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내가 원하는 거 맞아?

우리는 타인의 욕망을 욕망한다

by 진달

| 남이 좋다고 해서 좋아 보이는 거


"그 회사가 돈을 많이 준대"

"그 회사는 여름 휴가가 열흘이래"


남들이 좋다고 하는 것들이 진정으로 우리가 원하는건지 돌이켜보는 것은 장기적인 가치 설정에 도움이 된다. 나는 이제까지, 모두가 좋다고 하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며 맹목적으로 쫓아왔던 것 같다. 인생이라는 거대한 파도가 두려웠는지, 어떤 가이드라인이라도 쉽게 받아들이면서 꽤 자주 흔들리기도 했다. "돈 많이 주면 장땡이지, 어차피 회사는 다 거기서 거기야.", "그냥 죽은 듯이 일하고 돈 벌어서 일찍 은퇴하거나, 부업으로 돈 불리면 돼." 이제까지 그런 말들을 믿으면서 살아왔던 것 같다. 하나의 가치만 믿다 보면, 같은 믿음을 가진 사람들만 보이면서 더 깊숙이 빠져들게 된다. 이름만 들으면 누구나 알만한 글로벌 대기업, 딱 들으면 멋진 일을 하는 것 같은 직무명, 여섯 자리 연봉, 최고의 직원 복지. 이런 것들을 최고의 가치라고 생각해 왔지만, 그런 가치들은 사원증을 목에 걸고 출퇴근하는 순간에만 유효했다. 그 이후에는 실제로 그 일을 하는 나라는 사람의 10시간 혹은 그 이상 남짓한 매일매일이 남겨져 있었다. 결국 내 인생의 대부분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에 대한 문제로 귀결되는데, 웬만큼 확고한 가치가 아닌 이상 그 질문을 자꾸만 곱씹어보게 된다.



인스타툰을 그리는 민디라는 개발자가 한 분 계신데, 그분의 이야기가 참 감명 깊었던지라 짧게나마 공유하고 싶다. 국내 대기업에 다니다가 남편을 따라 떠난 유학길에서 갑자기 백수가 된 그녀는 고연봉에 유망해 보이는 개발자라는 직업을 원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노력 끝에 33살이라는 나이에 아마존이라는 누구나 가고 싶어 할 만한 대기업에 주니어 직급으로 다시 취직에 성공한다. 하지만, 일을 시작하자마자 '아, 이 일은 내 길이 아니다'라는 걸 깨닫고 순간 좌절한다. 누구나 선망하는 직업이기에 차마 쉽게 손에서 놓지 못하고 휴직을 내고서 여행을 다녔는데, 그러면서 더더욱 '다시 회사로 돌아가기가 너무 싫다'는 기분이 들었다고 한다. 그녀는 지금 개발자일을 그만두고, 본인이 진심으로 원하는 일을 찾기 위해 새로운 것들을 배우면서 살아가고 있다.






| 타인을 따라 하고 싶은 욕구


프랑스의 역사학자이자 철학자인 르네 지라르는, 인간에게 모방 욕망(mimetic desires)이 있음을 발견한다. 우리는 자신 내면에 있는 것을 추구하지 않고, 다른 사람들의 행위를 해석하여 의미를 찾고 다른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원한다는 것이다. 심지어 자신이 그것을 원하지 않을 때조차 말이다.


일 년에 두세 번 정도 만나는 고등학교 동창이 두 명 있다. 두 친구는 만나면 명품 가방이나 옷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 나는 당시 살 생각을 해본 적도 없었던 물건들이다. 아크네 머플러나, 루이비통 가방이나, 그런 것들 말이다. 집에 돌아가서 가격을 검색해 보는데 머플러 하나에 100만 원이 육박하는 것을 보고 적잖이 놀랐다. 특정 주제가 나올 때마다, 친구들과의 대화에 끼지 못하고 벙어리처럼 멀뚱멀뚱 앉아있는 기분은 글 유쾌하지 않다. 그래서 어딘가에 홀린 듯이 백화점을 가 같은 머플러를 목에 둘러보기도 하고, 가방을 들어보기도 하다가 현타가 와서 집에 돌아온 경험이 있다.


이런 욕구는 단순히 소비생활에 국한되지 않는다. 직업을 정할 때에도, 라이프 스타일을 정할 때에도 광범위하게 적용된다. 미국 하버드 대학교 교육대학원 교수인 토드 로즈는 그의 저서 <집단착각>에서 이러한 집단행동과 모방의 위험성에 대해 지적한다.


집단에 소속되기 위해 스스로를 속이고 내적 분열을 감추는 행동은 조용히 사람을 갉아먹는다. 단기적으로, 또 장기적으로, 자존감을 해칠 뿐 아니라 건강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 -<집단착각>, 토드로즈 _p.116


우리가 타인의 욕망을 욕망하는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중 하나는 소속감이다. 사회적 고립감은 스트레스, 인지능력 저하, 우울증 등 개인에게 온갖 악영향을 미친다. 또, 거대 집단의 일원이 되면 그 집단이 갖고 있는 규범과 신념을 개인이 내재화하게 된다. 즉, 속한 조직이 잘 나가거나 윤리적으로 뛰어난 조직이라고 하면, '나도 잘 나가고 윤리적이야'라고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다수의 의견을 받아들이다 보면 어딘가 보호받는 기분이고, 내가 이상한 사람이 아니구나 하는 안도감이 들기도 한다. 내가 대기업 직원이라는 타이틀을 원했던 것도 그 타이틀의 영향 아래에서 나에 가치를 올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있었다.


다만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우리가 다수에게 추앙받을 것으로 간주하는 가치들이 실제로는 다수의 의견이 아닐 수 있다는, 오히려 완전히 틀릴 수도 있다는 것이다. 남들이 좋다는 걸 평생 쫓다가 나중에 알고 보니 그게 정작 내게는 좋은 게 아니었다는 걸 깨닫는 것만큼 허무한 일은 없을 것이다.


스스로에게 정직해지는 것은 우리가 인생에서 진정한 성공을 거둘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집단착각>, 토드로즈 _p.319


우리는 겉으로 보기에 다 비슷한 일상을 살아가는 것처럼 보여도, 다들 제각기의 기호와 생각, 욕구를 가지고 살아간다. 우리 모두가 개별적이고 특별한 존재들이다. 우리의 지문은 모두 다르게 생겼고, 같은 부모에게서 태어나도 성격은 정반대일 수 있는 것처럼. 그러니, '남들은 이렇게 생각할 거야'라는 어렴풋한 추측을 기반으로 내 인생의 중요한 결정을 내리는 것만큼은 피하고 싶다. 그 추측이 맞지도 않을뿐더러, 그 '남들'의 표본이 내 생활반경 10km 이내의 사람들이라면 더더욱 편협한 결정이 될 테니. 세상은 넓고 삶의 방식은 다양하다. 그리고 나에게 맞는 라이프스타일은 분명히 존재한다. 그걸 아는 것만으로도 선택이 한결 수월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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