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도 안 죽어"

회사 밖에도 사람 살고 있어요

by 진달

| 퇴사는 불확실함 속으로 나를 내던지는 결정이다


퇴사한다고 죽는 건 아니지만 대책없는 퇴사는 역시 무섭다. 그게 5년간 회사에서 주는 돈만 받아 살아온 사람의 입장에서는 더더욱.


그래서 다들 말한다. 아무리 힘들고, 아무리 싫어도 플랜B는 만들어놓고 나오라고. 석사를 갈거면 대학을 붙어놓든지, 이직을 할거면 다른 회사를 붙어놓든지, 부수입 현금흐름이라도 만들어놓든지. 나는 그 중 어떤 것도 이뤄놓은 것이 없다. 진퇴양난의 기분이었다.


머리로는 백 번 이해하는 말이지만 도무지 마음이 따라주지 않는 상황들이 있다. 내 상황이 딱 그랬다. "용기있는 자가 용감한 행동을 하는 게 아니라, 용감한 행동을 하는 자가 용기있는 자라고 했어." 스스로 되뇌인다. 처음으로 맞닥뜨린 반응은 하나같이 '용감하다, 멋있다'였다. 그냥 스스로를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용감한 사람.


하지만 생각과 마음은 별개로 움직이고 있었다. 나의 요동치는 마음은 본능적으로 나와 다른 길을 걸어온 사람들을 찾았다. 내 앞에는 오직 이 길 하나밖에 보이지 않았었는데, 나와 다른 종류의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수많은 친구들에게 연락을 돌려 한 번 만나서 조언을 구하고 싶다 했을 때, 따뜻한 답장들이 돌아왔다.




1. 사업하는 친구 A


친구 A는 졸업 직후 한 번도 취직을 한 적이 없었고, 자기만의 사업을 하고 있다. 내가 5년차 직장인이 되었을 때 그 친구는 5년차 사업가의 길로 접어들었다. 현재는 공간대여 사업 중인 A가 말한다.


"나와도 안죽어. 계단식으로 천천히 한 단계씩 올라가면 돼. 조금씩 사이즈를 키워가는거야. 나도 처음에는 많이 불안했었고 두려움이 많았지. 근데, 그래서 마음 공부를 많이 했어. 책도 많이 읽고, 경험이 생기면서 조금씩 나아지더라. 너무 조급해하지 말고 차근차근 하면 돼. 다만, 뭔가를 하면서 아이디어도 떠오르는거지 가만히 앉아서 생각만 한다고 해서 뭐가 되지는 않더라.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걸 하면서 뭉툭하던 생각이 조금씩 뾰족해지는 것 같아."


이런 말을 들으니 조금 안심이 된다.


A는 사업을 모험가에 비유했다. 처음부터 모든 게 완벽하게 갖춰진 상태로 시작하는 사람은 없다고. 묵묵히 길을 가다가 필요한 스킬이 있으면 아이템을 줍듯이 하나 뾱 집어들고 배우고, 그런 식으로 차근차근 해나가다보면 어느새 멀리 와있는거라고.


마음공부가 중요하다는 말에 뼈져리게 공감했다. 그건 회사를 다니든, 밖에 있든 공통으로 적용되는 말일 것이다. 격변하는 세상 속에서 요동치는 내 마음 하나만이라도 제대로 붙들고 돌봐줄 수만 있다면, 이 한 몸 잘 데리고 살아갈 수 있겠다는 용기가 생길테니까.





2. 해외석사 다녀와서 회사 다니는 선배 B


이번에는 B를 만났다. 해외에서 석사까지 하고 자산운용사에서 일을 하고 있는 선배였다. 나보다는 더 넓고 장기적인 시야를 가지고 조언을 해줄 수 있을거라고 믿고, 식사 한끼 같이 하자고 요청을 했다.


