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살이 된 큰 아이는 요즘 통학버스로 등원을 한다. 오전 9시와 오후 4시, 아파트 앞이 노란 차들의 방문으로 분주해지는 시간에 나 역시 그곳에 서서 아이를 보내고 또 기다린다.
그 시간과 그 장소는 엄마들의 전유물이다. 삼삼오오 모인 엄마들 혹은 나처럼 혼자 멋쩍게 서 있는 엄마들로 채워진 그곳은 아무리 나가 있어도 영 적응이 되지 않는다. 나와 같은 처지라는 동질감과 또 나와 다른 이질감을 느껴가며 서로를 곁눈질로 탐색한다.
어느 어린이집에 보내는 엄마일까.같은 데는 아니겠지.
영어 유치원을 보내네. 벌이가 좋은가보다.
아이가 둘이네. 힘들겠다.
할머니일까? 하원 도우미일까?
저 아이는 엄마 말 참 잘 듣네.
등등. 가만 서서 아이를 기다리는 듯 보이는 그 시간이 결코 지루하지 않은 이유는 이 복잡한 머릿속에 있지 싶다.
엄마로 사는 것에 제법 익숙해진 하루들 중에 문득 예전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나에겐 아이를 기다리는 그 시간이 자주 그렇다.
가만 보면 다들 참 곱다. 아이들 뒤치다꺼리를 하느라 지금은 부스스하고 꾸미지도 않아 그냥 아줌마처럼 보이지만, 그 모습 뒤로 한때는 한껏 꾸미고 인정받으며 보냈던 시간들이 얼핏 스쳐 보이는 듯하다.
아이를 향한 너그러운 미소 뒤에 숨겨진, 지금은 낯설어진 그녀들의 다른 모습에 대해 한 번씩 생각을 해 본다. 나와 비슷할 엄마들의 하루들을 말이다.
아침에 피곤한 몸을 이끌고 가장 먼저 일어나 남편을 깨우고 아이의 가방을 챙기고 간단한 아침을 준비하겠지.
남편을 출근시키고 아이를 깨워 씻기고 옷 갈아입히고 음식을 먹이는 전쟁을 아침부터 치르겠지.
아이가 어린이집에 가고 나면 그제야 찾아온 평화를 잠시 만끽하다 어질어진 집을 치우겠지.
커피 한잔에 잠시 휴대폰을 하다 주방으로 가 점심 먹거리와 오늘의 간식과 저녁 메뉴를 고민하겠지.
청소를 하고 빨래도 하고 뭐 이것저것 티도 나지 않는 일들을 하다 보면 아이를 데리러 가라는 알람이 울리겠지.
그리고 아이를 받아 놀이터엘 가고, 간식을 먹이고, 집에 안 가겠다는 아이와 실랑이를 하고.
집에 와서 씻기고 간식을 주고 저녁을 준비하고 저녁을 먹이겠지.
남편이 오면 또 밥을 차려주고 저녁내 쌓인 설거지를 하겠지.
아이와 놀아주고 책을 읽어주며 잠들 준비를 하겠지.
양치를 시키고 잠들기 전 마지막 소변을 누게 하고 잠자리에 누워 따듯한 말로 아이와 소곤대며 아이를 재우겠지.
아이가 자면 다시 나와 장난감을 제자리에 넣고, 건조기에서 나온 빨래를 개고, 어두운 집안을 보며 한숨을 쉬겠지.
오늘 하루도 이렇게 지나갔구나.
너무 피곤해 자야지 하고 누우면 쉬이 잠이 오지 않는다. 고단한 몸과 반대로 어딘가가 빠진 듯 공허한 머리는 말똥말똥 그제야 맑아진다. 휴대폰을 들어 다른 사람들의 하루를 엿본다.
와 여행 다녀왔구나 너무 좋았겠다!
맛있겠다 다음에 나도 같이 먹으러 가자~
너무 이쁘다 넌 늙지도 않네
아 이때 그립다~
친구들의 하루에 댓글을 달아보아도 잠이 오지 않는다.
그러면 동네 맘 카페에 들어가 본다. 내가 모르지만 나와 비슷한 누군가의 고민들을 읽고 댓글을 달아본다.
그렇게 훌쩍 한두 시가 되고, 시계를 보고 화들짝 놀라 폰을 내려놓고 억지로 눈을 감은 채 그대로 또 힘겹게 눈을 뜨는 하루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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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로 살아가는 것은 참 단순하다. 하지만 바쁘다.
매일 반복되는 그 단순하고도 정신없는 하루들을 살아보면 참 공허하다.
아무도 인정해주지 않는 하루들. 버려지는 듯한 시간들로 채워진 엄마의 하루.
어설프기만 한 나는 그저 그렇게 엄마를 흉내 내며 살고 있는 듯 자꾸만 그 삶이 내 것이 아니라 부정하고 있다.
'얼른 애들 키우고 내 인생 찾아야지.'
내 인생은 무엇일까? 아이들이 크고 나면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 언젠간 다시 사회에서 빛날 수 있을까?
