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logue. 스스로에게 다정하기 위해 퇴사했다

불행과 불확실함 중 어떤 것을 선택할 것인가

by 진달

| 이제는 잠시 멈출 때


나는 5년차 직장인이다. 다니다보니 시간이 훅훅 간다는 게 실감난다. 벌써 5년차라니. 그새 대리라는 직함을 달았지만 여전히 어색하다. 회사를 이 정도 다니면 안정감이 생길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았다. 인생에서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은, 불안한 뗏목을 타고 망망대해를 떠도는 듯한 기분을 온 몸으로 느낀다. 연애도, 진로도, 무엇 하나 확실한 것이 없는 기분.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도 이렇게 빨리 변하는데, 영원한 것은 과연 존재하는가 생각하며 씁쓸해진다.


밤 10시가 넘어갈 때까지 모니터를 뚫어져라 보고 있던 순간 그런 생각이 들었다. '10년 뒤에도 이 상태 그대로면 정말 못 견딜 것 같아.' 그 생각만으로도 숨이 턱 막히고 눈물이 고여왔다. 처음 느끼는 감정이었기에, 나도 내가 왜 이러는지 당황스러웠다. 그 날부터 나는 미래의 내 모습을 그려보기 시작했다. 내가 원하는 것, 바라는 삶, 나라는 사람을 들여다보고 알아보았다. 그리고 선택의 순간과 마주했다. 버틸 것인가, 등 떠밀리듯이 변화를 온 몸으로 맞이할 것인가.


그리고 난 변화를 선택했다.


온 몸과 마음이 이대로는 안 되겠다고 계속해서 신호를 보내고 있는데, 이렇게도 해보자, 저렇게도 해보자 하며 안간힘을 쓰는 내 자신이 안쓰러워 토닥이지는 못할 망정 '더 열심히 해봐!' 라며 채찍질을 해왔던 순간들. 변화는 고통스러운 과정이지만, 그렇다고 남아있는 것이 덜 고통스러운 것은 아니었다.


혹자는 너무 나약하다고 평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나약함의 기준이라는 게 어디까지일까. 계속해서 이대로라면 살 가치를 못 느끼겠다는 생각이 들 때까지 나를 몰아붙여 위태로운 순간이 찾아올때쯤 그만두면 그제서야 '노력했네'라는 평가를 받을 수 있을까. 무엇을 위해서? 애초에 이렇게 살아야만 한다고 정해준 사람은 없었다. 다 나의 선택을 따라 온 결과였다.


우리는 스스로에게 너무 가혹하지 않은가 다시 한 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이미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우리에게 충분히 차갑고 가혹하다. 그래서 나라도 스스로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안아주고, 잠시 뒷걸음질 쳐도 괜찮으니 한 숨 돌리라고 허락해주기로 했다.


우리에게는 불행과 불확실함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순간이 온다. 익숙한 불행을 선택하는 것은 훨씬 편하고 안전한 길처럼 보인다. 하지만 나는 지금 불확실함을 선택했다. 그리고 솔직히 말해서, 미칠듯이 불안하다. 머릿 속은 엄청난 생각의 파도로 요동치고 있고, 마음 속은 폭풍우가 불고 있는 것처럼 울렁거리고 따끔거린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동시에 희망으로 가득 차오르고 있다. 나의 글은, 자기 인생에서 가장 대담하고도 용감한 결정을 내려버린 한 사람이 겪는 운명의 소용돌이를 적나라하고 담담하게 보여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