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마처럼 앞만 보고 달리던 시간들
심리상담을 다니면서, 상담사 선생님에게 내가 느끼는 불안을 털어놓고는 했다. 퇴사를 했는데도 너무 불안하다고. 그럴 때마다 선생님은 ‘요즘 비슷한 선택을 하신 분들도, 같은 고민으로 상담하러 오시는 분들도 되게 많아요.’ 라고 하셨다. 친구들이랑 대화를 할 때도 진로 고민은 끊이지 않는다. 요즘 2030 세대의 퇴사 사례가 점점 늘어난다는 뉴스를 보면 ‘나만 이런 생각을 하는 게 아니구나’ 안심이 되다가도, 어쨌든 궤도를 이탈해버린 소행성이 된 기분이다. 우리가 진짜 진로를 탐색해볼 여유라는 게 있었던가? 부모님 윗 세대가 보시기에는 사치라고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부모님과 똑같이 살아야 된다는 법은 없으니까, 그게 정답도 아니고. 인생이 얼마나 다채로운데 각자만의 정답이 있는 거 아니겠나 싶다.
[청소년기]
학생 때부터 논리적으로, 창의적으로, 다르게 생각하는 법을 배우기보다는 빠르게, 정확하게 문제를 맞추는 방법을 배웠다. 서로 다른 의견을 나누고, 차이를 열린 마음으로 존중해주는 법을 배우기보다는, 앞에서 선생님이 일방적으로 가르쳐주시는 지식을 머릿 속에 주입하기 바빴다. 같이 협력해서 결과를 만들고 친구들과 서로 격려하는 법을 배우기보다는, 서로 점수 1점이나 대회 수상 자리를 두고 경쟁하는 법을 배웠다. 모의고사를 볼 때마다 전교 등수를 복도에 붙여, 누가 더 잘했네, 누구는 못했네 하며 끊임없이 사다리를 올라가라는 무언의 압박을 받았다. 정규 교육시간이 끝난 방과후에도, 야간 자율(을 빙자한 강제) 학습을 하거나 학원을 다니거나 과외를 받으며, 가장 반짝거리고 뇌가 말랑말랑했던 10대 시절을 오직 입시만을 위해 달려왔다.
[대학생]
대학교에 오자마자 가장 먼저 때려치고 싶었던 게 공부인 것도 당연한 현상이다. 10년 넘게 따라다니며 괴롭히던 공부를 더 이상 하라고 강요하는 사람들이 없어졌으니 말이다. 근데 대학 들어오자마자 또 회계사니, 변호사니, 다음 스텝을 향해가는 동기 몇몇을 보며 좀 질렸던 것 같다. 저걸 또 어떻게 한담. 요즘 초등학생들이 미적분까지 뗐다는 뉴스를 보고, 진짜 세상이 미쳐돌아가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거 빨리 배운다고 인생 잘 살게 되는거 아닌데.
[취준생]
그렇게 공부를 하면 그게 성공일 줄 알았는데, 갈수록 취업난이다 뭐다, 하며 인생은 또 다른 경쟁의 구도로 들어간다. 이번에는 정해진 일자리를 두고 싸워야 한다. 옛날 옛적에는 명문대 졸업장만 있으면 대기업에서 턱턱 모셔갔다고 하던데, 그런 호시절은 지나간지 오래였다. 대학이 어디든 상관없이, 똑같이 영어 점수를 만들고 인턴을 하고 대외활동과 학회를 하면서 의미있는 ‘경력’을 만들어야 한다. 신입사원이 되기도 전에 일을 배워가야 했다. 그리고, 인턴 경력이 없으면 인턴으로 뽑히기도 쉽지 않았다. 아이러니했다. 대학은 모든 학문의 전당이라고 알고 있었는데, 몇 교수님들은 10년 넘은 강의 자료를 그대로 쓰시는 것도 보았다. 소위 명문대에서 말이다. 다같이 취업을 향한 거대한 물살에 합류하고 있었고, 그게 당연한 흐름처럼 느껴졌다. 아, 대학교는 취업을 위한 취업 사관학교구나. 공부해야 할 모든 것들을 선생님과 국가와 학부모들이 정해주던 19살이었다가, 갑자기 20살이 되니까 알아서 듣고싶은 수업 듣고 능동적으로 수업을 들으란다. 갑작스럽게 주어진 자유도 그 땐 참 당황스러울 정도로 과하게 느껴졌다. 스스로 선택하고, 판단하기 위한 힘을 기르기 시작했던 건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오히려 고등학생 때 부모님, 선생님 말 안듣고 야자 째고, 사고 치고, 술도 마셔보고 했던 애들이 그 때는 더 편안해보였다. 최소한 권력에 순응하지 않고 자유를 손에 한 줌 쥔 채, 스스로의 힘으로 뭔가 해볼 용기는 있었던 애들이니까.
