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rendipity
지금 난 내 삶 전반을 두고 가장 중요한 질문을 하고 있는 중이다. 넌 어떤 삶을 살고 싶은가? '직'이 아니라 '업'에 관한 질문을 하고 있는 것이다.
공부하는 것을 좋아하고 연구를 사랑했기에 박사과정을 마치고 나면 당연히 학계에 남아 교수가 될 것이라 여겼다. 하지만 최근 들어 나 자신에 대해 알면 알수록 이 길이 나에게 맞는 길인가 묻게 된다.
나는 상당히 호기심이 많은 인간이다. 학문의 경계를 뛰어넘어 나의 호기심을 따라 파고들다 보면 정작 내가 성과를 내야 하는 일들에는 뒷전임을 깨닫게 된다. 그런 모습들을 발견할 때마다 계속해서 나 자신에게 묻고 있는 중이다. 교수란 직이 너랑 맞을까? 한 분야만 깊게 파고드는 연구를 하는 게 너와 어울리는 업일까?
어떤 주제와 관련된 책을 읽다 그 주제와는 크게 상관없지만 내가 가지고 있던 질문들에 답을 얻게 되는 경우가있다. 오늘 바로 그 특별한 순간을 경험하며 크게 유레카를 외치고 싶었다.
최근 Second Brain이라는 주제에 관심을 가지게 되면서 관련 책과 아티클에 빠져 지내는 중이다. 내용 중에 온갖 정보가 난무하는 시대에 내가 보존해야 할 가치가 있는 내용들을 결정하는 비법을 소개하는 대목이 있었다. 정보의 홍수에서 익사하는 느낌을 받고 있던 나에게 꼭 필요한 내용이라 여겨 주의 깊게 읽었다. 그런데 이 내용은 단순히 필요한 정보를 추릴 수 있도록 도울 뿐 아니라 내 인생 최대 난제와 관련된 질문에 답을 제공해 주었다.
Build a Second Brain의 저자 티아고 포르테는 우리가 보존해야 할 가치가 있는 내용을 결정하는 방법과 관련해 노벨상을 수상한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만 (Richard Feynman)이 사용한 방법을 소개했다.
파인만은 인터뷰에서 "12가지 가장 좋아하는 문제"를 이용한 자신의 전략을 아래와 같이 밝힌 바 있다.
"좋아하는 문제 수십 가지를 마음속에서 끊임없이 제시해야 합니다. 새로운 트릭이나 새로운 결과를 듣거나 읽을 때마다 12가지 문제 각각에 대해 테스트하여 도움이 되는지 확인하십시오. 이따금 히트 칠 것이고 사람들은 그것을 어떻게 했죠? 천재임이 틀림없어요! 하고 말할 것입니다"
즉, 파인만은 '12개의 미해결 질문 목록' 갖고 있었고, 새로운 과학적 발견이 나왔을 때 그것을 테스트해 봄으로써 각각의 문제에 새로운 견해를 주는지 확인해 보았다.
왜 하필 12개였는지는 알 수 없으나 중요한 것은 자신이 항상 관심을 가지고 있는 질문 리스트가 있었다는 것이다. 그 내용과 관련하여 지속적으로 과학적 결과들을 추적하고 (정보 수집), 실제 테스트해 봄으로써 인사이트를 지속적으로 얻으려고 했다는 부분이 큰 울림을 주었다.
이 과정 자체가 그냥 연구자의 모습이었다. 그의 삶 내내 그가 말한 12개의 연구 질문에 몰입해 있었을 모습이 그려졌다. 나에게 더 큰 Aha moment를 선물한 부분은 파인만이 물리학적 발견을 할 수 있도록 이끈 사례에 관한 것이었다.
어느 날 파인만이 학생 식당에 앉아 있을 때였다. 누군가 저녁 식사 접시를 던졌고 그는 떨어지며 회전하는 접시를 보며 회전과 요동하는 비율이 2:1이라는 사실을 발견한다. 개인적으로 떨어지는 접시를 보며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는 부분이 그가 관심을 가지고 있던 질문에 얼마나 몰입하고 있었는지는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 생각한다.
이 발견을 동교 교수이자 멘토에게 말했을 때 그가 들은 반응은 "파인만, 그 발견이 어떤 중요한 의미가 있지?"였다. 늘 연구의 의의에 대해 먼저 생각하도록 교육받은 우리네 모습이라 피식 웃음이 터져 나왔다. 이 상황에서 파인만은 그 동료에게 아래와 같이 말했다고 한다.
"특별히 중요한 건 없어요. 난 어떤 것이 중요한지 그렇지 않은지 상관하지 않아요. 그게 재미있지 않았나요?"
