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개의 이야기, 섬진강 하류에는 두꺼비에 얽힌 전설이 내려오고 있다.
홀어머니를 모시고 살던 착한 처녀가 옛날에 있었다. 두꺼비 한 마리가 부엌으로 찾아들었는데 처녀는 배고파 보이던 두꺼비에게 밥을 주며 3년 남짓 먹여 살렸다. 그러던 어느 여름, 홍수가 나면서 마을이 물에 잠기자 두꺼비가 물에 빠진 처녀를 구했다고 한다. 처녀를 업은 두꺼비는 하류까지 헤엄쳐 내려왔지만, 강기슭에 닿자마자 죽고 말았다. 목숨을 구해준 두꺼비를 묻은 처녀는 매년 제사를 지냈다고 하는데 그때부터 동네 사람들이 두꺼비 나루라는 뜻으로 섬진(蟾津)이라 불렀다고 한다.
또 하나 이야기는 한참 왜구가 기승을 부리던 고려말까지 거슬러 간다. 한 무리의 왜구가 두치강을 거슬러 내륙 깊숙이 쳐들어가려 하자, 수십만 마리 두꺼비 떼가 몰려들어 크게 울부짖었다고 한다. 그 소리가 어찌나 요란하고 망측했던지 불길한 징조라고 믿었던 왜구들이 스스로 물러났다고 한다. 도적을 몰아낸 두꺼비 때문에 강 이름을 섬진강으로 고쳐 부르게 되었다고 하는데, 누군가는 당시 왕이 그렇게 시켰다고도 한다. 지금도 섬진강 하류 하동과 광양 인근에는 두꺼비가 자주 나타난다.
아무리 봐도 어디 내세울 만한 외모가 아니다. 등에 금줄이 박힌 금개구리처럼 귀해 보이지도 않고, 작고 앙증맞은 청개구리처럼 귀엽지도 않다. 우둘투둘한 사마귀 돌기로 가득한 흑갈색 등, 엉거주춤한 자세로 어기적거리는 걸음걸이. 가까이 다가가도 개구리처럼 풀쩍 도망칠 줄도 모른다. 어른 주먹만 한 덩치는 어디 풀숲에 몸 숨기기도 만만치 않다. 게다가 ‘뽁뽁 뽁뽁뽁’하며 애처롭게 우는 소리는 반전이다. 먹이를 낚아채는 날렵한 혀가 아니면 도대체 이 험한 세상 어떻게 살아남을지 걱정스러울 만큼 두꺼비는 느려 터졌다. 졸린 듯이 풀린 눈꺼풀은 당최 근심 걱정도 없어 보이고, 어찌 보면 음흉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경칩이면 두꺼비도 겨울잠에서 깨어난다. 봄볕에 땅이 풀리는 3월 초순에 두꺼비들은 물이 고인 방죽을 찾아 산에서 내려온다. 짝짓기 철이다. 체구가 작은 수컷들은 암컷을 차지하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데 일단 짝을 차지하면 암컷의 앞가슴에 깊은 생채기가 남을 만큼 꽉 끌어안고 교접한다. 암컷의 산란은 포접 상태에서 한천질에 둘러싸인 기다란 알주머니를 쏟아낸다. 10미터 남짓한 알주머니는 볕이 잘 드는 물웅덩이 바닥에서 2주 정도면 올챙이들을 키워낸다. 어린 올챙이들은 시커멓게 무리 지어 몰려다니며 물 가장자리 해캄이나 이끼를 먹고 자란다. 부화 이후 한 달이면 변태를 시작하는데, 뒷다리가 먼저 자라고 앞다리가 나오면서 꼬리가 사라지면 점점 성체의 모습이 드러난다. 아직은 새끼손톱만 하다.
하지만 불우해 보이는 외모에도 불구하고 양서류는 뛰어난 능력으로 지구환경에 적응해 왔다. 고생대 데본기에 출현한 양서류는 신생대 말기에나 등장하는 인류보다 훨씬 이전부터 살아왔다. 진화생물학자들은 양서류의 특징을 어류와 파충류의 중간 위치에 두고 설명한다. 물속에서 살던 어류 중 일부가 뭍으로 올라와 새로운 방식의 삶에 도전했다. 물 밖으로 나와야 할 사연을 알 수는 없으나, 분명 절박한 까닭이 있었을 것이다. 그들은 아가미 대신 허파로 호흡하며 지느러미는 네 개의 다리로 진화했다. 도전은 성공이었다. 양서류의 진화는 아예 뭍에서만 생활하는 동물의 출현이 가능하도록 길을 텄다. 양서류는 이 드라마 같은 진화의 역사를 자신들의 유전자에 저장해 두고 각 개체의 생애주기에 반복한다. 산에서 생활하던 두꺼비는 산란기가 돌아오면 물웅덩이를 찾아 알을 낳고, 변태를 마친 올챙이들은 다시 산으로 올라간다. 뭍에서 물로 다시 물에서 뭍으로 서식 환경을 옮겨가며 사는 삶은 두꺼비의 업보다.
