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힘
크리스마스가 막 지나고 한 해가 저물어가던 겨울, 연인과 이별했다.
인사를 건네며 웃는 동료들의 얼굴이 다른 차원에서 일어나는 현상처럼 비현실적으로 보였다. 불현듯 눈물을 쏟으며 하루걸러 반차를 썼고, 틈만 나면 이별 극복 방법을 검색했다. 명상이라도 해보려고 눈을 감으면 그가 떠올랐고, 그 미소가 너무나 아파서 입술을 깨물었다. 가슴 밑바닥 가장 연약한 부분을 누군가 날카롭게 긁는 것 같았다. 가슴이 찢어질 듯이 아팠다. 어묵탕 끓여 먹자고 했었는데…. 냉장고 문을 열지 못했다. 미리 사둔, 냉장고 속 통무를 마주할 자신이 없었다. 무를 생각만 해도 목이 막혀왔다. 할 수만 있다면 영화 <이터널 선샤인>에서처럼 기억을 몽땅 지우고 싶었다.
매일 새벽 절박한 심정으로 ‘도인 명상 위안 20’을 시청했다. 잠들지 못한 긴 밤 끝에 들리는 김도인 님의 목소리만이 유일한 구원 같았다. 방송이 끝나면 무작정 나가서 걸었다. 김도인 님의 조언을, 약도가 그려진 종이를 손에 쥐듯 마음으로 움켜잡았다. 그의 생각을 밀어내려고 억지로 애쓰지 않았고, 흘러내리는 눈물을 참지 않았다. 충분히 그리워했고, 큰소리로 통곡하듯 울었다. 이 사람이 나에게 어떤 의미였는지 생각하며 걸었다. 따뜻하고 다정한 말솜씨, 진심으로 위해주던 마음씨……. 그래, 그런 것들을 가르쳐주려고 왔었구나, 생각했다.
그 후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문득 그의 얼굴이 떠올라도 아프지 않았고, 그가 잘 살아가기를 마음으로 바랄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또 한 번의 이별이 끝이 났다. 마음의 준비를 할 겨를도 없이 한겨울 내 앞에 쿵 떨어졌던 이별. 이겨내지 못할까 봐 두려웠고, 조바심이 들었다. 하루빨리 벗어나고 싶었지만, 시간은 슬픔의 마지막 한 방울까지 다 짜내고 나서야 이별 뒤에 마침표를 선명히 찍어주었다.
연말을 황망히 보내고 맞은 2019년 2월.
한참 만에 냉장고에서 꺼내 든 통무는 수분이 쭉 빠진 채 쪼그라들어 있었다. 눈물 콧물 다 빼내고 폭삭 수척해진 내 모습 같아서 웃음이 났다.
“너덜너덜 경험치를 늘리고 생생하게 살아가세요.” 김도인 님이 방송에서 해주었던 마지막 말이다. 나는 지금도 이 말을 가슴에 간직하고 살아간다. 어떤 말보다도 내게 큰 위안이 되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