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가방 하나 없습니다만.

비교하지 않는 습관

by 황사공



"요즘 우리 좀 덜 싸운다. 그지?"



아이들을 재워놓고 텔레비전을 보다 남편에서 슬쩍 물었다.



"우리가 언제 싸운 적이 있었어? 그냥 네가 혼자 화내고 말고 한 거지 우리가 싸운 적은 없지."



소시오패스인 남편다운 대답에 실소가 절로 나온다.


결혼 초 우리 부부는 제법 자주 싸웠다. 황당하게도 남편은 아직도 우리는 싸운 적이 없다고 말을 한다.

나에게는 부부싸움으로 남은 그 수많은 일 들이 남편에겐 아무것도 아니라니. 심지어 기억조차 잘하지 못한다.

따지고 묻는 것도 피곤해 그냥 "어이가 없네~" 하고 말았더니 남편이 이게 아님을 직감했나 보다.


"우리가 언제 싸웠다고 그래~ 난 너랑 천생연분인 것 같아. 다음 생에도 널 찾아내서 결혼하고 말 거야."


누구 좋으라고 하는 소린지...?


"그런 끔찍한 저주를 하다니. 난 다음 생에 결혼 절대 안 할 거야. 아니야 태어나지도 않을 거야. 그러니 나 찾을 생각일랑 넣어둬~ 꿈도 꾸지 마!!"



그래도 남편은 나랑 결혼한 걸 후회하지는 않나 보다. 늘 투덜대기만 하는 남편의 입에 바른 소리에 기분이 나쁘진 않았다. 내 결혼생활은 힘들기만 하다 생각했지만 말이다.




생각해보면 나는 꽤나 자주 화를 내고 짜증을 냈었다. 몸도 힘들고 마음도 지치고, 그냥 온통 맘에 안 드는 것 투성인 데다가 남편의 모든 것이 못마땅해 남편에게 갖은 짜증을 다 내곤 했다. 거기에 말도 이쁘게 하지 않는 남편의 한 마디가 더해지면 그간 참아왔던 모든 것이 터져 남편에게 폭포처럼 쏟아붓고 만다. 문제는 그런 나를 대하는 남편의 태도이다. 남편은 내가 소리를 지르던 뭘 하던 별로 신경을 쓰지 않고 자기 할 일을 한다. 골리앗과 싸우는 저글링 같은 모양새다. 암만 바득바득 달라붙어 괴롭혀도 골리앗은 꿈쩍도 하지 않는다. 내 얘기를 듣지 않는 남편에 더 화가 나 혼자 날뛰고, 남편은 별 신경도 안 쓰다가 이불을 뒤집어쓰고 눕고는 이내 코를 골기 일쑤이다.


나를 무시하는 것만 같아 화가 나지만 화가 나는 건 나 일뿐, 남편은 신경조차 쓰지 않는다. 자고 일어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실없는 소리를 해 대며 친한 척하는 남편 때문에 처음엔 많이 상처 받았지만 이젠 나도 조금 무던해졌다. 아직도 그런 남편의 무신경함에 늘 화가 나긴 하지만, 요즘은 그런 천하태평 할 수 있는 성격이 부럽기도 하다.




코 골며 잠든 남편을 보고 있으면 더 화가 솟아오른다. 내 속은 이렇게 지옥인데 쿨쿨 잘만 자는 남편이 너무 얄미워 몇 번 꼬집어도 보고 때려도 보지만 그래 봤자 남편은 끄떡도 하지 않는다. 그런 날은 분해서 잠도 오지 않는다. 내 신세가 너무 처량한 것 같아 한없이 우울해지곤 하는 그런 밤에는 휴대폰을 들어 맘*홀릭 카페엘 들어간다. 화가 나고 우울한 날에만 찾게 되는 카페이다.


