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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개장터

by 물구나무

배가 다니던 시절이 있었다. 밀물이 들면 하동 포구에서 강을 거슬러 배들이 올랐다. 말린 김과 미역, 소금이 실리기도 하고 싱싱한 제철 고등어와 전어가 실려 왔다. 닷새에 하루씩 장이 서면 지리산 화갯골 사람들은 고사리, 더덕을 지고 왔고, 구례 사람들은 쌀과 보리를 팔러 왔다. 강 건너 운천 사람들은 나룻배를 타고 건너왔다. 운천은 한동네 사람 같았다고 한다. 누구네 집 자식이 결혼하는지, 소가 새끼를 낳았는지, 어르신의 안부를 챙겨 묻기도 하고 배를 타고 초상집에 다녀오기도 했다. 다리가 놓이기 전까지 운천과 화개를 하나로 이어주던 줄배는 남도대교가 들어서면서 폐물이 됐다. 한동안은 어쩌다 지나던 발길의 눈요깃거리로나마 묶여 지내다가 어느 날 문득 사라졌다. 배가 사라지면서 발길이 끊긴 화개 나루터도 노인들의 기억 속에만 남았다. 배도 없는 세상에서 사공을 찾는 사람이 있을 리 만무했다.


2003년 7월 개통된 남도대교는 경상도와 전라도를 잇는 소통의 상징이 되었다. 경상과 전라를 떼어버린 다리 이름부터 남도대교다. 지리산과 섬진강을 상징하는 두 개의 아치 구조물은 동서 화합과 지역감정 극복의 시대적 과제를 짊어지고 왕복 2개의 차로와 인도를 끼고 길이 395미터로 강을 가로질렀다. 217억 원 사업비 중 132억 원을 나라에서 대고 나머지를 전남과 경남이 분담해서 구색을 갖췄다. 광양 시내버스가 화개장터까지 다리를 건너왔다. 운천에 사는 어린이가 화개에 있는 유치원에 다니고, 화개 주민이 경운기를 몰고 구례로 건너가 농사를 짓게 되었다.


44 남도대교와 화개장터.jpg


바다와 내륙을 연결하는 지리적 이점 때문에 화개장의 기원은 삼국시대까지 거슬러 가지만, 가장 번창했던 조선 후기에는 진주장, 김천장과 더불어 영남의 3대 시장으로 꼽히기도 했다. 남원과 멀리 상주 상인들까지 모여들었고 남해안과 제주도뿐만 아니라 중국 배까지 드나들었다고 한다. 해방 전까지만 해도 우리나라 7대 시장 중 하나로 손꼽히기도 했다. 하지만 신작로가 뚫리고 기차가 다니기 시작하면서 점차 발길이 줄어들다 한국전쟁 이후 빨치산 토벌까지 더해지면서 장터는 활기를 잃어갔다. 90년대 말까지만 해도 지역주민들끼리 생필품을 구하고 서로 안부 인사를 나누는 초라한 재래시장으로 겨우 명맥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러던 화개장터가 새삼 세상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은 조영남이 부른 노래 덕분이었지만 무엇보다 ‘지역감정 극복’이라는 시대적 화두에 딱 맞아떨어졌다. 노래는 영호남이 한자리에 모이는 자리마다 빠지지 않고 불리는 단골 메뉴가 됐다. 대통령 선거 때면 취재차는 화개장터까지 나가 밑바닥 인심을 살폈다. 지역화합 축제 한마당 같은 행사가 자주 열렸고, 화합의 정치를 주장하는 정치인들이 잊지 않고 찾아오기도 했다. 분위기가 무르익으면서 슬레이트 지붕을 얹은 초라했던 그늘막 아래 노점 장터는 새로운 변화를 꿈꾸기 시작했다. 하동군은 화개 다리 건너 면사무소 앞 농지를 사들여 새롭게 장터를 조성했다. 3개의 전통 장옥이 들어서고 난전을 위한 시설과 전망대, 관리실과 화장실 그리고 주차장까지 갖춘 새 장터는 새천년의 부푼 꿈을 안고 2001년 봄에 개장했다. 때를 맞춰 화개장터에서 쌍계사까지 이어지는 십리 벚꽃이 만개했다. 그리고 용의 얼굴에 눈동자를 찍듯 2003년 여름 마침내 남도대교가 개통됐다.


