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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니 Apr 12. 2023

방황일지: 댓글로 대신하는 중간보고 (1)

나의 방황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한국으로 돌아온 후 그동안 나와 비슷한 고민을 했다는 많은 이들의 삶의 행적들을 알아보며 시간을 보냈다. 그들의 방법론에서 '나를 찾는 여정'과 관련하여 조금의 힌트나마 얻고 싶었기 때문이다.


내가 알아본 많은 이들은 자신이 원하는 삶을 꾸려가고 있었다 (하지만 이는 성공사례들만 세상에 알려졌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들의 방황 또한 시작점은 나와 비슷한 모습인 듯했다. 하지만 대개 마지막은 '내가 원하는 일 찾고 난 후 잘 먹고 잘 살아요. 당신도 그렇게 될 수 있어요'라는 메시지를 던지며 자신들의 퍼스널 브랜딩을 위해 피치를 올리는 모습이었다.


그들이 말하는 방법론을 마주할 때면 또다시 길을 잃는 내 모습을 발견했다. 정확히 형언할 순 없어도 내가 알고자 하는 바가 그들의 외침 속에 있지 않은 것만은 분명하게 느낄 수 있었다.


더디 가더라도 나에 대해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내가 경험하는 것들과 함께 그것에 대해 반응하는 나의 모습, 나의 감정들, 그리고 왜 그런 반응과 감정을 갖게 되는지 생각해 보고 꾸준히 기록하는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었다. 말하자면 '나 자신을 관찰하는 관찰일지' 같은 것이다. 그래서 요즘은 앱을 통해 매일의 일상을 회고하고 짧은 기록으로 남기고 있다.


그러던 중 내가 개인적으로 애정하는 마작가님 채널의 댓글 하나를 보게 되었다. 나와 비슷한 여정을 걷다 방황의 길로 접어들게 되었다는 그분의 사연을 보니 그 마음이 십분 이해되어 댓글을 쓰고 싶어졌다. 댓글을 소개하는 글 말미에 마작가님의 넛징이 더해져 더더욱 글을 쓰지 않을 수 없었다.




간단하게 힘이 되는 메시지를 드리고 싶었던 처음 마음과 달리 글을 쓰기 시작하니 현재 내 상태가 좀 더 구체적으로 보였다. 그리하여 아래 그분의 글에 답하고자 남긴 나의 댓글을 ’ 내 방황의 시간' 중간보고 차원에서 남겨두고자 한다.







마작가님 채널에서 영상만 시청하다 답답한 마음에 하소연뿐이 안 되겠지만, 공감되는 내용도 있어서 댓글을 답니다. 올해 34살이고 제 분야에서 세계 탑 5위 안에 드는 박사과정 프로그램으로 유학 가서 노력하다 코로나시대가 일어나 집에서 격리된 채 조교업무, 코스워크하다 정신적 스트레스, 간경화, 통풍까지 와서 이러다 40대에 죽는 것도 내 이야기가 될 수도 있겠구나 느낌이 들어, 포기하고 귀국했습니다. 부모님께서는 건강이 우선이고... 제가 진정으로 하고 싶으며 즐길 수 있는 일을 하길 원한다고 말씀까지 해주셨지만 오히려 더 자신감이 사라지고 결국엔 실패/패배한 것과 다름이 없다는 생각에 하루하루가 숨이 안 쉬어지는 사막에서 걷는 느낌입니다. 제가 건강관리만 잘했더라면 교수까지 할 수 있는 지적능력이 있는데도 못됐으니 죄책감도 들고 제 잘못이라는 생각이 지배적으로 듭니다.. 반면에 40-50대쯤 암 같은 큰 병이 생겨 모든 일을 그만두어야 하는 상황이 왔더라면 교수가 돼었던, 기업에서 소위 잘 나가는 타이틀을  못 두르는 순간, 그 순간 나는 무슨 존재일까? 오히려 미래에 일어날 악운을 미리 경험한 건가 생각도 들고요. 마작가님께서 30대 구독자에게 하고 싶은 말을 영상으로 남기셨는데 그중 첫 번째 포인트에 공감을 했습니다. 직업/직책과 자신을 분리시키면 자신은 무엇인가? 지금까지 살아왔던 족적이나 가치관으로 보면 전 아무것도 아니었다는 생각이 드네요. 현재는 매우 방황 중이지만 훗날 노년이 오면 30대 때 이런 생각을 갖었던 것이 그래도 다행이었다는 순간이 오길 바라고 있습니다. 9:31은 칙센미하이 (Csikszentmihalyi)입니다. - 구독자 Nameless