임신과 출산을 하며 필수로 가입해야 하는 곳이라길래 가입을 했었지만 넘쳐나는 정보과 광고들 속에서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잘 이용하지 않았었다. 그러다 우연히 산후 우울증 카테고리를 보게 되었고, 임신과 출산 중 우울하던 그 모든 순간들을 전국에 있는 우울한 산모들과 함께 이겨냈다.

부부싸움을 하고 난 뒤의 분통 터지는 마음은 부부클리닉 카테고리의 전국에 있는 부부싸움 한 아내들과 함께 이겨냈다. 나보다 더 한 사람이 있다는 것에서 위안을 받는다고 해야 할까? 내가 글을 써 본 적은 없지만 잠시 동안에도 여러 개씩 올라오는 속 타고 화나는 아내들의 이야기들이 묘하게 위로가 되곤 했다.


그곳에서는 하루에도 수없이 많은 다툼과 이혼 이야기들이 올라온다. 싸운 이야기에는 예민한 것 같으니 참으라는 댓글 혹은 이혼하라는 댓글이 찬반토론을 하는 양 달린다. 거기에 올라오는 글들을 읽기는 하지만 댓글 달기는 조심스러워 나는 늘 눈팅만 하는데 날이 서 있는 수없이 많은 댓글들에 공감을 하기도, 또 상처를 받기도 한다.

그렇게 다른 사람들의 세상을 구경하다가 보면 어느새 한가득 쌓였던 내 화가 어디론가 사라지고 만다. 나보다 더 나쁜 상황에 처해있는 사람들을 보며 위안을 받는다는 게 너무 못난 마음인 것 같아 어느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나만의 화 삭이는 방법이다.


사람을 불행하게 하는 것은 가난이 아닌 비교라고 했던가? 내가 가난하다는 사실보다 저 사람보다 못하다 라는 비교하는 마음이 사람을 불행으로 이끄는 것이라 들었다. 그리고 실로 우리는 수없이 많은 비교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 노력하며 살아가는 듯하기도 하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엄마의 세계, 부부의 세계, 육아의 세계에서도 그 비교의 법칙은 유효하다.


나와 가깝게 지내는 '너'보다 나을 때 만족을 느끼고 '너'보다 부족할 때 좌절을 느낀다.





나에게는 명품가방이 하나도 없다.


지금껏 살아오면서 명품가방이 갖고 싶었던 적도 없고 필요로 했던 적도 없었다. 한 때 명품가방을 드는 것이 유행처럼 번져 친구들이 돈을 모아 명품가방을 살 때, 나는 그 돈을 모아 여행을 떠났었다. 가방보다 여행이 좋았고, 여행을 선택한 나 자신이 기특했다.

그러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키우며 다른 엄마들을 많이 만나게 되다 보니 자연히 그들의 가방이 보였다. 명품을 잘 모르는 내 눈에도 어떤 브랜드인지 대충 얼마인지 알 수 있는 류의 가방들을 들고 다니는 엄마들을 만나면서 실용성만 중시하는 나의 에코백과 크로스백이 어쩐지 부끄러워졌다.

남편에게 그 얘기를 했더니 남편은 명품가방 하나 정도는 있어야 한다며 사고 싶은 가방을 골라보라 말한다. 정작 저도 명품이라고는 하나 없으면서 말이다. 무리를 해서라도 와이프 가방 하나 정도는 제대로 사주고 싶다는 남편 말에 흐뭇해하며 가방을 찾아보다 보니, 이건 아닌데 싶은 생각이 번뜩 든다. 명품 가방 같은 거 없이도 지금껏 잘만 살아온 내가 지금 뭐하는 짓인가 한심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무엇보다 이 큰돈을 가방 하나 사는데 쓰는 건 결코 용납이 안되었다. 가격표를 들여다볼수록 한심한 마음은 커져만 갔다.



예전 대학생 시절에 만났던 한 사람이 있었다. 헤어지고 몇 년이 지난 뒤, 그 사람이 결혼을 한다며 그전에 얼굴 한번 보자고 연락이 닿아 결혼 축하 인사 겸 만나게 되었다. 이런저런 안부 인사를 나누고 서로 살아가는 얘기를 하다 헤어질 때, 그의 눈길이 내 가방에 닿았는지 대뜸 이렇게 말을 했다.


