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칠듯이 불안한데 미칠듯이 설렌다
퇴사 결정을 한 후 나에게 숨 돌릴 시간을 주기로 해놓고서, 맘 편히 쉰 날이 없다. 하루 이틀 퇴사일이 다가올 때마다 심장이 더 심하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맘 편히 쉬는 것도 재능인가보다. '지금 쉴 때가 아니야, 너 어떡할라고 그래' 라면서 이 놈의 이성세포가 자꾸만 최악의 상황을 상상한다. 명확한 방향성도 없으면서 뭘 자꾸 하라고 재촉한다. 백수로 태어났으면서 다시 백수로 돌아간다는 현실이 꽤나 무서웠나보다. 정신차리고 보니 나는 지금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것들보다, 못하는 것들에 자꾸만 집중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이렇게 불안해할거면 그냥 다니지 그랬어" 라는 목소리는 한 번도 머리를 쳐 든적이 없다. 그만큼 이 결심에 대한 마음만큼은 확고했다. 당장 할 줄 아는게 없다는 사실과, 통장 잔고가 줄어들게 될 거라는 상황에 불안해하는 것보다도, 내가 원하는 방향에서 자꾸만 멀어져가는 내 인생을 바라보는 것이 더 무서웠다.
지금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의 리스크는 무엇인가?
삶에서 어려운 결정을 할 때 던져봐야할 중요한 질문이다. 이제껏 항상 뭔가를 '시작하는 것'의 리스크만 생각해왔다. 내가 들여야하는 시간, 노력, 그 길이 나와 맞지 않거나 잘못됐을 때의 기회비용. 하지만, 뭔가를 하지 않기로 결정하는 것도 하나의 선택이다. 그걸 하지 않았을 때 내가 연주하지 못할 수많은 곡들, 만나보지 못할 많은 사람들, 가보지 못할 장소들, 세상을 보는 또 하나의 시각, 다른 인생. 시간을 낭비할까봐 걱정하느라 더 귀한 시간을 낭비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
나의 퇴사 결정은 곧, 살아온 인생의 트랙과 핵심 가치를 완전히 뒤엎어버리겠다는 결심의 산물이다. 이제까지 항상 확실한 길, 좀 더 안전한 길을 향해 걸어왔다. 학교든 취업이든 연애든, 확실성이 최소한 70% 이상은 되어야 안심을 하며 그 길을 선택했다. 그렇게 안전한 길만 선택해온 내 삶을 돌아보니 썩 마음에 들지가 않았다. 인생이 이렇게나 의미없고 목적없이 느껴지는 건 어찌보면 당연한 결과였다. 분명히 안전지대에 있는데 전혀 안전하다는 기분이 들지 않았다. 한 발짝만 잘못 디뎌도 사자한테 잡아먹혀버릴 것 같은 두려움이 나를 압도했다.
이제까지 나를 설명하는 부분 중 큰 비중을 차지했던 나의 전공, 나의 직무를 뒤집고 다시 백지로 시작하는 건 예상했던 것보다 더 많이 나를 머뭇거리고 고민하게 만들었다. 뇌는 나라는 몸뚱아리를 끌어안고 생존하기 위해 또 다시 여러가지 부정적인 시나리오를 계산하며 걱정을 앞세우고, 책을 쌓아놓고서는 어떻게 해야 실패 확률을 줄일지 공부하라고 나를 밀어붙이고 있다. 내가 참 제 발로 고생길로 걸어들어왔다, 싶었다. 이 길은 도무지 확실성 게이지가 가늠이 되지 않기에, 기대되면서도 무척 불안한 심정이다. 하지만 동시에 스스로에 대해 많이 생각해보고 알아갈 수 있는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그저 잠깐, 쉬어가는 것뿐이다.
나 자신을 안다는 것의 진정한 의미를 이제는 알 수 있다. 내가 추구하는 핵심 가치는 무엇인가? 나는 10년 후 어떤 모습으로 살고 싶은가? 나의 불안을 다루고 잠재우는 방법은 무엇인가? 나는 어떨 때 행복하고 어떨 때 기분이 가라앉는가? 이런 질문들에 대한 답을 찾고, 다른 누구도 아닌 나의 가치관에 귀 기울이며 매 순간 나에게 맞는 선택을 해나가는 힘. 그게 바로 나를 안다는 것의 진정한 의미이다.
뭐, 그냥 이 과정을 즐기기로 했다. 어차피 인생에 확실한 건 없는데 내가 불확실함의 세상으로 뛰어든다 한들 크게 다를 건 없을 것 같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