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처음은 있는 법이니까
A : 지금 내가 기타를 배우기엔 너무 늦은 거 아닐까? 이미 이 분야에서 잘하는 사람들도 많고, 내가 잘할 수 있을지도 모르고..
B : 봐봐, 지금 시작하면 넌 10년 후에 기타를 칠 줄 아는 사람이 되어 있을 거야. 하지만 지금 시작하지 않으면 넌 10년 후에도 기타를 못 치는 사람으로 남아있겠지.
'기타'의 자리에, 지금 자신이 배우고 싶지만 두려운 뭐든 넣어도 문장은 성립된다. 가만 보면, 인생은 꽤나 단순한 법칙들로 이루어져 있다. 하고 싶으면 하면 되고, 잘 안 되면 더 해보면 되고, 그냥 시간과 노력을 들이부어보면 답이 나온다. 근데 속히 '가성비'에 대한 집착과 더불어, 남들이 어떻게 사는지에 대해 마음껏 기웃거릴 수 있는 온갖 인프라가 갖춰진 현대 사회에서 우리는 지레 겁을 먹기 일쑤다.
나보다 더 잘하는 사람들이 많을 테니까, 잘 못하면 창피할 것 같으니까, 괜히 시간 낭비일 것 같으니까, 그렇게 선택지를 좁히지도, 정하지도 못한 채 우왕좌왕하기 십상이다. 내가 그랬으니까. 나이를 먹어가며 안정에 대한 욕구가 더 커지다 보니, 상대적으로 어릴 때보다 그런 선택이 더 어려워진 것처럼 느껴진다.
'잘하려는 부담감', '실패하지 않으려는 강박'이 더해지는 순간, 모든 즐거움은 일이자 노동이 된다.
처음 배우는 건 뭐든 당연히 어설프고 잘 모르고 서투른 건데, 우리는 새로운 시작 앞에서 스스로를 너무 다그치지는 않았는지. 어제 10번 했던 걸 오늘 11번 했다는 그런 개운함으로, 어제 5개 틀리던 거 오늘 4개 틀렸다는 뿌듯함으로. 그렇게 한 발짝씩 커가는 나를 응원해 주고, "할 수 있어!" 응원해 주고, 그렇게 조금씩 익숙해지고, 나름의 스킬을 터득하다 보면 10년, 20년 해온 선수급까지는 아니더라도 아마추어 준 선수급은 되지 않겠나.
대학생 때 처음으로 복싱을 시작했을 때, 나는 내가 잘할 수 있을지 고민하지 않았다. 그냥 스트레스 좀 풀 수 있는 운동을 찾다가 복싱에 정착했던 것 같다. 그리고 그냥 매일매일 새로운 기술을 익히고, 10번 맞던 게 5번으로 줄어들 때 소소한 희열을 느끼면서 그 운동 자체를 즐겼던 기억이 있다. 대단한 선수가 되겠다는 욕심도 없었고, 자연스럽게 '오늘 하루 운동 끝내기'라는 소소한 목표를 매일 달성하면서 뿌듯해했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총무도 하고, 아마추어 대회까지도 출전하면서 참 인생에서 소중한 경험을 할 수 있었다. 돌이켜보면, 뭣도 모르고 시작했으니까 그렇게까지 열심히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어디 가서 '나 복싱했어!'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도 있고 말이다)
가까운 친구가 테니스를 3년 전부터 배우기 시작했었다. 회사를 다니기 정말 힘들어하던 그 친구는, 어느 날 테니스에 흥미가 생겨 코칭을 받기 시작하더니, 동호회에 들어갔다. 그 동호회에서 퇴근 후에도, 주말에도 꾸준히 나가서 테니스를 치다 보니 어느새 신입 회원을 가르치고, 정식 코치 제안을 받는 수준으로까지 올라갔다. 회사 욕으로 찌들어있던 얼굴이 만날 때마다 피어갔고, 대화 주제는 어느새 테니스가 얼마나 재밌는지로 바뀌었다. 한 가지를 그렇게 열심히 꾸준히 하는 것도 멋있다고 생각했는데, 심지어 실력도 상당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참 자랑스러웠다. 늦은 때라는 건 정말 없구나. 언젠간 그 스킬로 회사를 그만두고서도 밥벌이를 할 수도 있을게다, 그 친구는.
