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점 vs 힘든점
직장인의 삶을 살다 이탈하게 되면 그때서야 느껴지는 점들이 있다. 물론 이 또한 ‘나’라는 인간의 개별성, 특수성을 기준으로 내가 처한 물리적 환경 속에서 느끼는 것이라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 일 수 있다. 하지만 ‘나 자신에 관한 연구’를 시작한 나에게 내가 느끼는 모든 순간순간의 감정들, 생각의 변화가 나를 아는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해 줄 수 있기에 놓치고 싶지 않다. 내가 느끼는 것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어떻게 달라질지 혹은 나와 비슷한 그 누군가가 있다면 이 이야기에 얼마나 공감할 수 있을지도 궁금하기에 이에 대한 내용도 남겨두고 싶다.
좋은점
1. 시간적 자유
내가 느낀 가장 좋은 점은 경제적 자유를 이룬 사람들이 장점으로 이야기하는 것과 동일한 시간적 자유이다. 모든 시간을 내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은 현대 사회 인간이 가질 수 있는 가장 큰 자유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그 시간의 자유를 가졌다는 사실만으로 내 삶의 주도성이 온전히 나에게 다시 돌아온 것만 같았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계절, 봄이 어떻게 오고 있는지 오감으로 느낄 수 있었던 시간의 자유가 얼마나 달콤한가? 따뜻한 봄 햇살, 그로 인해 가벼워지는 사람들의 옷차림, 그들의 경쾌한 발걸음. 내 눈에 그런 변화들이 감지되었다는 사실 자체가 나로 인해 살아있다는 느낌을 받게 했다. 특히나 뺨을 부드럽게 어루만지는 봄바람은 괜히 어디선가 기분 좋은 소식을 실어올 것만 같았다. 움트는 여린 새싹, 피어오르는 꽃봉오리 등… 십여 년의 시간 동안 나에겐 이런 것들을 둘러볼 마음의 여유가 전혀 없었다. 다시 생각해도 너무 안타까운 삶의 모습이었다. 자연을 만끽하는 내 모습을 보며 꽃 앞에서 찍은 어머님들의 프로필이 오버랩되었다. 그러자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지만 미친 듯 혼자 웃게 되는 그런 상황도 싫지 않았다.
2. 일의 자유
내가 하고 싶은 일은 하고 하기 싫은 일은 하지 않을 수 있다. 당연한 거 아닌가? 이거 하려고 직장을 나온 건데… 내가 배우고 싶었던 것. 해 보고 싶었던 것들을 마음껏 해 보며 나에 대해 알아갈 수 있는 자유가 있다. 시도해 보고 맘에 들지 않거나 내가 생각했던 것과 다르다면 언제든 그만두면 되는 것이었다. 이와 관련해서는 앞으로 내내 다루게 될 테니 여기서는 짧게 언급하고 지나가는 것이 좋을 듯하다.
3. 만남의 자유: 새로운 인연들
여기에 덧붙여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은 만나고 만나고 싶지 않은 이들은 만나지 않을 자유까지 주어졌다. 우리 인생에서 행복에 영향을 미치는 가장 큰 요인 중 하나를 꼽으라면 바로 사람들과의 관계일 것이다. 나와 맞지 않는 사람과 오랜 시간 지내게 되면 나만이 가지고 있는 색깔이나 에너지가 빛을 바라 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학계를 떠나 새로운 공간에 나를 위치시키려 노력하는 요즘 매일 감탄을 연발하는 내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예전 같았으면 상상치도 못했을 좋은 사람들과의 만남들이 계속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인생은 ‘한 권의 책’ 이상이라 생각하는 난 이런 만남들을 통해 얻게 되는 통찰이 너무 감사하다. 다양한 분야에 속한 사람들과 만남을 통해 지속적으로 자극을 주고받으며 성장하고 있는 내 모습이 꽤나 마음에 든다. 이는 ‘나’라는 사람이 성장 없는 삶을 미치도록 지겨워하는 성향을 가지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이렇게 ‘나’에 대해 배워간다. 돈이 줄 수 있는 만족감과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4. 내가 원하는 문화 선택
일반적으로 우리가 거하는 준거집단에는 거기 만의 고유한 분위기 혹은 문화라는 것이 있다. 그리고 그 문화라는 이름의 것들은 사람에 의해 다른 이들에게 암묵적으로 전해진다. 이제 나에겐 어떤 문화를 가진 곳에 자신을 두고 싶은지 선택할 수 있는 자유가 있다. 시기와 경쟁 보다 서로의 성장을 격려하고 진심으로 축하해 줄 수 있는 곳으로 나를 옮겨두자 삶이 훨씬 풍성해졌다.
힘든 점
1. 경제적 불안
누구나 예상할 수 있듯 따박따박 월급이 나오던 정규적 직장인의 삶을 벗어나면 첫 번째로 맞이하게 되는 감정이 경제적 불안함이다. 그런데 솔직히 이 불안은 최악의 상황을 떠올리면 좀 담대해진다. 예전에 인도 우화에서 승려가 자신의 최고 특기가 굶을 수 있는 것이라 이야기해서 그게 무슨 말이야 했는데 이제는 그 뜻을 알 것 같다. 굶을 수 있는 용기는 내가 하고 싶은 것과 하고 싶지 않은 것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와 맞바꿀 수 있을 만큼 위대한 것이었다.
2. 자기소개
어느 조직에 소속되지 않은 사람에게 자기소개 시간은 참 괴로운 것이라는 걸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나라는 사람을 어떻게 소개해야 할까? 조직을 이야기하지 않고, 타이틀을 빼고서는 ‘나’에 대해 어떻게 이야기할 수 있는지 생각해 보지도 않고 살아왔던 것이다. 생각해 보지 않았을 뿐 아니라 나 자신에 대해 소개할 수 있을 만큼 알고 있는 것도 없다는 사실이 충격으로 다가왔다.
이렇게 나열하며 글을 쓰다 보니 알겠다. 일, 관계, 여가에서 누리는 자유는 내 삶의 만족도를 180도 바꿔 놓았다. 내 삶의 주인이 된다는 건 내가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영역이 많아진다는 의미였다. 내 삶에서 중요하다 생각하는 것들을 나 스스로 선택할 수 있을 때 그리고 그 상황들을 통제할 수 있는 권한이 나에게 주어질 때 진정 내 삶의 주인으로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