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는 정말 사랑인가요?

두 번째 육아 이야기

by 황사공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 로 끝나는 수많은 해피엔딩의 동화들에서 왕자와 공주는 몇 명의 아이들을 낳았을까? 정답은 없지만 나는 늘 막연히 두 명이라 생각했었다. 헨젤과 그레텔과 같은 듬직한 오빠와 귀여운 여동생으로 말이다.


큰 아이를 키우면서도 둘째는 풀지 못한 숙제처럼 마음 한편에 자리 잡고 있었다. 엄마가 된 후 만난 친구들의 둘째 임신 소식이 하나 둘 들려올 때마다, 그리고 놀이터에서 함께 노는 친구들을 바라보며 혼자 쭈뼛거리는 아이를 보면 더 그랬다. 하지만 임신과 출산, 그리고 육아까지 다시 하려니 정말 엄두가 나지 않았다.


둘째 고민은 맘 카페의 단골손님이다. 그리고 그 고민의 댓글에는 항상 둘째는 사랑이니 낳으라 말하는 이들이 넘쳐났다. 낳아본 이들은 모두 추천하고 낳지 않은 이들은 하나로 만족해했다. 이 각박한 세상에 아이를 둘이나 낳는다는 것은 결코 쉽게 할 수 있는 선택이 아니었기에 같은 고민을 하는 엄마들이 그토록 많은 것이겠지.


둘째... 언젠간 할 수도 있겠지만 내 의지로 먼저 시작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었달까. 임신과 출산, 모유수유와 육아의 과정을 다 알고 있기에, 결코 쉽지 않은 그 시간을 반겨 맞이할 수가 없어서 미루고 또 미뤘다. 그리고 더는 미루지 말아야겠다 생각이 들 때 즈음, 이제 좀 육아가 할만해졌다 싶을 때쯤 둘째가 우리를 찾아왔다.


둘째의 임신과 함께 또다시 포기해야만 하는 것들이 생겼다. 이제야 간신히 조금씩 보이던 나의 자유와 다시 무엇인가를 해보려 했던 의지들, 그리고 제법 구체화시켜 두었던 계획을 포기해야 했다. 아쉬웠지만 둘째는 이미 우리를 찾아왔고 그 존재 자체가 또 다른 위안이 되리라 믿으며 새로운 아이를 맞이할 준비를 했다.





두 번째 임신과 출산은 쉬우면서 어려웠다. 이미 해 보았다는 경험은 득이 되기도 했고 또 독이 되기도 했다. 첫째 땐 옆에 끼고 살던 <임신과 육아 대백과> 책을 단 한 번도 펼쳐보지 않은 채 9개월을 보냈다. 그렇게 쉽게 임신을 보내고 막달이 되었을 때는 이미 알고 있는 그 고통을 한번 더 겪어야 한다는 두려움에 밤 잠을 거의 이루지 못했다. 언제 진통이 찾아올까 하루하루 긴장의 연속이었다. 가진통에 속아 새벽에 응급실 들른 게 세 번... 세 번째 방문에 드디어 병원에서는 둘째를 낳기를 허락해주었다. 어찌나 감사하던지...

출산과정은 둘째라고 더 쉬운 건 아니었지만 시간이 짧아져 상대적으로 쉽게 느껴졌다. 코로나 덕에 누구의 방문도 없이 병원과 조리원 미션을 클리어하고, 나라에서 지원해주는 산후도우미와 함께 3주를 더 보냈다. 그렇게 10개월이 순식간에 지나갔고, 두 아이와 부대끼며 순식간에 100일이 또 지나갔다. 2020년은 그저 집에만 있었을 뿐인데 봄이 오고 여름이 오나 싶더니 주야장천 비가 왔고, 그렇게 가을이 왔다


지금의 나는 아이 하나를 키울 때 보다 더 많이 행복하다. 아이가 둘이 되면 행복은 4배가 된다더니 정말 그렇다. 이제 제법 대화가 되는 큰 아이도, 울기밖에 못하는 둘째도 너무 사랑스럽다.