어떤 질문을 향한 순수한 지적 호기심과 그에 대한 열정을 그대로 드러내 주고 있는 말이었다. 그렇게 그는 자신의 직관과 호기심을 따랐고, 결국 이 사건은 그가 노벨상을 받을 수 있도록 이끌었다고 한다.
솔직히 현재 학계에 있으면서 저런 식으로 지적 호기심을 따라 연구한다는 건 불가능하다. 연구 실적 압박에 하루라도 빨리 성과를 낼 수 있는 연구들을 진행해야 하니 말이다. 그래서 더더욱 그가 부럽고 내가 이곳에서 견디지 못하겠다 여기는 것이다. 나를 설레게 하는 질문들을 찾는다 해도 여러 사정들로 내려놓아야 하는 상황들이 지속되다 보니 이 일 자체에 회의가 오는 듯하다 (이 생각에 다다르자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살아야 행복한 내가 교수직을 업으로 삼을 수 없다는게 명백히 보였다).
이렇듯 내가 하고 있는 일과 관련하여 번민하고 있는 와중에 듣게 된 파인만의 이야기는 '연구자로서의 삶'에 대해 근본적으로 성찰해 보게 했다. 연구실에서 실험하고 논문을 써야 만 연구자인 것인가? 내가 흥미로워하는 연구 질문을 가지고 끊임없이 그와 관련된 연구 결과들을 추적하며 실제 그 결과들이 관련된 문제에 새로운 견해를 주는지 확인해 볼 수 있다면 연구실 밖에서도 충분히 연구자로서의 삶을 사는 것이 아닌가? 우리 삶과 좀 더 직접적 연관을 지닌 나의 관심영역 안의 내용들을 대상으로 연구하며 연구자로서의 삶을 살 수도 있지 않은가 말이다.
내가 관심을 가지는 질문들, 결국 나에게 가장 중요하고 가치 있는 질문들을 찾아내고, 그 질문들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과정 또한 연구 과정인 것이다. 그러한 활동을 학계에서 하든, 학계를 떠나서 하든 본질은 연구하는 삶을 사는 것이다. 나를 이끄는 질문들을 통해 배움을 지속하고, 사고하며 나를 성장시킬 뿐 아니라 그 문제의 답을 찾아가며 사람들에게 조금이나마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삶, 내가 원하는 삶이 이런 모습이었다는 것을 파인만의 이야기를 통해 깨닫게 되었다.
독서와 글쓰기의 묘미가 바로 이런 것인 것 같다. 우리 머리 속에 맴도는 생각이나 감정들은 형체를 가지지 않은 추상적인 것이기에 그 생각의 뿌리가 무엇인지 깨닫기 힘들다. 그 내용들을 글의 형태로 옮길 때 비로서 그것들은 물질적인 세상에 실존하게 된다. 즉, "형이상적인 내용"이 "형이하학적 것"으로 변환된다. 구름에 가려진 듯 형체가 분명하지 않던 생각들이 글이라는 형태로 변환되어 존재하게 되면 글쓴이도 제3자의 시각으로 글에 투영된 자신의 생각들을 들여다 볼 수 있게 된다. 글이 치유의 힘이 있다 이야기하는 이유도, 메타인지를 향상시킨다고 하는 이유도 모두 여기에서 찾을 수 있다. 뿐 만 아니라 나의 말로 정리된 내용은 좀 더 우리 뇌에 깊이 각인되어 그와 관련된 정보들을 모으려 한다. 이는 선행된 자극이 비슷한 내용의 반응을 일으키는 priming 효과로도 충분히 설명 가능하다.
내가 전혀 다른 주제의 책을 읽으면서 고민하고 있던 내용들에 답을 얻은 이유, 즉 우연의 모습으로 사고가 연결되는 serendipity를 경험하게 된 이유도 내가 고민하고 있는 내용들을 일기로 남기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속해서 내 뇌로 하여금 그 질문들에 대한 답을 찾고 있도록 프로그램밍화한 것이다. 그런 프로그래밍 과정으로 인해 책의 내용이나 읽은 동기는 전혀 다른 것이었는데 읽으면서 의도치 않게 내가 가지고 있던 아주 중요한 질문 하나가 해결된 것이다. 읽고 쓰는 행위는 이렇듯 의도치 않은 사고의 연결을 경험하게 하고 그 느낌이 너무나 짜릿하고 강렬하기에 중독되게 한다. 이러한 serendipity를 경험한 사람들은 느낌 아니까 ~~~ 요즘 들어 메모하며 글의 형태로 풀어내는 작업에 소홀했었는데 이번 일을 경험하며 다시 한 번 쓰는 작업의 중요성을 되새기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