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내가 친구 사이였다면 어땠을까
‘좀 부드럽게 말할걸….’
본가에 다녀오는 길엔 늘 마음이 조금 무겁다. 허리도 다리도 성치 않은 몸으로 며칠을 준비해 김치를 담갔다는 엄마의 이야기를 듣고 오던 날도 그랬다. 연세도 있고 힘도 예전 같지 않으니, 이제는 사서 먹자고 몇 해 전부터 말해왔는데, 올해도 그 말은 소용이 없었다. 아픈 몸으로 무거운 걸 들고 허리를 굽혀 일했을 모습이 떠오르니 속이 상했다. 그래서 괜히 짜증 섞인 말을 내뱉고, 감정에 휩쓸려 엄마를 나무라고 말았다.
'고생 많았지, 우리 엄마.’
필요한 건 이 한마디였을 텐데.
돌아와 물을 한 잔 마시는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엄마가 아프다는 사실보다, 그 아픔에 공감하는 마음이 만들어낸 ‘내 아픔’이 나를 더 힘들게 하는 것이 아닐까.
『좋은지 나쁜지 누가 아는가』에서 류시화는 타인의 아픔에 공감하는 것을 넘어 자신도 그것에 압도되어 정서적으로 소진되는 것을 연민 피로라고 했다.
김치를 내가 담근 듯 피로감이 몰려왔다.
엄마라는 존재는 참 이상하다. 너무 가까워서 밀어내고, 너무 소중해서 화를 낸다. 몸이 안 좋은데도 쉬지 못했다는 친구의 이야기를 들으면 걱정은 되지만, 그래도 ‘고생했겠다’라는 다정한 말을 건넬 수 있다. 똑같이 힘든 이야기인데, 엄마에게는 따뜻한 위로보다 원망 섞인 말이 먼저 튀어나온다.
엄마와 내가 친구 사이였다면 어땠을까?
친구였다면 감정의 범람 없이, 들어주는 마음으로 위로를 건넬 수 있지 않았을까. 다그치기보다 걱정의 마음을 부드럽게 풀어낼 수 있지 않았을까. 엄마와 딸 사이에는 늘 작은 후회들이 떠다닌다.
나는 우리 사이에 따스한 거리를 두려고 한다.
엄마의 아픔에 공감하면서, 영혼의 소진 없이 위로를 건넬 수 있을 만큼만. 그렇게 엄마와 딸이 아닌 친구 사이의 거리에서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고통을 알아주는 사람이고 싶다. 내가 바라는 딸의 모습은 이런 것이다.
매번 실패로 끝나고 말지만, 그래도 다시 한번 마음의 거리를 조절해 본다.
더 다정한 딸이 되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