그저 천사인 둘째






둘째는 정말 사랑일까?


그렇다고 말하고 싶다. 둘째가 더 이쁜 이유는 이미 해 본 일들에 대한 여유에서 오는 듯하다. 아이가 울고 자지러지면 어쩔 줄 몰라 발을 동동 구르던 첫째 때와 달리 웃으며 우쭈쭈 달래곤 울어도 어느 정도 내버려 둔다. 잡으면 부러질까 제대로 안지도 못했던 첫째 때의 초보 엄마가 지금은 손톱도 그냥 턱턱 자르고 한 손으로 엉덩이도 씻겨낸다.


작은 새 처럼 파닥이던 이 맘 때의 첫째를 보며 낯선 두려움에 떨던 예전의 내가 우스울 정도로 둘째의 파닥임은 귀엽고 사랑스럽게 느껴진다. 앎이 이토록 사람을 여유롭게 만들다니.. 갓 태어난 작디작은 아기의 모든 몸짓이 아무 문제가 없이 잘 크고 있는 과정이라는 걸 아는 지금은 정말 아기의 딸꾹질, 울음 조차 너무 사랑스럽다. 딸꾹질 한 번이나 분수토 한 번에 큰일이라도 난 양 호들갑을 떨던 예전의 초보 엄마는 결코 느낄 수 없었던 사랑스러움이다.


하지만 육체적으로는 두배로 고단하다. 4살이 된 큰아이는 요즘 고집이라는 게 생겨 한창 말을 안 듣는 데다가 무조건 놀이터에서 놀자고 투쟁을 하는 통에 아이가 깨어있는 동안에는 한번 허리 피고 눕기도 어렵다. 혹 작은애만 안아준다고 서운함을 느낄까 싶어 할 수 있는 한 큰 아이와 같이 있어주려 노력을 하다 보니 내 산후조리는 뒷전이 되고 만다. 둘째를 낳고선 조리원을 꼭 가라 말하고 싶다. 산후보약도 꼭 먹고 몸에 좋다는 건 조리원에서 다 누리라 말하고 싶다. 집에 돌아오면 결코 그런 여유가 없다. 첫째 때와는 완벽히 다르다.

남편이 있는 주말에도 남편은 잠자는 둘째를 지키고 내가 첫째와 놀이터에서 뛰어노는 기이한 광경이 펼쳐진다. 엄마를 너무 좋아하는 아들인 데다가 첫 째에게 서운함을 주지 않으려 노력하다 보니 절로 그렇게 되었지만, 육체적으로 힘든 건 어쩔 수 없다. 어느덧 삼십 대 중반을 넘겨버린 내 나이도 한몫하겠지... 한 살이라도 젊을 때 아이를 낳으라던 해본 이들의 조언이 또 이렇게 현실적으로 다가온다. 정말 맞는 말인데 내가 경험해야만 깨닫고 마는 삶의 진리들이다.

다가 4살이 되면 하루 한번 자는 낮잠마저도 걸러먹기 일쑤이다. 아이가 낮잠이라도 자 주면 조금 쉬지만 그렇지 않은 날은 아침부터 밤까지 쉼 없이 달리는 아이의 옆을 지키느라 기진맥진하고 만다. 그러는 사이사이 먹고 자고 싸는 게 일인 둘째를 먹이고 넘달래고 재우고 기저귀를 갈아야 한다. 무엇보다 힘든 것은 둘째 수유를 위해 밤에도 여러 번 깨야해 잠이 부족한 것이다. 부족한 잠에 퀭해진 얼굴로 비몽사몽 하며 하루를 버텨낸다. 잠이 별로 없는 편인데도 참 어렵다. 카페인이 금지된 수유부의 하루는 매일이 고단하고 피로하다.