발리에서 서핑을 배웠을 때, 거기서 만난 현지인 서퍼 친구가 참 속 깊은 조언을 주었다. 당시 나는 퇴사 직후, 정말 불안감에 미쳐 떨고 있었을 때다. 머리로는 알겠는데, 새로운 거 시작하기가 너무 무섭다며 그 애기를 타지에서 만난 외국인한테까지 털어놓고 있었다. 그때 만난 서퍼는 이제 갓 20살이 된 친구였는데, 서핑 경력이 무려 13년이었다. 경악했다. 7살 때부터 파도를 타기 시작했다고 한다. 와, 13년이라니. 무림 고수다. 어쨌든, 내 이야기를 듣더니 그 친구가 자기 남동생 얘기를 들려주었다. 당시 동생은 서핑을 처음 시작하는 입장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형에게 "나 너무 무서워, 친구들만큼 잘 못 탈까 봐, 애들이 놀릴까 봐 두려워"라고 했단다. 그러자 형은 동생을 더 강하게 몰아붙였다고 한다. "너 무섭다고 지금 안 배우면, 나중에 친구들이랑 더 많은 갭이 벌어져 있을 거야! 지금부터 시작하면 너 충분히 잘 탈 수 있어." 그날부터 동생을 끌고 매일같이 바달로 나가 동생에게 서핑을 가르쳤고, 지금은 지역에서 가장 잘 타는 서퍼 중 하나로 성장했다고 한다.
큰 파도를 아무렇지도 않게 자유자재로 타는 사람들을 보며 ‘와!! ’ 환호성을 지르는 나를 보고, 그 친구는 ‘저렇게 타고 싶어? 10년 하면 돼!’라고 아주 해맑게 말해줬다. 지금 내가 느끼는, ‘나도 저렇게 잘 탈 수 있을까?’ 하며 불안해하는 것이, 당장 내가 선수급으로 서핑을 잘 타고 싶어 하는 것처럼 터무니없는 소망이라는 거다. 그렇다고 해서, ‘아 나는 절대 저 사람 못 따라잡을 거야’라고 지레짐작하면서 아예 지금부터 포기하고 손 놓고 있느냐, ‘아니야, 저거 하면 재밌을 거 같아, 나도 조금씩 해볼래’ 하면서 스스로 성장하면서 실력을 쌓아나가느냐는 천차만별의 결과를 가져올 테다. 10년 후에는 서핑을 잘 타는 사람이 돼있느냐, 10년 후에도 서핑을 못 한 채 '와 멋있다...' 하고 있는 사람으로 남아있을 것인가의 차이다. 단순히, 하고, 안하고의 차이.
결국, 내가 하고 싶은 거 도전해 보면서 사는 삶이 가장 행복한 삶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적어도 시도해 보면, 안 하는 것보다 후회가 덜 남을 것 같다고 판단했다. 단순하게 생각하는 게 결정을 하는 데 더 도움이 된다. 스포츠의 예시만 들었지만, 새로운 학문을 배우든, 새로운 관계에 뛰어들든, 뭐든 새로운 시작은 두렵다. 하지만 두려움보다는 우리가 모르고 있는 또 다른 문에 대한 기대감과 설렘이 더 컸으면 좋겠다. 불안을 느낄 때든, 설렘을 느낄 때든, 우리의 심장은 동일하게 쿵쾅거리니까. 미지의 세계에 대한 불안감을 설렘으로 바꾸는 우리가 되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