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
“산책의 한자 뜻 알아요? 어지러운 생각을 흩뿌린다는 의미래요.”
散 흩을 산, 策 꾀 책.
언젠가 지인에게서 들은 말이다.
환기가 필요할 때나 그렇지 않을 때도 강아지처럼 산책을 좋아했는데, 뜻을 듣고 난 뒤로 산책을 더 좋아하게 되었다.
가끔 한가지 생각을 붙잡고 반추할 때가 있다. 그런 생각은 잘 안 풀리는 문제이거나 타인에 대한 불만 혹은 자책, 지나친 걱정 등 대개는 부정적인 것들이다. 이렇게 생각의 진창에 빠졌을 때 위장의 평화가 깨지기 전 산책을 한다.
나는 숲을 사랑한다. 정확히 말하면, 새벽의 숲속 산책을 사랑한다. 동트기 전, 희뿌연 안개가 내려앉은 새벽 숲속은 고요하다. 윤곽은 희미하고 어둠과 빛이 섞여 있는 개와 늑대의 시간. 빛을 기다리는 그 경계의 어슴푸레함이 지나고 이윽고 나무 사이로 가느다란 빛줄기가 비쳐 들면 이슬방울에 작은 불이 켜진다. 이렇게 나무나 구름 사이로 비쳐 드는 햇살을 ‘볕뉘’라고 부른다. 작은 틈을 뚫고 들어와 수증기 속에서 산란한 볕뉘의 은은한 빛은 포근한 손길이 되어 숲을 깨우고, 숲은 잠에서 깨어나기 위해 서서히 숨을 고른다. 나는 숲이 내뱉는 숨을 온몸으로 들이마시며 멀리서 들려오는 작은 새들의 청아한 노랫소리를 듣는다.
‘아……. 좋다.’
행복감이 저릿하게 스며든다.
깨어나는 숲속을 걸으며 아침을 맞이하는 일. 이런 산책을 나는 앞으로도 영원히 사랑할 것 같다.
알랭 드 보통은 시각적 아름다움이 정신을 고양시킨다고 했다. 숲이 빚어내는, 이토록 아름답게 생동하는 장면은 정신을 고양시키기에 충분하다. 한 걸음, 한 호흡마다 고요한 전율이 몸속으로 퍼진다. 오직 감각만이 뚜렷하게 살아나는 순간이다.
감각이 활성화되면 커져 버린 생각 더미 사이로 틈이 생기고 숨이 통하는 길을 만든다.
숲 틈으로 햇살이 들어 숲이 숨을 쉬고 깨어나는 것처럼, 산책을 하다 보면 생각 틈에도 볕뉘가 들고 숨이 깊어진다.
그리고 생각 더미에 파묻혔던 영혼이 깨어난다.
소파에 누워서 아무리 생각을 거듭한들 우리가 당장 해결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다. 일단 집을 나서자. 숲으로 걸어 들어가자.
그다음 일은 산책이 해결해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