아카데믹 커리어 여정이 얼마나 고단한 것인지 너무나 잘 알고 있기에 댓글을 남기지 않을 수가 없네요 (참고로 제가 마작가님이 말씀하신 박사과정 후 모든 생활을 접고 한국으로 귀국한 사람입니다^^).


저 또한 미국 박사과정에서 과도한 과제 및 업무, 스트레스로 인해 쓰러지기도 하고 몸에 마비가 오기도 했었어요. Nameless님 가족분들과 똑같이 저의 가족도 건강이 가장 우선이라며 언제든 그만두고 돌아오라고 말했었지요. 그런데 ‘언제든 그만두고 돌아가도 된다’고 생각하니 도리어 할 만 해졌습니다. 그리하여 박사과정 동안 여러 편의 SCI(E) 논문을 출판하며 학과에서 가장 성공적으로 학위과정을 마칠 수 있었지요. 심리언어학/뇌언어학을 전공한 터라 한국 대학에서 fit을 찾을 수 없었던 저는 조금이나마 한국과 가까운 곳에서 근무하길 원하는 가족들의 바람에 따라 홍콩대학에서 포닥연구원으로 근무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faculty로 일하게 되니 이제껏 제가 꿈꿔오던 삶과 전혀 달랐어요. 교수로서의 삶은 그나마 자기 결정권이 많이 보장된 삶일 줄 알았는데 제 착각이었습니다. 대학들 또한 결국 돈이 있어야 운영되는 곳이라 그 조직에 속해있는 구성원들은 학교에서 정하는 방침들을 따라 움직여야 한다는 걸 그때서야 깨달았습니다. 교수도 대학이라는 기관에 고용된 사람일 뿐인데 왜 그걸 모르고 있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제 인생에서 점차 자기 결정권이 사라지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연구과제도 제가 정말 관심 있는 연구영역이나 주제라기보다는 연구비를 잘 받을 수 있는 쪽으로 변화되어야 했고, 논문 실적을 위해 제 모든 시간들을 바쳐야 했습니다. 하루 시간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계절이 바뀌고 있는지 조차 알 수 없었습니다. 제 삶의 밸런스는 완전히 무너졌었어요. 티칭, 연구, 콘퍼런스 일정 외에 삶이라고 이야기할 만한 것들이 없었습니다.


그러다 갑자기 한국에서 엄마가 교통사고로 돌아가시게 되었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었지요. 코로나 이후 삶의 의미에 대해 내내 생각하던 저는 삶과 죽음에 대해 더 묵상하게 되었어요. 그리고 저라는 사람에 대해서두요. 지금껏 방황하며 확실히 깨달은 사실 하나는 제가 ‘자기 결정권이 없는 삶이나 관계’를 극도로 견디지 못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과감히 그 길에서 이탈하기로 했어요.