선배 : "너가 지금 조급해 할 필요가 전혀 없어보이는걸? 이제 시작으로 보여. 장거리 달리기 해봤니? 장거리를 무리 없이 달리기 위해서는 기초체력이 있어야지만 되거든. 그 기초체력을 키우는 시기라고 생각하면 심플해. 지금까지야 밑에만 보고 잰 걸음으로 걸어왔겠지만, 앞으로는 많이 달라. 그게 딱 자기 나이야. 항상 꿈은 크게 갖고! 사람은 꿈대로 가더라."


나 : "석사를 간다 하면...내가 그냥 관심있는 분야로 가는거랑, 취업이 잘 된다고 하는 업종으로 가는 것 중에 고민돼요."


석사 : "당연히 관심 있는 분야로 가야지! 하고 싶은거 해도 갈 길이 바쁜 걸 왜 돌아가? 자신을 믿어봐! 가보지 않은 길이 두렵기도 하겠지만, 뒤돌아보면 바른 길을 가고 있는거야. 너가 지금 현실에 안주할 나이는 아니잖아. 남들에게 좋아보이는 건 금방 질려. 아무도 너의 인생을 대신 살아주지는 않으니까. 그냥 Give it a shot."


인간 자기계발서시네요, 하면서 허헣 웃으며 자리가 마무리됐다. 근데, 나보다 몇 년 더 살아본 사람이 이런 말을 해줄 때 마음이 안심이 되는 건 사실이다. 내가 꼭 내게 해주고 싶었던 말이었다. 괜찮아, 하고 싶은거 다해봐.




3. 유투버이자 프로이직러에 사업에도 관심 있는 학교 선배 C


나와도 안 죽어.


선배는 자기 주변에 대기업 다니다가 나와서 본인만의 일을 하고 있는 여러 사례들을 들려주면서 용기를 심어주었다. 그러면서 현실적인 조언도 잊지 않았다. "버는 건 없고 쓰는 것만 있으면 불안한데, 사람 만날때만 돈 쓰고 혼자 있을 때는 지출을 최대한 줄이면 돼. 불안해서 뭔가를 선택하는 게 위험한 거 같애. 그러니까 불안하다고 해서 막 일을 저지르지는 마. 나는 이제까지 돈보다는 재미를 좇았던 것 같애. 그만두고 새로운 걸 찾는 것도 처음 한 두번이 어렵지, 처음이 진짜 어렵거든. 근데 새로운 걸 하면서 만나는 사람들이 있고, 지금은 되게 불안한데 점점 빌붙을 데가 많아지는 느낌? 그런 거 같아."





평소에 회사 다닌답시고, 나랑 다른 인생을 살고 있는 주변 친구들과 선배들의 삶을 제대로 들여다보지 않았다. 하지만, 퇴사결정을 내린 후 불안한 마음을 붙들고 본능적으로 찾은 사람들의 조언은 한결 같았다. 응원한다고, 늦지 않았다고, 무서워하지 말라고.


인생 앞에 놓인 수많은 선택지 앞에서 뭘 고를지조차 모르는 상태라니. 이 길도 멋져보이고, 저 길도 멋져보인다. 다들 자기 갈 길을 정해서 열심히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데 나만 정체되어 있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내가 가고 있던 이 길일 옳은 줄 알고 살아왔는데, 이제 와서 발을 빼고 다른 길을 찾으려니 막막하기 그지 없다. 하지민 현실적이면서도 용기를 주는 말들을 해주는 지인이 주변에 있다는 것에 너무 감사하다. 내가 마냥 무모하고 대책없는 결정을 내려버린 것처럼 보였는데, 숨고르기 단계라고 스스로 다독이다보니 이 시기가 나에게 꼭 필요했던 것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아직은 너무나도 쉽게 요동치고는 하지만, 이미 마음을 굳게 먹은거 뒤도 돌아보지 말고 앞만 봐야겠다. 나도 훗날에는 방황하고 불안해하는 누군가에게 큰 위안과 도움이 되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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