우린 세 살 터울의 아들 둘인데 주변의 두 살 터울을 보면 정말 박수가 절로 나온다. 아직 엄마 껌딱지인 첫째가 둘째의 존재를 이해하지 못해 울고불고 매일매일 대환장 파티란다. 그런 걸 보면 아예 연년생으로 붙여 뭣도 모르는 애 둘을 같이 키우거나, 큰애가 어느 정도 크고 난 3살 터울 이상이 키우기는 좋은 것 같다.





"큰 애가 샘내지 않나요?"


아이 둘을 데리고 다니면 단골로 듣게 되는 질문이다. 남편은 이 질문 자체가 큰 아이가 샘을 낼 거라는 어른들의 삐뚤어진 시각에서 비롯된 것이라 말한다. 아이는 샘을 모른다나 어쩐다나. 그저 둘째로 인해 큰 아이를 더 신경 써 주지 못함에서 오는 불만이 생기는 거지 그게 둘째를 향한 질투나 샘은 아니라는 것이다. 둘째가 있어도 큰 아이의 욕구를 충분히 채워주면 아이는 행복하다며, 우리가 큰 아이를 더 많이 신경 써주면 된다 말한다. 남편은 알은체가 우스워 어디 한번 두고 봐~ 하고 말았지만, 우리 집 첫째는 둘째에게 샘이라는 걸 내지는 않아 보이긴 한다. 물론 둘째의 장난감을 가지고 놀고 싶어 하고, 둘째를 안아 재울 때 자기도 안아달라 투정을 조금 부리긴 하지만 대부분의 시간은 동생을 예뻐하고 자기가 돌봐야 하는 존재라 인식하고 지내고 있다. 형이 되었다는 뿌듯함에 형 노릇 하느라 알아듣지도 못하는 동생에게 잔소리를 해대는 모습이 너무 사랑스럽다.


동생보다 33개월 빠른 큰 아이는 동생의 탄생과 동시에 형이라는 책임감을 얻으며 부쩍 성장했다. 누가 알려주지 않아도 절로 체득된 아이의 앎이 그저 신기하다. 이래서 다들 첫째는 그래도 첫째다 라고 하나보다. 고작 4살짜리를 두고도 첫째라 의젓하고 책임감 있네 라는 소리가 나오는 걸 보면 말이다.



동생 재우는 엄마를 기다리다 혼자 잠든 첫째





둘째가 태어나고 달라진 건 바로 남편이다.


첫째를 키우던 그때, 잘 모르던 초보 부부가 고군분투를 하던 그 시절에는 남편의 육아 참여도가 매우 높았다. 목욕은 당연히 남편 몫이었고 교대로 밤중 수유를 했고 번갈아가며 주말 휴식을 가졌다. 손톱 자르기도 난 거의 해보질 못했다. 매사에 꼼꼼한 남편이 덜렁대는 나를 못 믿어서였지만 어찌 됐던 그 당시의 나는 그래도 남편이 좋은 아빠는 맞는 것 같아 내심 흐뭇했었다.

둘째를 낳고 남편이 첫째 때만큼 협조적 이리라 생각했던 건 완벽한 나의 오판이었다. 첫 째가 자라며 아이에게 손이 가는 부분이 많이 줄었고, 그 일들은 대부분 살림을 도맡아 하고 있는 내 몫이 되어 있었다. 남편은 그저 회사에서 일하고 돌아와 밥 먹고 쓰레기 정도만 버리고 주말에 아이랑 노는 정도의 생활을 하고 있었는데, 둘째가 태어나도 그 삶을 유지하려 했다. 왜 첫째 때만큼 도와주지 않냐는 원망 섞인 질문에 이렇게 답한다.


"이젠 네가 더 잘하잖아. 예전엔 너무 몰라서 내가 도와준 거고."


나를 신뢰하게 되었다는 소리니까 기뻐해야 하는 건가? 하지만 기분이 나쁘다. 둘째 육아 역시 공동의 과제임이 분명한데 이미 살림과 육아에서 손을 제법 떼어버린 남편은 영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는다. 씻기고 놀아주는 것은 하긴 하지만 예전엔 스스로 찾아서 모든 걸 했다면 이젠 하라고 하라고 시켜야 간신히 움직인달까?