그러나 화개장터의 번영이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2014년 겨울 대장간과 약재상이 자리한 쪽에서 원인을 알 수 없는 불길이 치솟았다. 서둘러 출동한 소방대가 50여 만에 화재를 진압했지만, 전체의 절반인 41개 점포가 잿더미로 변해버렸다. 다행히 인명피해는 없었지만, 생계를 잃어버린 상인들은 망연자실했다. 절망에 빠진 상인들을 위로하고 장터 복원에 마음을 보태려는 손길들이 모였다. 하동군은 물론이고 이웃한 자매결연도시 광양에서도 695만 2천 원 성금을 보내왔다. 어느 서예협회 회원들이 작품을 팔아 모은 수익금 1천5십만 원을 기탁하기도 했다. 2020년 여름 수해 때도 마찬가지였다. 지리산권에 쏟아진 집중호우와 섬진강 댐 방류가 겹치면서 강물이 제방을 넘었다. 건물들이 침수됐고 상점의 물건들이 물살에 휩쓸려갔다. 그때도 남도대교를 넘어 광양에서 자원봉사자들이 수해복구를 위한 손길을 보탰다. 응급 복구를 완료한 하동군의 발표에 따르면 전국에서 몰려온 자원봉사자가 6천4백 명, 구호 물품과 성금이 10억 원 이상 모였다. 코로나 위기 상황이었음에도 화재 참사 때와 달리 상점들은 빠르게 생업을 이어갈 수 있었다. 쓰러진 화개장터를 온 국민이 다시 일으켜 세웠다.


하지만 정작 문제는 내부에 있었다. 화재 복구 이후 새로 점포 임대 모집 공고가 화근이 됐다. 입점자 신청 자격을 과거 3년 이상 하동군 관내 거주자로만 제한한 것이다. 여론의 거센 반발이 일었다. 하동군에서는 자체 예산을 들여 복구한 만큼 예전처럼 난전으로 운영할 수 없고, 관광특화시장의 특성 때문에 지역민에게 우선권을 주어야 한다고 해명했지만, 영호남 화합의 의미가 퇴색될 거라는 우려를 잠재울 수는 없었다. 하동군은 ‘호남장옥’을 따로 마련하여 광양과 구례 출신 상인의 점포를 3개 배정하고 논란은 마무리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지난해 말 3년 임대계약을 마무리하고 새로 공고를 내면서 같은 문제가 또 되풀이됐다. 하동군은 이번에도 하동군 주민으로만 신청 자격을 제한했다. 마찬가지로 비난 여론이 빗발치자 며칠 뒤 최대 3개 점포에 호남 상인을 배려하기로 했다고 수정한 재공고를 냈다. 해명은 이전과 다르지 않았다. 3년 후에도 같은 공고가 나올 것으로 기대해도 될 듯싶다. 있어야 할 건 다 있고, 없을 건 없다는 화개장터에 정작 전라도 상인만 없게 생겼다.


조만간 섬진강을 가로지르는 다리가 또 하나 놓일 전망이다. 하동군 악양과 광양시 다압을 잇는 가칭 ‘남도2대교’다. 198억 원이 소요될 전망이다. 남도대교와 마찬가지로 왕복 2차로에 길이 350미터 규모다. 해마다 봄철이면 광양 매화, 구례 산수유, 하동 벚꽃 때문에 꽃 몸살을 앓는 교통 체증을 해소하고 영호남 동서화합과 상생의 시너지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게 관계자의 설명이지만 왠지 선뜻 공감되지 않는다. 뭔가 중요한 걸 놓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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