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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구례의 딸

by 물구나무

아버지가 죽었다. 전봇대에 머리를 박고. 평생을 정색하고 살아온 아버지가 전봇대에 머리를 박고 진지 일색의 삶을 마감한 것이다. 만우절은 아니었다. ……

- 《아버지의 해방일지》, 정지아

시작부터 불순하다. 아버지의 죽음을 강 건너 불구경하듯 꺼내 드는 자식, 문장도 짧다. 유머라고 의심하기에는 만만찮은 장편이다. 혁명을 목전에 둔 혁명가처럼 진지했다던 부모의 전직은 빨치산이었다. 그리고 빨치산의 딸로 자란 그녀가 소설의 화자다. 무겁고 진지할 것만 같았던 소재는 일찌감치 기대를 저버린다. 아버지의 삶은 죽음으로 현실의 굴레를 비로소 벗어난다. 그리고 그녀 또한 시종일관 거리를 두고 소설을 끌어간다. 그래서 죽음은 끝이 아니고 이야기의 새로운 시작이고, 문체는 가볍지만 담겨 있는 삶은 농담이 아니다. 작가는 다소 능글맞은 솜씨로 슬픔에 웃음을 비벼가며 적당히 담백한 말투로 해학이 가진 힘을 손에 쥐고 아픔을 요리한다. 그녀는 불로 굽거나 물로 끓여내지 않고 소금을 품은 간장이 오랜 시간 구수한 맛으로 빚어지듯 이야기를 차려낸다. 장례가 치러지는 사흘, 뜻밖의 조문객들이 등장하며 아버지의 행적이 조목조목 드러난다.


6.jpg 지리산 왕시루봉에서 바라본 섬진강


회문산과 지리산 그리고 광양의 백운산에 이르기까지 섬진강은 빨치산의 역사를 꿰어 가며 흐른다. 하지만 오랜 세월 금기시되어 왔던 기억이었다. 1987년 6월 항쟁이 끝나고 그 이듬해 이태는 남부군을 세상에 꺼내 놓는다. 한국 전쟁이 발발했을 무렵 조선중앙통신사의 기자였던 작가는 유엔 참전으로 회문산으로 들어가는 조선노동당 전북도당을 따라 빨치산이 되었다. 그리고 이현상의 남부군에 편입되어 지리산에서 활동하다가 1952년 체포되어 전향하였다. 자신의 활동 경험을 바탕으로 한 실화 소설 《남부군》은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막혔던 물꼬가 터지듯 여러 증언과 기록들이 쏟아져 나왔다.


조정래의 《태백산맥》은 1989년 책으로 발행되었지만, 이전부터 현대문학에 연재되어 오던 소설이었다. 시대적 배경은 여순반란사건 직후부터 한국전쟁 휴전까지를 담은 원고지 15,700매 분량의 대하소설이다. 소설을 끌어가는 갈등의 축은 좌우 이념의 대립이다. 염상진을 중심으로 한 좌익 세력과 토착 지주 및 자본가를 중심으로 한 우익 세력 사이의 갈등이 분단과 전쟁 같은 혼란스러웠던 시대적 물살을 타고 펼쳐진다. 그러나 이데올로기로 도식화될 수만은 없는 다양한 입장과 처지에 놓인 인물 군상이 각자의 삶을 치열하게 살아가는 현실을 작가는 놓치지 않는다.


8백만 부가 넘게 팔리는 인기를 얻었지만, 소설의 이념적 편파를 의심하는 반발도 만만치 않았다. 출판사는 다음 책이 언제 나오냐는 독자들의 독촉 전화에 힘들었고, 작가는 협박을 앞세운 전화 테러에 시달렸다. 1994년 4월 조정래 작가와 출판사는 이승만 전 대통령의 양자 이모 씨와 ‘구국민족연맹’ 등 8개 단체로부터 국가보안법 위반과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으로 고소, 고발당했다. 이 사건은 11년 동안 이어지다가 2005년 3월 31일 마침내 무혐의 결정이 내려졌다.

서울중앙지검 공안 1부는 "전체 내용과 집필 동기, 예술작품의 특수성, 당시 정황 등을 종합한 결과 `태백산맥'을 대한민국의 존립 안전과 자유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적극적, 공격적 표현을 담은 이적표현물로 보기 어렵다."라고 말했다. 또한 "북한의 주장과 유사한 표현들이 산재해 있으나 독자, 평론가로부터 예술작품으로서 객관적, 미학적 가치를 획득했다. 그런 표현들은 자유토론과 상호 비판과정을 통해 우리 국민에게 충분히 여과돼 받아들여질 수 있다."라고 덧붙였다.


정지아의 소설, 《빨치산의 딸》도 같은 해 복간되었다. 남로당 전남도당 인민위원장이었던 아버지와 남부군 정치위원이었던 어머니 그리고 어쩔 수 없는 혈연으로 맺어진 빨갱이의 자식으로 살아야 했던 작가 가족의 수난사는 세상에 나오자마자 시련을 맞는다. 1990년, 스물다섯에 발간했던 첫 작품은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판매 금지됐다. 이적표현물로 분류된 책은 경찰에 의해 압수되었고, 작가도 수배를 받았다. 소설이라기보다 시대적 소명 때문에 쓴 기록이라고 그녀는 회상한다. 32년 세월을 훌쩍 넘겨 이제 그녀도 환갑을 코앞에 두고 있다. 빨치산의 딸 이야기는 《아버지의 해방일지》로 다시 시작한다.


