균형

꾸밈과 본질의 조화

by 진초록


나는 긴 손톱을 유난히 싫어한다.


누군가의 손톱이 길고 화려한 장식으로 채워져 있으면 거부감이 든다. 특히 손이 클로즈업되어 비치는 장면이 많은 요리 프로그램이나 제품 소개 영상을 볼 때, 손톱이 길고 과하게 치장되어 있으면 더 이상 보지 못하고 채널을 돌린다. 이유라면 위생과 연결된 즉각적인 불편감이 첫 번째이고, 미적 기준과 시각적 선호의 차이도 들 수 있겠다.


화려한 손톱을 즐기는 사람을 비난하려는 건 아니다. 그것도 패션이고 자기 취향이자 개성의 표현이니까. 그리고 취향은 옳고 그름의 문제는 아니니까. 대면하고 있는 자리에서 맞닥뜨린 상황이라면 모를까 리모컨의 버튼을 눌러 간단히 피할 수 있는 상황이라면 굳이 감내하고 싶지는 않다.


그렇다면 나 또한 누군가에게 거부감을 일으키는 요소를 갖고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보면, 우리는 누구나 누군가에게 조금씩 거부감을 줄 수 있다.


나는 꾸미고 싶을 때 가끔 인조 속눈썹을 붙인다. 최대한 붙인 티가 나지 않도록 제일 가늘고 짧은 것을 선택한다. ‘자연스러워서 붙인 티도 안 나겠지?’ 나만의 착각이었다. ‘처음 봤을 때 속눈썹밖에 안 보였어.’ 남자친구가 나를 만나고 한참이 지난 뒤, 이제는 말할 수 있다며 해준 말이다. 다른 사람의 손톱 운운할 일이 아니구나 싶었다.


잘 보이고 싶은 마음이 크면 꾸밈이 과해진다. 변화에 대한 욕망 내지는 그냥 예쁘니까 같은 자기만족도 설득력 있는 이유가 될 수 있으므로, 과한 꾸밈의 동기를 인정 욕구만으로 단순화할 수는 없겠지만, 꾸밈의 동기가 무엇이든, 꾸밈이 선을 넘으면 본질과의 균형이 깨진다. 사람의 고유한 눈빛, 표정, 손끝의 태도가 풍기는 본래의 분위기가 사라진다. 진정한 미는 조화와 절제에 있다는 생각에 깊이 공감하면서도, 방심하는 사이 어느새 화장이 진해진다.


문질빈빈(文質彬彬)이라는 사자성어가 있다. 공자의 말이다. 꾸밈과 본질이 조화를 이루어야 아름답게 빛이 난다는 뜻이다. 오늘 나의 꾸밈이 본질을 덮어버리지는 않았는지, 거울 속에 비친 내 모습을 다시 한번 들여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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