이런 하루들이 불안해 무엇인가 해보려고 이것저것 끄집어내 보지만, 아이를 재운 뒤늦은 밤 시간에 하는 공부는 피로함만 더 쌓아 몸이 금세 병이 나곤 한다. 그렇게 또 며칠 아프고 나면 의욕도 사라지고 체력은 또 바닥나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된다. 육아를 하는 3년의 시간 동안 비슷한 패턴이 반복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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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인가를 이루었을 때 얻는 성취감은 인간이 느끼는 가장 큰 만족감 중 하나이다. 그런 성취감이 쌓여 자존감이 높아지고 삶에 대한 만족도 높아진다. 지금의 내가 삶에 만족하지 못하고 자존감이 바닥에 있는 듯 느껴지는 이유도 같은 맥락이지 싶다. 아이를 키우면서 내가 이룬 성취는 무엇일까? 아이를 키워내는 것은 왜 성취로 느껴지지 않는 것일까? 참 이상한 일이다. 아이는 너무도 이쁘고 반듯하게 잘 크고 있는데 그 속에서 나의 성취는 사라지고 없으니 말이다. 육아로 얻는 성취는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 하루 24시간을 아이를 키우느라 실랑이하는 엄마의 삶은 무의미한 시간 낭비로만 느껴진다. 그렇게 엄마들의 자존감은 바닥을 치고 땅 밑으로 숨어버린다.
우리네 엄마들의 삶이 참 미련하게 보일 때가 많았다. 먹고 싶은 것도 사고 싶은 것도 참아가며 궁상떠는 듯 보였던 그 엄마들의 모습에 지금의 내 모습이 겹친다. 필요한 것 있음 말해보라고 해도 필요한 게 아무것도 없다고 손사래 치는 엄마의 모습에 화가 나는 것도 그런 엄마의 모습이 곧 내 모습인 것만 같아서이리라. 이젠 그냥 묻지 않고 엄마에게 이것저것 사서 보내버린다. 그리고 필요했는데 잘 쓰고 있다는 엄마의 말에 소소한 행복을 느낀다.
우리들을 키워내느라 묻혀버린 엄마의 인생이, 지금 내 아이들을 키우느라 사라지고 있는 나 자신의 모습이 될 것만 같아 마음이 갑갑해온다. 여자의 삶이란 결국 이런 것일까?
<파친코>라는 소설이 있다. 종전 시대를 살아온 우리 엄마 세대와 그 자손들의 연대기 같은 내용인데, 그 책을 읽으며 참 화가 많이 났었다. 여자로서, 엄마로서 살아간다는 것이 참 싫었는데 결국엔 그렇게 살아가게 되는 것이 현실인 듯 해 마음이 답답해져 왔다. 책을 읽으며 참 오랜만에 감정이 소용돌이를 쳤다.
한때는 여성의 능력이 남자들에 비해 부족하지 않다 믿어 의심치 않았었다. 여자로서 당해야 했던 부당한 일들을 고발하고 그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노력했었다. 능력 있는 여성은 늘 당당하다 믿었고, 당당하기 위해 언제나 최선을 다했던 것 같다.
여자와 남자는 동등하지만 엄마가 되는 순간 모든 상황이 달라지고 만다. 여자만이 해낼 수 있는 임신과 출산이라는 과정을 겪게 되면서 남자와 여자의 차이는 급격하게 벌어지고 만다. 신이 주신 특권임은 분명하지만 그게 남자에게 인지 여자 에게인 지는 잘 모르겠다. 그냥 그런 생각을 하면 요즘 참 많이 답답하고 속상하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너무나도 조금밖에 없을 것만 같아 숨이 턱 막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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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갓 100일이 지난 천사 같은 둘째는 잠을 자고 있고, 나는 드립 커피를 한잔 내려 마시며 오랜만에 노트북 앞에 앉았다. 그리고 한 시간 내에 큰 아이를 데리러 나가야 한다. 갓난쟁이가 낮잠을 자 주는 이 소중한 시간이 내게 허락된 얼마 안 되는 여유시간이다. 그마저도 아이가 깨면 끝나기 때문에 최대한 숨죽여 커피를 마시고 소리 없이 타이핑을 하고 있다. 아이가 깨면 금세 끝날 찰나의 여유, 그런 이유로 글 하나를 완성시키기도 참 어려운 요즘이다. 그나마 지난주부터 큰 애를 다시 어린이집에 보내기 시작했기에 조금 숨통이 트였다. 그리고 다시 고민이 시작되었다. 그저 엄마로만 살고 싶지 않은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시간이 참 우습다. 오래 고민을 하면 더더욱 정답은 멀어진다. 결심했을 때 바로바로 진행되지 못한 채 미뤄지고 미뤄진 도전들은 결국 뿌옇게 흐려져 나의 것이 아닌 게 되어버린다. 그리고 또다시 고민을 시작한다. 참 어렵고 참 낯설다. 다시금 글이라도 끼적여 봐야겠다. 그래야 사라져 가는 나를 붙잡을 수 있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