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사랑은 어디로 갔을까?

특별한 결혼과 평범한 일상

by 황사공



결혼기념일이었다. 결혼 전에 생각하던 결혼기념일은 둘의 사랑을 다시금 확인하는 로맨틱한 날이었지만, 육아와 삶의 무게에 짓눌린 결혼기념일은 별다른 무언가를 하기도 버거웠다. 그래도 꾸역꾸역 의미를 부여하고 싶어 그저 '오늘 하루는 설거지하지 말자.' 정도만 실천해도 행복한 그런 날이랄까. 수많은 선배들의 대수롭지 않게 보내어지는 결혼기념일들을 옆에서 보면서 왜 저럴까 했었는데, 이 또한 역시나 였다. 나라고 별반 다르지 않게 되다니. 참 우습다. 결국 이렇게 되고 마는 게 인생이라니.


그래도 출근하고 돌아오는 길에 남편이 들고 온 꽃 한 송이를 화병에 꽂아두고 아이가 좋아하는 케이크를 사서 촛불을 끄고 외식을 하고... 그렇게 평범하고도 특별한 하루는 사라졌다. 기념일은 늘 특별하고 싶어 했던 나인데, 기념일이라고 특별할 게 뭐 있냐는 남편을 만나 살다 보니 특별함에 대한 기준이 낮아져 버렸다. 내 기대에는 못 미치는 평범한 기념일이지만, 그에게는 분명 꽃도 사고 케이크도 사는 약간은 특별한 하루였으리.

그렇게 결혼 4년 차의 우리는 서로에게 조금씩 맞춰져 가며 조금씩 덜 삐걱거리며 지내는 중이다.





알랭 드 보통의 <너를 사랑한다는 건>이라는 책이 있다. 아주 평범하고도 특별한 자전적 전기 형태의 소설이다. 이자벨의 모습을 관찰하며 전기적인 관점으로 써 내려가는 평범한 일상들이 정말 엉망진창으로 묘사되어 있는 소설인데, 그 책이 나는 참 좋았다. 너무도 논리적인 남자와 즉흥적인 여자는 불같은 사랑을 시작했지만, 서로의 다름을 서로가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여자를 예측하고 계산해내고 싶었던 남자의 기대에 여자는 매번 찬물을 끼얹어댔고, 그토록 이해하고 싶었던 한 여자에 대해 아무것도 알아내거나 결론 내지 못한 채 둘은 헤어지고 만다. 여자를 이해하고자 했던 남자의 그 모든 노력이 결국 나의 관점에서의 지극히 주관적인 판단이었을 뿐이라는 것을, 결국 남자는 자신의 와이프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것과 다름이 없다는 것이 어쩐지 나는 참 좋았다. 그리고 이런 식의 전기를 써 놓는다는 것이 너무도 로맨틱하게 느껴져 나도 언젠가 결혼을 하게 된다면 서로에 대해 전기를 써 내려갈 수 있는 그런 사람을 만나고 싶다 꿈을 꾸기 시작했었다.(그 꿈은 공돌이 남편을 만나면서 단박에 깨졌지만 말이다.)


굳이 가서 확인할 필요도 없이, 어떤 사람이 어떤 것에 어떻게 반응할지 정확하게 아는 것.


남자가 생각하는 사랑은 이러했지만, 책은 그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려주며 끝나고 만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고... 매일 살을 부대끼며 사는 상대방의 마음조차 하나도 모르는 것이 인생인데, 누군가를 완전히 알고 있다는 오만함이 얼마나 한심한지 잘 알려주는 책이다.








얼마 전 보게 된 노아 바움벡 감독의 <결혼 이야기>라는 영화도, 요즘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는 <부부의 세계>라는 드라마도 모두 결혼에 대해 우리가 얼마나 잘못 알고 있는 것들이 많은가를 깨우쳐주려는 듯하다. 늘 아름다운 사랑의 완벽한 마무리로 묘사되곤 하던 결혼이라는 것이 사실 서로를 잘 모르는 두 사람이 조금씩 배려하고 양보해가며 살아내는 삶의 한 방식일 뿐이라는 것을. 그리고 그 관계가 끝나게 되는 순간 내가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나의 배우자는 낯설고도 낯선 타인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게 되어버림을 그 둘은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영화이고 드라마일 뿐이지만, 내가 사는 유부 월드의 그것들과 별반 다르지도 않다. 씁쓸하게도 말이다.


<결혼 이야기>에서의 찰리와 니콜 역시 첫눈에 반해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았다. 하지만 결혼으로 인해 많은 것을 포기해야 했던 니콜과 승승장구하게 된 찰리는 아슬아슬하게 결혼생활을 유지해내다 찰리의 외도로 모든 것이 깨어져버리고 만다. 이혼을 진행 중인 찰리와 니콜은 이혼 전문 변호사의 권유로 서로에게 반했던 순간 혹은 상대방의 좋았던 점에 대해 각자 써보게 된다. 그렇게 각자 써 놓은 그 한 장의 종이 속에는 지금은 까마득하게 사라져 버리고 만 둘의 지나간 사랑이, 평범한 행복이, 서로에 대해 가졌었던 기대가 남겨졌다.

