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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지 Jun 30. 2020

나 하나 나 둘 나 셋 나 넷

낭독의 정성을 느꼈던 경험

2020세월호: 극장들 <나 하나 나 둘 나 셋 나 넷> @삼일로창고극장 

2020.06.25 목요일 


이 공연은 매 회마다 시민들이 '배우'로 참여하여 대본을 낭독하는 형식이었다. 연출진과 참여 배우들은 사전에 몇 시간 정도의 준비 시간을 가질 뿐 (내가 이해하기로는) 무대에 입장한 뒤 비로소 대본을 받아보게 된다. 내가 느끼기에 일반인들이 무대에 서는 걸 관람하면 익숙하지 않고, 정제되어 있지 않고, 불안감과 어색함이 드는데 이번 공연에서는 그러한 어색함은 최소화되었고 오히려 낭독의 즐거움에 집중할 수 있었던 것 같다. 학창 시절 국어 시간에 한 명씩 일어나서 교과서 읽는 종류의 낭랑함을 느낀 기분. 배우가 준비하여 연출한 캐릭터가 아닌, 일반 사람들이 즉자적으로 집중하여 낭독함으로써 시공에 구성되는 인물들에서는, 전자와는 전혀 다른 질감이 났던 것 같다. 보다 더 정성스러운 느낌? 나도 동네에 낭독 동호회라도 만들어보면 어떨까라는 생각이 들 만큼 이 형식이 꽤나 재미있었다. 


본 공연은 4명의 각 인물의 독백이 주된 구조였다. 배우 모집 공고에서 "'나'를 경험하고자 하는 고등학생 이상 누구나 참여 가능합니다"라고 했는데, 이 표현 그대로 배우들은 그들 자신이 아닌 전혀 다른 인물들이 되어볼 수 있었다. 관극 하는 나 역시 늘 똑같은 나의 일상, 환경, 생각, 욕망 (요즘은 계속 '중산층'으로 살고 싶다는 욕망을 한다)에서 잠시 벗어나 20대 캄보디아인 혼혈 여성이자 야설 작가가 되어보았다가, 고등학생 아들을 둔 40대 여성이 되어보고, 장래희망이 라푼젤인 어린 딸을 둔 30대 변호사가 되어보고, 불교에 귀의한 비구니가 되어보기도 하는 경험이었다. 나와 다른 인물들의 내밀한 생각과 욕망을 만난 느낌. 이 부분이 평소 연극을 관람하며 느꼈던 경험과는 좀 달랐던 것 같다. 


공연 종료 후 관객과의 대화에서 나온 얘기는 '세월호 공연을 위해 연극인들이 모여서 각자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인데, 본인의 대본을 다른 연출가를 구하는 대신 작가가 직접 연출하고, 음향 감독이 전문이 아닌 사람이 음향 오퍼를 보고 있는 그런 상황이라는 설명이었다. 이렇게 공연이 수공업처럼 엮어지고 가다듬어지는 상황을 관객으로서 발견하게 될 때 나는 어떤 즐거움을 느끼게 되는 것 같다. 시스템이 움직인다기보다는 개인들의 동기나 결정들이 움직이는 것이 보일 때의 즐거움. '하고자 하는 마음'을 가진 이들이 움직이며 디테일과 정성을 엮어내는 모습이 보일 때의 즐거움을 <나 하나 나 둘 나 셋 나 넷>을 보면서 느꼈던 것 같다. 


공연정보 - http://www.nsac.or.kr/Home/Perf/PerfDetail.aspx?IdPerf=1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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