산에서 내려온 후, 아버지는 고향을 떠나지 않았다. 자수를 하고 풀려났지만, 세상은 또 다른 감옥이었다. 족쇄는 없었지만, 담당 형사는 꼬박꼬박 일거수일투족을 살폈다. 빨갱이 때문에 죽은 유가족에게 멱살 잡히는 수모를 흔히 겪기도 하고, 욕도 자주 얻어먹었다. 전향을 마다하고 장기수로 살아낸 옛 동료들에게 아버지는 또 다른 죄인이었다. 이쪽도 저쪽도 아버지의 자리는 없었다. 아버지는 그래도 구례를 떠나지 않았다. 어쩌면 딱히 갈 곳도 마땅치 않았을지 모른다. 대한민국 어딘들 달랐을까. 피를 나눠 가진 가족도 다르지 않았다. 자신의 이력 때문에 앞길이 막혔다는 동생의 원망과 빨치산의 딸이라고 손가락질받고 자라는 어린 딸을 지켜보는 아버지의 가슴은 매번 멍들고 무너져야 했으리라. 차라리 감옥이 나았을지 몰랐다.


세상이 예전보다 좋아졌다고 말한다. 지난해 9월 출간한 《아버지의 해방일지》가 25만 부가 넘게 팔리는 성공 비결이 뭐냐는 질문에 작가는 세상이 많이 달라졌다고, 운이 좋았다고 답한다. 1980년대 민주화운동을 했던 세대에게는 옛날 감성을 불러일으킨 것 같고, 이데올로기에 별 관심이 없는 젊은 세대에게도 거부감 없이 받아들여진 것 같다고 한다. ‘빨갱이’라는 말을 유머로 받아들이게 만들었다는 말에도 반대한다. 정치권에서야 여전히 빨치산이라는 표현을 거칠게 사용하지만, 대부분 독자는 이런 이야기를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있다고 그녀는 믿는다. 다만 작가는 웃기고 가볍게 쓰려고 많이 노력했다고 한다.


소설의 주인공이지만, 아버지는 멋지고 세련된 사회주의 영웅이 아니다. 총을 잘 쐈다는 말도 없고 무슨 무슨 전투에서 공을 세웠다는 무공담도 없다. 산중 시절을 어찌 견뎠는지 몰라도 콩밭에서 두 시간 김매는 것도 힘들어했다. 다만 무덤을 쓰지 말라거나 제사를 챙기지 말라는 유물론자였고, 사람을 잘 챙기는 사람이었다. 특히 도움이 필요하거나 처지가 딱해 보이는 이웃에게 앞뒤 따지지 않고 퍼주는 이웃이었다. 허름한 옷차림에 코를 찔찔 흘리는 어린아이의 코를 닦아주고, 말도 어눌한 정신질환자에게 먼저 말을 건네는 동네 아저씨였다. ‘어떻게 사람이 그럴 수 있느냐’고 따져 묻는 딸에게 아버지는 ‘사람이니까 그럴 수 있다’고 말했다. ‘오죽흐먼 나헌티 전화를 했겄어, 이 밤중에!’ 오밤중에 걸려 온 전화를 받고 주섬주섬 옷을 챙기며 아버지는 입버릇 같이 말하곤 했다.


예상했던 대로 아버지의 빨치산 옛 동료들이 찾아왔고, 빨갱이가 죽었으니 침을 뱉어야겠다던 월남전 참전용사도 있었지만, 장례는 큰 소란 없이 마무리됐다. 작은아버지의 행패도 없었다. 하나뿐인 상주라며 이런저런 장례 절차를 알아서 챙겨주는 황 사장, 조문객은 물론이고 상을 치르는 가족의 끼니까지 따로 챙기는 떡집 언니, 만나는 사람마다 끌고 오느라 하루에도 십수 번 장례식장을 찾아왔던 박 선생 그리고 아버지의 담배 친구라며 나타난 앳된 노랑머리 소녀까지. 딸이었지만 미처 알지 못했던 아버지의 행적이 한 사람 한 사람의 사연을 통해 그려진다. 소설에 등장하는 구례 사람들은 한결같이 촌스럽다. 도시 사람들이 매너라고 믿는 사람 간의 거리도 없고, 하나 받으면 하나를 돌려주는 계산법도 모른다. 예의를 갖춰 차려입거나 꾸미는 것이 오히려 거추장스러운 사람들이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혼자 남겨진 어머니 때문에 내려왔다 눌러앉은 12년. 서울 여자라고 믿었던 작가는 아버지의 사람들과 부대껴 살며 자신도 모르게 구례에 물들어갔다. 그러다 문득 소설을 써낼 수 있겠다 싶었다고 한다.


아, 그랬구나. 아버지는 그렇게 세상과 화해했고, 고향 사람들과 부대끼며 그 세월을 건너왔구나. 이념이 허물어진 세상에서조차 사람은 사람을 기대며 살아질 수 있구나. 그렇지. 사람이 먼저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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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념의 갈등으로 질곡에 붙들린 현대사 한복판이 구례가 앉은자리다. 섬진강 너머, 사성암이 있는 오산에서 내려다보는 구례 읍내는 지리산 자락을 감아 두르고 앉은 분지다. 읍내라고 해도 겨우 인구 만 명이 조금 넘고, 군 전체로 따져도 2만 5천에 못 미친다. 전라남도 시군 중에 규모가 가장 작고, 전국 229개 지자체 중에서 219번째다. 지역소멸론을 꺼내 들면 제일 먼저 손가락에 꼽히는 그런 곳이 구례다. 지리산과 섬진강을 빼고 나면 더도 덜도 없다. 빨치산의 딸, 정지아 작가는 다시 구례의 딸로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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