학교에서 근무하는 내내 제 머리에 그려진 이미지는 ‘도착지’도 알지 못하고 미친 듯 질주하고 있는 열차였어요. 어느 날은 숨이 잘 쉬어지지도 않았습니다. 그 미친 속도를 따라가다 보면 정말 내가 원하는 삶이 기다리고 있을지 점차 확신할 수 없었습니다. Assistant Professor는 Associate Professor가 되면 좀 괜찮아지겠지 했지만 막상 Associate Professor들은 Professor로 승진해야 하니 Assistant Professor 때 보다 더 정신이 없고 해야 할 일이 많다고 했습니다. Professor가 되어 좀 자유롭게 자신이 원하는 연구도 하고 여유를 가질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거기 계시는 분들의 모습은 제가 기대하던 것과 완전히 달랐습니다. 이미 작은 글씨는 보기 힘들 만큼 눈이 안 좋아진 상태에다가 여러 질병으로 건강 문제를 호소하고 계시는 분들이 많았죠. 자신이 원하는 연구를 이제야 하게 되나 보다 했는데 곧 은퇴를 앞두고 있다고 말씀하시는 모습은 씁쓸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지금 단계도 이미 삶의 밸런스가 과하게 무너졌다고 느낀 제가 그 뒤의 여정에서 그 일을 하며 행복해할지 자신할 수 없었습니다. 저에게 맞지 않는 옷이라 느껴졌어요. 인생 후반기를 준비해야 하는 시점에서 나머지 인생은 정말 저 다운 삶을 살고 싶어 졌습니다. 그때 제가 너무 애정하는 마작가님을 알게 되었어요. 나와 똑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 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게 신기하게 느껴졌습니다. 마치 제 마음속에 들어왔다 나가신 것처럼 하시는 말씀마다 제가 생각했던 것과 그 결이 같아서 놀라웠습니다. 그래서였던 거 같아요. 저에게 작가님의 모든 말씀이 울림으로 다가왔던 이유가 말이죠.


지금은 어떠냐고요? 엄마의 장례식을 치르고 홍콩에서의 생활을 정리하고 돌아와 지금도 열심히 방황 중입니다. 프리랜서든 온라인 사업이든 그 무엇이든 다시 시작하는 것은 조금도 두렵지 않습니다. 박사과정을 통해 새롭게 배우는 과정이 어떠한 것인지 이미 몸으로 익혔으니까요. 하지만 ‘그래서 이제 너 뭐 할래?’라는 질문의 끝에는 저에 대한 물음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결국 넌 어떤 사람이고 어떤 삶을 살고 싶은 거야?’라는 물음말이죠. 이 질문에 제대로 된 대답을 할 수 있어야 진짜 제가 주인이 되는 삶을 시작할 수 있다는 결론에 도달했어요. 그래서 저에 대한 연구를 시작했습니다. 이전에 하지 못했던 많은 것들을 경험하며 저의 반응들을 살피고 기록하고 있는 중입니다.


삶의 만족도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이전보다 훨씬 높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어요. 매일 저도 모르게 입 밖으로 ‘너무 행복하다’는 말이 나오거든요. 예쁜 하늘을 올려다보며 감상할 수 있는 것, 바람의 변화를 느낄 수 있는 것, 좋은 사람과 맛난 음식 먹으며 함께 대화하는 시간을 갖는 것. 이 모든 일들이 감사하고 행복합니다. 이전에 공부만 하느라 알지 못했던 세상 것들을 탐험하며 제 반응을 살피는 과정도 감사하고 행복하고요. 어렸을 때 했어야 할 자신에 대한 공부를 이제야 제대로 하는 느낌입니다.


삶은 가끔 우리에게 예기치 못한 레몬들을 던지죠. 하지만 그러한 시간들을 통해 도리어 진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발견하게 되기도 하는 것 같아요. Nameless님도 충분히 휴식하시며 건강 회복하시는 동안 자신에 대해 더 잘 이해하실 수 있는 시간들을 보내실 수 있으시리라 믿어요. 그리고 대학교수라는 삶에서 내가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이었는지 대답하실 수 있다면 그것을 반드시 대학이라는 조직의 틀에서 해야만 하는지에 대한 질문에 대해서도 대답하실 수 있으시리라 믿어요. 진짜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이었는지 알게 되면 이후 그것을 어떻게 달성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은 반드시 어느 조직에 속하지 않아도 할 수 있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Nameless님의 아름다운 방황과 이후에 있을 나다운 삶을 응원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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