결국 니콜은 그 종이를 찰리에게 주지 않지만, 나중에 찰리는 그 글을 보게 되고 만다. 찰리는 그 글 속의 내가 낯설었을까? 아니면 그리웠을까? 복잡 미묘한 찰리의 표정이 어쩐지 안타깝게 느껴진 건 내 기분 탓일까.




<부부의 세계>에서도 매한가지다. 완벽한 듯 보였던 태오와 선우의 결혼생활이 태오의 외도로 깨어져버리고 만다. 그리고 이혼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서로 전혀 몰랐었던 상대방의 이면을 발견하게 되고 또 그렇게 그 나름의 전쟁 속에서 또 살아간다. 아직은 흥미진진하게 진행 중인 <부부의 세계>를 남편과 같이 보다 보면 뭔가 씹을게 필요해 자꾸만 뭘 먹게 된다. 그렇게 같이 살이 쪄 가며 확찐자가 되어가는 요즘의 우리이다.






특별하게 좋은 나날의 연속이 아닌 특별히 나쁠 것 없는 나날의 연속이 결혼 생활이라는 것.



너무 평범하고 지루해 그 속에 갇힌 듯 괴롭고 힘들 때도 있지만, 어차피 그건 나만 느끼는 것은 아니다. 엊그제 <부부의 세계>에서 태오가 그랬다. 특별한 줄 알았는데, 결혼하고 살아보니 다 똑같다고. 그 장면에서 나는 남편 등짝을 후려갈겼지만, 그냥 그런 것 같다. 결혼하고 산다는 것은 다 똑같구나 싶고.



그 너무도 특별할 것 같던 사랑은 결혼으로 이어지면 끝이 나고 만다. 사랑의 유효기간은 3년 이랬던 가? 6년 이랬던 가? 잘 모르겠지만 확실한 건 결혼생활이 육아로 넘어간 순간 그 사랑은 사라지고 만다는 것이다. 아니 어쩌면 사랑이 약간 다른 모습으로 바뀌어 아이에게로 향하게 되는 것 같기도 하다. 또 누군가는 아이가 크고 나면 그 사랑이 다시 찾아온다고 하지만, 아직 거기까지는 안 가봐서 모르겠다. 그냥 지금은 "사랑"하면 남편보다 아이가 먼저 떠오른다. 내가 줄 수 있는 사랑의 크기는 한정적이라 지금은 모두 아이에게로만 향해있는 것 같다.


모든 일에는 다 때가 있는 것 같다.

뜨겁게 사랑하는 때도, 열정적으로 일을 하는 때도, 잠시 쉬어가는 때도.


아직 결혼을 하지 않은 동생들에게는 꼭 말해주고 싶다. 지금 뜨겁게 사랑하라고.

다신 없을 수 있는 그 소중한 순간을 허투루 보내지 말고 뜨겁게 보냈으면 좋겠다. 오래오래 그 시절을 생각하며 미소 지을 수 있게 말이다.

어쩌면 내 생에 다시 뜨겁게 사랑하는 때가 오지 않을지도 모르겠지만 뜨거운 사랑이 행복한 인생의 필수조건은 아니다 싶은 요즘이다. 이 또한 나이가 들어간다는 흔적이겠지.


가족이 아프거나, 사고가 나거나, 바람을 피거나 하는 특별히 나쁜 일 없이 평범하고 소소하게 서로의 자리를 지키며 살아가는 중간중간 맛있는 음식을 먹고, 좋은 음악을 듣고, 예쁜 꽃을 보는 것 또한 행복이라는 것을.


조금 더 욕심을 내 아이를 키운 다음 보람을 느낄 수 있는 나만의 일을 찾아내고 싶지만, 곧 둘째가 태어날 지금은 잠시 접어둬야 할 욕심이다. 두 생명을 세상에 내보내 조금 더 밝은 세상을 만드는 것 또한 나만이 할 수 있는 특별한 일임에는 분명하다.


결혼도 행복도 특별하고 거창하게만 생각했던 결혼 전의 내가 지금의 나를 보게 된다면 분명 비웃을 것 같지만, 그냥 지금은 그렇다. 코로나 19로 강제 집콕을 하다 보니 우물 안 개구리가 되어버린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그냥 특별한 일 없이 하루하루를 보내는 것 또한 나름 괜찮다 싶은, 그런 보통의 날도 충분히 아름답다는 것을. 다시 찾아오고 있는 보통의 여름이 또다시 기대되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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