외부 환경의 변화에 적응하는 양서류의 특별한 능력은 겨울잠에서도 확인된다. 변온동물인 양서류의 겨울잠은 극한의 추위에서 살아남는 필살기다. 일정한 온도를 유지하며 살아야 하는 인간과 달리 그들은 외부의 온도에 따라 체온이 변한다. 두꺼비는 심장박동과 호흡이 거의 없는 가사(假死) 상태로 겨울을 지낸다. 말 그대로 죽은 듯이 잔다. 겨울잠을 자는 동안 체액 속에 부동 물질이 있어 몸이 어는 것을 막을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변화의 귀재인 양서류는 먹고 먹히는 생태계의 먹이사슬에서 높은 자리를 차지하지 못한다. 무력한 올챙이들은 비슷한 시기에 태어나는 잠자리나 게아재비, 물자라 유충에게 쉽게 먹힌다. 심지어 올챙이들끼리 잡아먹고 먹히는 경우도 더러 있다. 올챙이가 힘들게 변태를 마치면 상황은 조금 나아진다. 인생 역전, 덩치가 커진 두꺼비는 다 자란 잠자리를 한입에 꿀꺽 삼킨다. 잠자리 유충에게 맥없이 당하던 올챙이 시절을 생각하면 격세지감이 들 수도 있겠지만 불쌍한 양서류 팔자는 세상 온 천지 천적에 둘러싸여 있다.
대략 두 달, 물에서의 생활을 마치고, 비가 내리는 5월 어느 날을 잡아 두꺼비 새끼들은 부모가 내려왔던 산을 향해 대이동을 시작한다. 동작이 굼뜬 두꺼비들을 기다리는 새나 뱀을 피할 수 있는 어린 두꺼비들의 전술은 오로지 인해전술뿐이다. 날카로운 이빨이나 발톱도 지니지 않은 어린 새끼들은 저항하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 천적들은 배가 부를 때까지 그냥 주워 먹는다. 하지만 두꺼비들의 수난사는 여기서 끝이 아니다. 더 위험한 천적은 따로 있다. 861번 지방도로를 지나는 자동차다. 인간의 피조물은 배부르기 위해서 먹지 않기에 그들의 사냥은 끝이 없다. 섬진강 하류에 작은 마을, 비촌마을이 유명해지는 때도 이 무렵이다.
광양시 진상면 비촌마을은 특별할 것 없는 작은 시골이다. 섬진나루 수월정이 있는 매화마을에서도 그리 멀지 않다. 볕이 잘 받는 불암산 남쪽 자락을 따라 수어저수지를 끼고 들어앉은 농가들은 주로 감나무를 심어 키운다. 섬진강 매화가 지천으로 피어 봄을 부르고 들뜬 상춘객들의 발걸음으로 대한민국이 들썩일 때도 고즈넉했던 동네가 몇 해 전부터 뉴스 바람을 타고 있다. 바로 두꺼비 때문이다.
광양의 어느 환경단체가 나서서 두꺼비들의 처지를 세상에 알렸다. 마을 사람들과 의논도 하고 전문가를 찾아다니며 해법을 찾기도 하고 청주의 원홍이 방죽 사례를 공부하기도 했다. 토론회 자리도 마련하고 예산을 세우기 위해 의원들을 설득했다. 덕분에 속도를 줄이라는 경고 표지판이 세워지고 생태이동통로도 설치됐다. 두꺼비들의 대이동이 시작되면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비옷 차림으로 현장 캠페인도 진행한다. 멈춰 선 차량을 지켜보다 마음이 급해지면 어린 새끼들을 빗자루로 쓸어 담아 길을 건네주기도 한다. 하지만 인간의 선의를 이해하지 못한 두꺼비의 무심 탓인지, 아니면 두꺼비의 생리를 헤아리지 못한 인간의 무지 때문인지 두꺼비의 개체수는 계속 줄어가고 있다. 혹자는 기후 변화 때문은 아닐까 미루어 의심하기도 한다.
비단 섬진강의 유래만 아니라, 사나운 팔자에도 불구하고 두꺼비는 숱한 전설을 만들어 왔다. 아이들은 모래로 두꺼비집을 지으며 헌 집 대신 새집 달라고 노래했고, 계모의 심술 때문에 밑 빠진 독에 물을 채워야 했던 콩쥐를 두꺼비가 구해주었다. 지네의 제물로 바쳐진 처녀를 대신해 독을 품고 싸웠다는 무용담도 있다. 떡두꺼비 같은 아이를 낳으라는 덕담도 있고, 좋은 일 슬픈 일 핑계 삼아 마시던 소주병에도 새겨져 술자리도 함께 해왔다. 모기나 파리 같은 해충을 잡아먹는 유익한 동물이라 믿어 ‘복을 주고’, ‘은혜를 갚을 줄 아는’ 영물로 두꺼비는 대접받아왔다. 그런데 이 험난한 세상에서 위험에 빠진 주인공을 구해주던 두꺼비들이 언제까지 공존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