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정상인인가요
살다 보니 '정상'이라는 개념에 조금씩 스며들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한다. 우리 사회는 명백히도 비정상을 반기지 않을뿐더러, 정상과 비정상을 아주 촘촘하게 규정해 놓았다. 특히 회사에서는 튀지 않는 게 최고의 미덕인 듯하다. 그중에서도 대기업은 여전히 개개인의 개성을 별로 반기지 않는 조직임이 분명하다.
획일화된 교육의 잔재인지 모르겠다만, 남들과 크게 다르지 않을 때 자연스럽게 안도감을 느끼는 경향이 아직 내 안에 남아있다. 너무나도 많은 사람이 이미 수도 없이 걸어왔던 잘 닦여져 있는 길을 걷고 있다는 안도감, 21일이 되면 꼬박꼬박 돈이 들어온다는 안도감, 회사 동기들과 비슷한 수준의 주거환경 속에서 비슷한 고민을 하며 살아가고 있다는 안도감 등등. 이대로 쭉 흐름을 잘 쫓아가다 보면 정년퇴직을 할 때까지 썩 괜찮은 인생을 살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진짜 내 인생을 이 길 그대로 따라가면서 산다는 것의 진정한 의미를 제대로 생각해보지 못했던 것 같다.
어느 순간 모든 것에 숨이 막히기 시작했다. 이 나이쯤엔 이 정도 스펙은 있어야지, 회사는 이 정도 다녔어야지, 돈은 이 정도 모아놨어야지, 연애는 이 정도 해봤어야지, 재테크에 대해서 이 정도는 알아야지, 부모님께 용돈은 이 정도 드려야지, 축의금은 이 정도 내야지, 여행은 이 정도 다녀봤어야지 등등… 목록은 끝이 없다. 뻔한 인생은 살지 않겠다고 다짐했으면서도 뒤돌아보니 나는 너무나도 뻔한 인생을 살고 있었다. 그리고 '이 나이쯤엔'의 잣대는 일상생활 곳곳에 너무도 자잘하게 박혀있어서 의식을 하든 안 하든 그로부터 꾸준히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질식해 버리겠다.
더 이상 어떤 것에도 의미를 찾지 못하는 순간이 찾아왔다. 이게 다 무슨 의미람. 누구를 위한 인생을 살고 있었던 걸까. 속도를 줄이지 못하는 쳇바퀴 속에서 전력질주를 하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내 발바닥이 다 까지고 있는 줄도 모른 채. 이런 삶의 방식 속에서 목적의식이 있었다면 나는 기꺼이 행복하게 지내고 있을 것 같다. 하지만 '내가 왜 이렇게 살고 있지?'라는 질문에 아무런 대답을 하지 못하는 나를 보며, 고통스럽고 깊은 생각에 빠졌다.
토드 로즈의 <평균의 종말>이라는 책에는 이런 문구가 나온다.
우리 모두는 다른 모든 사람들처럼 되되 더 뛰어나려고 기를 쓴다. 존재하지도 않는 평균(노르마)에 당신 자신을 비교할 필요가 없다.
정상이라는 개념은 주변 사람들과의 비교를 내포한다. 비교는 불안만을 가중시킬 뿐이다. 한국사회는 특히나, 나만의 속도로 살아가기 매우 어려운 환경임이 확실하다. 끊임없이 들려오는 소음들이 더 열심히, 더 빠르게 발맞추어 앞으로 전진하라고 부추긴다. 마치 정답이라는 게 있는 것 마냥. 잠깐이라도 발걸음을 멈추면 영영 낙오될 것만 같다는 불안감을 조성하기도 한다. 웃긴 게, 50살인 사람들은 '50은 너무 늦었지, 40만 되었어도 해봤겠어'라고 생각하지만, 40살인 사람들은 '난 이미 너무 늦었어, 30만 됐어도 해봤을 텐데'라고 후회하고, 30살인 사람들은 '난 너무 나이가 많아, 20대 때 해봤어야 하는데" 라며 망설인다. 내가 그랬다.
요동치는 마음을 부여잡고 심리상담을 찾았다. 이제까지 걸어왔던 길을 더 이상 걷고 싶지 않은데, 막상 새로운 길을 걸으려고 보니까 너무 무섭고 두려웠다. 내 인생의 먼 미래가 한눈에 보이는 산에서 내려와 다시 안개 낀 숲으로 첫 발걸음을 내딛기 전의 기분이랄까. 그때 상담 선생님이 이런 말씀을 해주셨다.
인생을 100km 마라톤이라고 생각해 봐요. 지금 몇 km 지점까지 온 것 같아요? 지금까지 온 길을 앞으로 쭉 계속 가고 싶어요, 아니면 다른 길도 시도해보고 싶어요?
이렇게 보니 너무나도 명쾌하게 답이 나왔다. 내 온몸의 세포 하나하나가 '다른 길'을 갈망하고 있었다. 상담의 묘미는, 내 마음속에 이미 있는 정답을 끄집어내는 데에 있는 것 같다. 최근에 번아웃이 와서 무작정 퇴사를 지르고 4개월간 해외여행에 다녀온 친구를 아주 오래간만에 만났다. 그 친구가 유럽 여행을 하면서 가장 좋았던 점은 길거리에서 만난 다양한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자신이 추구하고 싶은 라이프스타일의 방향성을 잡을 수 있었던 것이라고 말해주었다.
나는 흥미로운 사람이 되고 싶어
그래, 그런 한 줄의 가치관이 앞으로 내리는 모든 선택들의 지표가 되어줄 것이다. 그리고 나는 적어도 내가 스스로를 세뇌시켜 온 이 '정상성'이라는 울타리를 부수기로 결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