[회사원]
그래도 자유와 낭만이 넘치는 대학생활을 즐겁게 마치고, 하나 둘 회사에 들어간다. 누구 회사 복지는 어떻네, 회사 위치가 어디네, 하면서 서로의 달라진 상황을 비교하며 재밌어 하던 것도 몇 개월 가지 않았다. 회사생활이 이런거구나, 알게 되면서 ‘돈 내고 다니던 학교’와 ‘돈 받고 다니는 회사’는 천지차이라는 걸 뼈저리게 느끼게 된다. 회사를 다니고 있다고 하더라도 절대 안전한 기분이 들지도 않았고, 불안감만 커져갔다. 어쩌다 이렇게 뭔가에 쫓기는 삶을 살게 된걸까. 분명히 엄청 열심히 살아왔는데, 쉬지 않고 최선을 다했는데, 방향이 잘못돼도 한참 잘못됐다는 걸 느끼고는 많이 방황했다. 게다가 취직할때 블라인드 면접이다 뭐다 하며, 학교 이름을 가리도록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이게 뭐지 싶었다, 솔직히. 인생을 쏟아부어서 얻은 유일한 성취가 대학 간판이었는데, 그걸 인정해주지 않는다니. 몇 년이 지난 논쟁거리지만, 그 때 당시에 참 많은 생각이 들었다. 노력을 요구하면서도 그 결과를 인정해주지 않는 사회. 인생에 다른 길이 있지는 않을까, 계속 이렇게 무한 경쟁과 많은 돈과 높은 직급을 향해 달려가는 것만이 길일까 하는 막막함이 너무도 커져서, 지금의 청년들이 하나 둘 다른 길을 찾기 시작하는 거 아닐까 싶다. 난 이게 건강한 사회적 변화라고 본다. 인생에 정답이 없다는 걸 알았으니까.
미국 중국계 코미디언 Jimmy Yang의 스탠드업 코미디를 보았다. 그 중에 아버지와의 에피소드가 하나 소개된다. 여느 동양인 이민자 가족이 그렇듯, 그는 자녀의 교육에 신경을 많이 쓰는 부모님으로부터 자랐다. 아버지의 바람대로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하고 난 후, 금융권에서 일하고 싶지 않았던 그는 아버지에게 말한다.
아버지, 저 금융쪽에서 일하기 싫어요. 저는 스탠드업을 하고 싶어요. 제 꿈을 쫓고 싶어요
그러자 아버지가 하는 말,
꿈? 안 돼. 꿈을 쫓으면, 넌 가난해져. 사람들은 다 자기가 혐오하는 일을 하면서 번 돈으로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살아. 다 그래
Jimmy Yang이 아버지 말을 듣지 않아서 너무 고맙다. 덕분에 세상은 이렇게 소중하고 재능있는 코미디언을 얻었으니 말이다. 세상에 말 안듣는 사람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최대 다수가 최대로 행복했으면 좋겠다. 각자 다채로운 색깔을 끄집어내서 마음껏 펼치고 살았으면 좋겠다. 그냥 모두가 자신이 진심으로 하고싶은 거 다 하고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다. 삶은 고통의 연속이 아니고, 타인은 지옥이 아닌, 서로에게 친절하고 자신에게도 친절한 사람들로 가득 찼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