"이젠 너도 명품가방 같은 것 좀 들고 다녀. 좋은 가방 하나 못 사줘서 너무 미안하네."


가난하던 학생 시절 만났던 사이이다 보니 명품 가방 같은 건 생각지도 않았었는데, 직장인이 된 그때의 그의 눈엔 내 가방이 부족해 보였나 보다.


"이 가방이 뭐 어때서? 이것도 좋은 가방이야~ 걱정하지 마. 나 잘 먹고 잘 살고 있으니까."


한참 여행을 다니며 신나게 살고 있던 나에게 전 남자 친구가 내뱉은 소리가 고작 명품 가방을 들고 다니라는 말이라니. 그때의 나는 명품 가방이 없어도 빛난다 믿었기에 그의 조언이 한심하게만 느껴졌었는데, 십 년이 지난 지금의 나는 명품가방을 타령을 하고 있다. 생각할수록 한심하고 우습다.


명품 가방을 매일 바꿔 메고 다니는 동네 엄마를 보며 나 자신을 부족한 인간으로 만들어 버린 내가, 나이만 더 먹었지 속은 더 좁아지고 자존감은 더 낮아진 요즘의 내가 못내 서글프다.





아이를 키우다 보니 비교의 시험에 참 자주 부닥친다.

9월생 누구는 벌써 알파벳을 읽을 줄 안다라던가 12월생 누구는 혼자 책을 읽는다더라 등등의 엄마 친구 아들 예정자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나도 몰래 조급함에 빠지고 만다. 그럴 때마다 영어학원을 알아보기도 하고 애 앞에 책을 던지며 읽어보라 강요하고 그림 그리라고 손에 펜을 쥐어줘 보기도 한다.


하지만 아이는 결코 엄마의 뜻을 따라주지 않는다. 어쩌면 그게 다행인 것 같다. 나의 뜻을 조금이라도 따라 준다면 나는 더 욕심을 내서 아이를 몰아세웠을지도 모르니까. 세상에서 가장 순수하지만 엄마 말은 잘 듣지 않는 아이로 자라고 있는 게 어쩌면 우리에게 주어진 축복인지도 모르겠다. 비교하려는 엄마의 못난 마음의 싹을 아이가 싹둑 잘라주니 말이다.



한 걸음만 뒤에서 생각해보면 참 한심하고 우습기 짝이 없지만, 비교의 늪에 빠진 그 당시에는 모든 상황이 진지하고 심각하다. 추진력이 너무 좋다면 비교의 늪에 빠진 그 순간에 아마 사고를 쳐 버릴지도 모른다. 명품가방을 사버리고, 아이를 영어학원에 등록하고 새로운 전집을 사 들인다는 식의 사고 말이다. 성급한 내가 혼자 아이를 키웠다면 아마 우리 아이는 엄마의 분주함 때문에 난리가 났을 것 같다. 다행히 나와 완전히 다른 남편은 나의 이런 성급함을 잘 잠재워 준다. 그저 제때 대답을 하지 않을 뿐이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남편의 대답을 기다리다 재차 생각을 하다 보면 스스로 번뜩 정신을 차리니 말이다.


내가 생각해 놓은 나의 기준대로 내 인생을 지켜내고, 또 아이가 스스로의 인생을 살아갈 수 있도록 방향을 잡아 줄 수 있으려면 결코 흔들리지 말아야 할 텐데 지금의 나는 하루에도 수없이 흔들린다. 참 못 미덥다.

돌아서서 정신 차리고 비교하지 말자 자기반성을 해 보지만 앞으로도 흔들리지 않을 자신은 아무래도 없다. 아직 나는 너무도 부족한 사람이고 엄마인 것만 같다.


흔들리고 또 흔들리다 부러지지나 않길 그저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