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니 Jul 22. 2023

수영장 내에서의 헤게모니

몇 달 동안 온 병원을 순례하듯 돌아다녔다. 이제껏 건강을 돌보지 않고 지낸 주인에게 보복이나 하듯 신체 부위 하나 둘 탈이 나기 시작했다. 밀린 청구서를 잔뜩 받아 들고선 내 몸에게 부드럽게 타일렀다.


 '이제 정말 너를 최우선으로 생각하며 살게'.


그리곤 바로 집 근처 수영장에 등록하러 갔다. 10년 만이었다.

물에 들어가면 몸은 뜰까? 호흡이나 할 수 있을까? 그런 생각들을 하며 수영장 접수처로 들어갔다. 예전처럼 아침 일찍 일어나 운동을 하고 몰입된 삶을 살고 싶었다. 그래서 제일 빠른 시간대인 새벽 6반에 등록했다.


수업 첫날!

모든 것이 낯설다. 사람들도 사물도...

수영장 안으로 들어가니 사람들이 '넌 누구냐?'란 눈빛으로 힐끗힐끗 쳐다본다.


굴러들어 온 돌이니 맨 끝에서 따라가며 분위기를 살펴야겠다 생각했다. 10년이 넘게 운동을 쉬었으니 내 몸이 적응할 수 있는 시간도 줘야 했다.


그런데 갑자기 다이빙을 시키는 선생님. 다들 올라가 뛰어내린다.

철퍼덕... 철퍼덕...

배치기 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나 또한 그렇겠지? 그래도 예전에 선생님이 가르쳐 준 방법을 기억하며 머리를 최대한 숙이고 뛰어내려 보자. 쏙!

정말 오래간 만에 들어왔는데 물 안이 나를 빨아들이듯 쑤욱 잡아당겨지는 느낌이 들었다. 어쩐 일인지 물이 나를 환영하듯 안아주는 것 같았다.


한 바퀴 돌고 오는데 선생님이 "뛸 줄 아시네요" 한다. 그리고 연이어 옆에 서 계시던 어머님들이 "윗반으로 가요"하며 아우성이다. 이후부터는 사람들이 나를 주시하는 것이 느껴졌다.


수영장에는 특유의 분위기가 있다. 대부분 오랜 시간 함께 운동하기 때문에 그들은 엄청한 라포를 형성하고 있다. 새로운 사람이 들어오면 그 끈끈한 관계는 좀 독특한 모습을 드러낸다. 이번에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렇게 나는 요주의 인물이 되었다. 수영 영법은 어떤지? 수영은 얼마나 했는지? 뭐 하는 사람인지? 그들은 궁금한 게 한 두 가지가 아니었다.


또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그렇게 고착화된 관계 속에서 우두머리 역할을 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그 사람을 중심으로 모이고 의사결정이 내려지고 어떤 행동들이 일어난다. 흡사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어른판을 보고 있는 듯 하다.


어떤 한 어머님이 그런 흐름을 깨트렸다. 나에게 먼저 다가 와 영법에 대해 묻기 시작한 것이다. 자신이 잘 안 되는 자세가 있는데 어떻게 하면 되겠냐고 물어왔다. 나는 '저도 잘 못하지만 제가 배울 때 선생님께서 이렇게 하라고 하셨어요' 하며 내가 배운 것을 전해 드렸다. 감사히도 난 처음 수영을 접했을 때 국가대표선수 출신 선생님께 배웠던 터라 영법과 관련해 꽤 꼼꼼히 교정을 받은 터였다.


그분은 자신이 잘못하고 있는 부분이 어떤 부분인지이제야 깨달았다며 연거푸 감사의 말을 전해 오셨다. 안 되는 부분을 한 가지 그렇게 짚어주는게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모른다며 갑자기 자신의 선생님이라 부르겠다 하신다. 그리고 바로 연습에 연습을 계속하셨다. 며칠 지나지 않아 결국 그렇게 안 되던 부분이 되기 시작했고 어머니는 너무나 뿌듯해하셨다. 60이 넘은 나이에 자기보다 어린 사람에게 먼저 다가와 묻고 배우려는 자세를 지닌 그분을 보며 참 멋있다 생각했다. 나도 그렇게 나이 들어가고 싶었다.