이럴 줄 알았으면 둘째 출산 전에 업무분장을 명확히 했었어야 했는데.. 싶다. 혹 둘째 출산을 앞둔 사람이 이 글을 본다면 남편과의 역할 분담을 꼭 미리 해놓으라고 해주고 싶다.

둘째를 낳고 갔던 산후조리원은 첫째의 동반 입실이 되는 곳이었던 탓에 조리원 동기가 둘셋 엄마가 많았다. 참 재밌는 게 12명이 모여있는 조리원 단톡 방에서 남편 자랑을 하는 건 첫째 맘들 뿐이라는 점이다. 아직 어린 첫째 엄마들은 자기 남편들이 얼마나 가정적이고 많이 도와주는지 자랑을 하고, 둘째 엄마들은 남편이 전혀 안도와 준다 불평을 한다. 그 와중에 셋넷 엄마들은 그저 남편한테 아무것도 기대하지도 바라지도 않은 채 혼자 묵묵히 애들을 키워내고 있다. 씨끄러운 단톡 방에서 가만히 있다가 한마디 "다들 좀 더 살아봐~"를 툭 던지는, 어쩐지 삶을 초월한 듯 보이는 셋 넷맘들의 짧고 굵은 조언이 참 웃프다.




내 주변에는 아직 결혼을 하지 않고 출산을 하지 않은 이들이 수두룩하다. 대한민국의 저출산을 걱정하는 어른들과 달리 젊은이들은 출산율을 걱정하지 않는다. 아니, 지금 당장의 먹고 살기를 걱정하느라 출산율을 걱정할 여유가 없다.

아이 둘을 키우는 우리 집도 고민이 많다. 아이를 봐줄 사람이 없어 외벌이로 지내다 보니 삶은 늘 여유롭지 못하다. 내년에 큰 아이가 유치원엘 가게 되면 월 50만 원 정도는 더 들 텐데... 내년에 이사를 하게 되면 지출이 지금보다 더 많아질 텐데... 너무도 현실적인 고민들에 머리가 지끈거린다. 이상을 좇고 꿈을 좇는 것은 어느 정도 현실이 안정적이게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는 중이다. 이대로 아이들이 더 자라면 생활비는 더 많이 늘어나겠지. 그때는 분명히 맞벌이를 해야만 할 텐데... 가난하진 않지만 넉넉하지도 않은 우리가 아이 둘을 키우는 것에도 이토록 많은 고민이 따르기에, 그저 이쁘니까 둘째를 낳으라는 소리를 쉬이 할 순 없다. 아이가 많을수록 사랑이 커지겠지만, 그만큼 지출도 커진다. 아이들을 부족함 없이 키워 낼 경제력을 먼저 갖춰야 하는 것이 출산율의 가장 큰 걸림돌임이 너무도 절실히 다가온다.


애 둘을 낳아 애국하느라 고생이 많다는 주변 지인들의 덕담 아닌 덕담과 함께 나는 오늘도 로봇청소기가 분주히 돌아가는 거실에 앉아 고민을 한다. 아이 둘을 키워내야 한다는 현실과 타협하지 않고 엄마인 나의 삶의 만족도를 높일 수 있는 경제적 활동이 무엇이 있을까 하고 말이다. 쉽게 찾아지는 답은 아닌 듯하다. 삶은 어디로 어떻게 흘러갈지 아무도 모르는 거니까.


천사 같은 둘째는 청소기 소리를 자장가 삼아 단잠에 빠져있다. 아이의 자는 모습을 보는 것은 언제나 너무 행복하다. 내가 세상에 내어놓은 두 아이들이 행복한 삶을 살 수 있게 해 주는 것, 부모로서 얻게 된 나의 사명감이 그 무엇보다 큰 삶의 이유가 된다는 것을 느끼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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