라고 알려진 ‘원홍장 설화’가 바로 그것이다.
장님인 원량은 처를 잃고 홍장이라는 어린 딸과 함께 살고 있었다. 지극 정성으로 아버지를 모시는 홍장의 효성은 바다 건너 중국까지 소문날 정도였다고 한다. 어느 날 홍법사의 성공스님이 부처님의 계시라며 원량에게 시주를 간청하는데, 아무 재산이 없던 원량은 외동딸 홍장을 대신 딸려 보낸다. 성공 스님을 따라나선 홍장이 어느 포구에서 쉬고 있을 때, 마침 황후 간택을 위해 진나라 황제가 파견한 사신들을 만나게 된다. 그들은 첫눈에 홍장을 알아보고 가지고 왔던 예물을 스님께 바치고 바다 건너 중국으로 홍장을 모셔간다. 진나라 혜제의 황후가 된 홍장은 선정을 베풀고 덕을 행하면서도 고국에 두고 온 아버지를 잊지 못해 관음상을 빚어 배에 실어 보낸다. 우여곡절 끝에 낙안포까지 흘러온 관음상은 성덕이라는 처녀에게 발견되고, 성덕은 고향인 옥과에 관음사라는 절을 지어 관음상을 모시게 된다. 한편, 원량은 홍장과 이별하면서 너무 많은 눈물을 흘려 눈을 떠 95세까지 장수했고, 금은보화를 시주받은 성공 스님은 큰 불사를 이루었다고 한다.
원홍장 설화는 관음 사상과 더불어 전승되다가 1729년 조선 영조 때 백매자(白梅子)라는 사람이 우한자(優閑子) 스님이 들려준 관음사의 창건 유래를 기록으로 남겼는데, 목판은 소실되고 유인물만 남아 전남 송광사에 보존되었다. 1930년대 국문학자인 김태준이 <조선소설사>에 이 설화를 소개하면서 세상에 알려지는데, 국문학계에는 이미 오래전부터 심청전의 근원 설화로 인정받고 있었다. 때문에 학술적 논쟁의 결론은 곡성군 쪽으로 무게중심이 실려갔지만 지자체 간의 갈등은 쉽게 해소되지 않았다. 결국 원로 학자가 나서 심청의 고향이 어딘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효의 정신을 잘 기리는 것이 중요하며, 지자체 간의 협력과 상생 방안을 찾아보자고 중재하면서 겨우 진정될 수 있었다고 한다.
여하튼 곡성군은 매년 심청 축제를 열고, 만화 캐릭터도 개발하고, 오곡면 송정마을에 테마파크까지 조성하며 꾸준히 공을 들이고 있다. 겨우 인구 2만 7천 명에 그것도 65세 이상 인구가 열에 네 명꼴로 노령화된 곡성군 입장에서 해가 갈수록 더해지는 지역소멸론의 위기 속에서 군의 정체성을 지켜가려면 사활이 걸린 일이다. 하지만 청춘 연애담도 아닌 효(孝)라는 주제로 지금 세대의 입맛을 사로잡기가 만만치 않다. 인신 공양 같은 논란도 오래된 딜레마고 불교적 색채를 어떻게 다룰지도 쉬운 과제가 아니다. 소설의 구조 또한 완결된 하나라고 보기에 심청이 팔려 간 뒤부터는 판타지에 가까울 만큼 이질적이다. 그래서인지 춘향전에 비해 영화로 제작된 편수 자체가 매우 적다. 그나마 2014년 개봉된 ‘마담 뺑덕’이 심청전을 모티브로 했다고 하는데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심청전을 범할 파격은 언제쯤이나 가능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