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GM의 TPO
깊은 숲속 넓은 부지 한가운데에, 혼자서 온전히 쉬고 싶을 때면 찾던 리조트가 있다. 건강 식단으로 구성된 음식이 제공되고, 요가나 숲속 명상 같은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등 웰에이징을 테마로 삼고 있어서, 그곳을 다녀올 때면 늘 조금쯤 정화된 마음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2016년부터 해마다 찾을 만큼 만족스러웠던 장소인데, 지난해에는 아쉬움을 안고 돌아와야 했다. 관리 소홀 문제로 발생한 작은 불편함이나, 과한 홍보 배너들로 인한 거슬림 같은 문제는 이해심을 적극 사용해 넘길 수 있었다. 하지만 끝내 마음에 남은 건 카페에 흐르던 음악이다.
그곳 옥상 카페의 첫인상은 고즈넉했다. 숲에 둘러싸인 공간에서 와인 한 잔을 홀짝이며 흘러가는 구름을 보고 있으면, 해묵은 긴장까지 녹아내리며 편안했다. 그 편안함이 그지없이 좋아서 일상으로 돌아온 후에도 한동안은 그리움에 젖어 지냈다. 그런데 그날은 달랐다. 카페에 K-POP 음악이 제법 큰 볼륨으로 흘러나오고 있었다. 음악 자체가 나쁘다는 뜻은 아니다. 활기 있고 생동감 넘치는 K-POP은 그 자체로 훌륭하다. 다만 음악은 어떤 장소나 분위기에 맞아떨어질 때 제 역할을 한다. 아무리 멋진 옷이라도 TPO에 맞지 않으면 오히려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그 순간 음악은 소음이 되었고, 그곳은 내게 소란스러운 기억으로 남게 되었다. 풍경을 감상하거나 사유할 때, 독서를 할 때의 음악은 뒤에서 조용히, 공간의 공기를 조금 더 부드럽게 만드는 정도의 역할이면 충분하다.
음악이 분위기에 절묘하게 스며들어 기분을 농밀하게 만들어주는 순간, 찰나는 짙게 물들고 음악의 마법이 시작된다.
여름날 노천카페에서 흘러나오는 경쾌한 질베르토의 보사노바는 샴페인 잔 속 반짝이는 버블에 생기를 더해주고, 깊은 밤 어두운 바를 가득 채우는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의 애달픈 리듬과 깊숙한 목소리는 위스키 한 모금을 더욱 묵직하게 만들어준다. 또한 클럽에서 쿵쿵 울리는 강렬한 비트는 적정한 신명을 뽑아내 달아오른 기분을 더 고조시키고, 반대로 별이 반짝이는 밤하늘을 감상하며 듣는 쇼팽의 야상곡은 마음을 더 누그러뜨리며 밤의 정취를 근사하게 색칠해 준다.
이처럼 음악의 효용은 시간, 장소, 상황과 맞아떨어질 때 한층 섬세하게 작용한다. 온전한 쉼을 위해 마련한 장소라면 그 공간에서 일어나는 정서와 어긋나지 않는 음악을 고르는 일도 하나의 배려가 아닐지 조심스럽게 생각해 본다.
같은 장소라도 어떤 음악이 흐르느냐에 따라 그 순간을 맛보는 감각의 표정과 깊이는 크게 달라지는 법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