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것.
do the next right thing.
뒤늦게 <겨울왕국 2>를 보았다. 전편에 비해 아쉽다는 평들을 듣고 기대가 낮아서였을까 아니면 영화관을 오래간만에 찾아서일까, 나에겐 너무 훌륭하고 아름답게만 느껴졌다. 각자의 위치를 찾아가는 안나와 엘사, 그 과정에서의 역경을 이겨내는 모습이 정말 감동적이었다. 어른이 된다는 것에 대한 올라프의 독백도, 자신의 본모습을 찾아내는 엘사의 고뇌도 모두 좋았다. 어찌 보면 흔해빠지고 식상한 레퍼토리로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무엇보다 가장 좋았던 부분은 엘사와 올라프를 잃고 혼자 남겨진 안나의 독백이다. 늘 언니와 올라프에게 의지하고 그들을 지켜내는 것이 삶의 목표로만 보였던 안나가 스스로 해야 할 일을 찾아내서 나라를 구해내는 장면, 그리고 혼자 남겨져 읊조리던 노래가 큰 울림으로 다가왔다.
Do the next right thing.
인생이 내 뜻대로 풀리지 않는다는 걸 온몸으로 느끼는 요즘이다. 지금을 만들어 낸 지나간 선택을 후회하기도, 이미 지나가버린 과거를 그리워하기도 참 많이 했다.
하지만 결국 그 모든 것은 다 부질없다는 것을, 내가 해야 할 것은 지금의 상황에 최선을 다 하는 것임을, 어쩌면 다들 알고 있을 그 메시지를 영화는 아름다운 노래로 던져준다.
이미 지나간 일을 붙들고 후회해봤자 달라지는 것은 하나도 없다. 뻔하고 식상하지만 잠시 잊고 있던 그 메시지를 다시금 끄집어내 준 <겨울왕국 2> 여운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며칠째 온종일 OST를 듣고 있는 중이다.
show your sel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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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를 하며 알게 되어 친하게 지내던 동생이 있었다. 나이는 어렸지만 부부가 모두 참 착하고 성실해 보기만 해도 참 이상적이게 보이는 그런 가족이었다. 얼마 전 부부는 <82년생 김지영>이라는 영화를 같이 보게 되었고,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 부부싸움을 하게 되었다. 정말 사소한 시작이었지만 싸움은 걷잡을 수 없이 커졌고 결국은 이혼 얘기까지 나오는 지경에 이르렀다.
정말 별 것도 아닌 일이 왜 이렇게까지 커지나 걱정스러웠지만, 당사자인 둘에게는 별 것이 아닌 것이 아니었던 것 같다. 결국 양가 모두 이 사태를 알게 되었고, 부모님들이 각자의 자식을 편들게 되면서 이 싸움은 당사자들이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으로 커져버렸다. 제삼자의 눈에선 정말 안타깝기만 한 상황이다.
이 일의 결론이 어떻게 나게 될지 아직 아무도 모르지만, 그저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두 아이와 아직은 많이 젊은 엄마 아빠가 너무 큰 상처를 받지 않길, 너무 후회할 선택을 하지 않길 바라며 조심스레 지켜볼 뿐이다.
일의 발단은 영화에 너무 공감한 아내와 영화에 하나도 공감하지 못한 남편에게서 시작되었다. 영화와 비교하여 그들의 육아와 살림에 대한 업무의 분배에서 오는 서로의 불만이 나오기 시작했고 누가 무엇을 얼마나 더 많이 하는가부터 너는 왜 이런 것들을 안 하는가, 내가 어디까지 얼마만큼을 더 챙겨야 하나, 왜 나만 이렇게 희생을 하며 살아야 하는가 라는 책망으로 이어졌다. 어찌 보면 나의 힘듦을 상대방이 알아주기를 바랐을 작은 목소리로 보이는 것들이 서로에 대한 원망이 되고 과거에 대한 후회로 이어졌다.
누굴 탓할 수도 없는 그 시간들 앞에서 탓할 무언가를 찾다 보니 서로에게 하지 말아야 할 말들을 내뱉게 되고, 그 말은 서로에게 치유되지 않을 상처로 남겨졌을 것이다. 그렇게 각자가 상처를 입은 채 과거의 과오를 바로잡기 위한 선택 - 어쩌면 더 큰 과오를 범하는 것일지도 모르는 선택지 만을 손에 쥔 채 유일한 탈출구라 믿고 있는 지경에 이르게 된 것이 아닐까.