더 감동이었던 점은 서로 자기를 소개하는 시간을 가질 때였다. 자신을 영어 이름 '유니스'라고 불러달라고 하시며 나이는 공개하지 않으시겠다고 하셨다. 그래야 자신의 이름을 쉽게 부르고 자신을 쉽게 대할 수 있지 않겠냐는게 그 이유였다. 그리고 나선 선생님, 진짜 잘 가르쳐 주시는 것 같아요. 덕분에 00이 되기 시작했어요. 감사해요'라고 하신다. 순수한 눈빛을 보내며 감사하다 말씀하시는 모습이 정말 사랑스럽다 느껴지는 그런 분이였다.


이와는 반대의 모습을 보이시는 분이 계신다. 내가 오기 전 이 반에서 반장 역할을 하고 계신 분이셨던 것 같다. 다른 분들이 그분 말을 따라 움직이시는 걸 보면... 자기 마음대로 다른 사람들의 별명을 지어주고 자기가 제일 잘한다고 칭송받고 있던 물에 메기한 마리 들어온 것이다.


그분은 수영을 하다 앞에 서 있는 나를 찌르시곤 '쏘리'하며 지나쳐 가신다. 내가 다른 분들의 질문에 대답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 ‘코치하러 왔어?'라며 끼어들어야 직성이 풀리시는 거 같다. 그리고 나선 자신과 가장 친한 친구의 평영 발차기를 가르쳐 주겠다고 발을 잡고 열심히 자세를 잡아주신다. 어지간히 나란 인간이 불편하신가 보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분께 평영을 배웠던 어머님이 나에게 다가와 발차기를 어떻게 하는 것이냐고 물어오셨다. 내가 아는 대로 설명해 드리고 나니 자신은 완전 반대로 하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그러니 아무리 해도 앞으로 나아가질 않으셨다고 하셨다. 그러면서 시간을 내 가르쳐 줘서 고맙다고 하셨다. 그게 뭐라고 이제껏 제대로 가르쳐주는 이들이 없었다는 말씀과 함께.


그렇게 하나 둘 나에게 인사를 걸어오고 말씀들을 나눠주시는 분들이 늘어갔다. 감사히도 이것저것 챙겨주시는 분들도 생겨나니 나를 탐탁지 않게 여기는 듯 행동하시던 그분이 물어오신다. "여기 언제부터 다녔어요? 그전에 저분들 알고 있었어요?" 자신이 함부로 대한 사람이 원년 멤버인가 싶으셨나 보다. "아니요. 저 이번달에 들어왔는데요." 그러면서 의아한 눈빛을 보내신다.


그리고 얼마 후 그분이 말씀하시는 게 바뀌었다. 접영의 여왕이라느니, 완전 선수 같다느니, 너무 멋지다, 뭐든 다 잘한다... 이런 말들을 듣고 있노라면 나를 그렇게 적개시하셨던 분 맞나 싶은 생각이 든다.


한동안 잊고 지냈던 모습이었다. 조직에서 볼 수 있는 여러 형태의 사람들 모습이 보였다. 이것도 사회생활이라고 그 안에서 헤게모니를 만들어내고 장악하려는 모습들이 있었다. 하지만 그런 모습도 거짓 없는 친절을 베풀 때 모두 해체되는 것 같았다. 난 거기서 바라는 것이 없었다. 내가 돈을 내고 수영하러 갔기에 그것만 하면 되는 것이었다. 바라는 것이 없으니 얽매일 필요가 없었고 그 누구보다 당당하게 행동할 수 있었다. 반대로 내가 나눠줄 수 있는 것들은 기꺼이 나눠주기 시작하니 나를 좋아해 주시고 챙겨주시는 분들이 생겨났다. 그렇게 모두가 행복하게 수영을 즐길 수 있게 되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머뭇거릴 때 반드시 깨달아야 하는 것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