비단 이 부부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우리 집 또한 겪었고 여전히 겪고 있으며, 대부분의 가정도 겪고 있을 문제이다. 한 가정의 성장과정일 뿐일 이 시간들을 얼마나 잘 극복하는가가 새롭게 탄생한 가정이 풀어내야 할 숙제라는 것을 이 길을 먼저 간 선배 부부들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나의 반려자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싫어하는지, 함께 살아봐야만 알게 되는 상대방의 성격과 습성들을 서로가 조금씩 맞춰주고 또 양보해가며 살아가는 것.
나의 힘으로 바꿀 수 없는 지금의 시간 속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것을 찾아 해 나가는 것이 어른의 삶이라는 것. 비록 그게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닐 지라도, 그것이 모두를 위한 것이라면 그래야 한다는 것을 알아가는 것이 어쩌면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이 아닐까?
예전의 나도 배려와 양보, 희생을 하며 살고 있다 생각했었지만 가정을 이루고 아이를 키워가며 겪게 되는 그것들은 예전의 것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크고 고통스러운 것이었다. 또 그만큼 보람차기도 하다. 고통스럽지만 이겨낼 수 있도록 그만큼의 기쁨과 행복이 준비되어 있는 것 마냥 힘듦과 행복이 번갈아 찾아온다. 그 속에서 그저 지금의 내가 해야 할 일들을 찾아내 하나씩 하다 보니 하루가 가고, 또 일 년이 간다.
아이는 자라고, 가족이 함께 만들어내는 그 생활에 익숙해져 간다. 그러다 갑작스레 찾아온 또 다른 시련에 맞서 함께 싸우는 것이 한 편의 영화와도 같은 우리 각자의 삶이 아닐까. 어떤 선택이 더 나은 미래를 가져다줄 것인지는 아무도 모르는 것이지만, 그저 모두가 조금 더 행복할 수 있는 선택을 하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아닌가 싶다. 이미 벌어진 상황에서 가장 옳은 일을 하는 것, 나뿐만이 아닌 모두를 위해서 옳은 일 말이다.
지금이 인생에서 가장 큰 고비일 저 부부의 영화가 이 시련을 잘 이겨내는 것이 나의 2020년 새해의 첫 소망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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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서부터 영화를 참 좋아했었다. 그 덕에 취미를 직업으로 삼게 되었었고 영화는 참 질리게 많이 봤었다. 취미로 보던 영화와 업으로 보는 영화는 참 많이 달랐다. 어느 순간부터 영화 자체가 일로 보이기 시작했고, 영화를 수익창출의 수단으로 계산해야 하게 되면서부터 영화가 주는 감흥이 많이 사라졌었다.
일을 그만두고 아이를 키우면서 거의 2년을 극장을 찾지 않았다. 극장이라는 공간과 영화가 주는 피로감이 생각보다 크게 존재하기도 했고, 아이를 키우며 여유가 없기도 했다. 아이가 조금 크고 여유가 조금 생기고 나니 다시금 극장이, 그리고 영화가 좋아진다.
누구는 영화를 보고 감동을 받아 노래하고, 누구는 싸우기도 한다. 스크린 위의 영화가 우리 삶이 미치는 영향이 이토록 다채로운 것이 참 좋았었다. 그래서 영화를 아주 어려서부터 좋아했었다. 별 것 없이 지루하던 하루하루를 즐겁게 만들어 줬던 것이 책이었고 또 영화였다. 책을 보며 영화를 보며 몽상을 사랑하던 소녀는 지금은 아주 현실적인 아줌마가 되었지만, 그래도 여전히 책과 영화를 사랑한다.
2019년의 마지막을 영화로 장식한 것이 참 잘한 일인 것 같다.
쉽지 않을 나의 2020년은 Do the next right thing을 모토로 하게 될 것 같다.
과거에 머무르지 않고 지금 내가 해야 할 최선의 것들을 해 나갈 것.
조금 덜 후회하고 조금 더 편안한 2020년이 되길 소망해본다. 해피 뉴 이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