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일해보고 싶습니다만...

임산부는 안될까요?

by 황사공



오래간만에 옛 직장 동료들을 만났다. 더 좋은 곳으로 이직을 하게 된 그녀를 축하해주는 자리였고, 나의 새로운 임신 소식을 알릴 자리이기도 했다.


여느 때처럼 반갑게 만난 우리는 그간의 근황 이야기를 열심히 나누었고, 서로가 가져온 소식에 서로가 화들짝 놀라가며 예전 같이 일하던 시절처럼 깔깔거렸다.


나는 그녀의 드라마 같은 이직 과정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고, 그녀 역시 뜻밖의 임신 소식에 깜짝 놀란 듯 보였다.



"아.. 그런데 이번에 이 회사 자리 나서 너 가면 딱이겠다 생각했는데..."


"헉...? 그래??? 아... 나 임신했는데 ㅠㅠ 안 되겠지?"


"아... 너무 아깝다. 그래도 임신이 더 축하할 일이지!! 진짜 축하해!!"


..



또 다른 생명을 품고 있는 내 몸이 순간 원망스러워졌다.






꼭 한번 일을 해 보고 싶던 회사가 있었다. 모두가 좋아하는 인기 회사인 데다가 대부분이 장기근속을 하고 있어 신규충원 자체가 거의 없는, 사내 복지마저도 아주 좋은 이상적인 곳이었다.


업계를 떠나면서도 이 회사에서 오라고 하면 돌아올게요.라고 말했던 나에게 드디어 기회가 왔는데, 그 기회를 잡을 수가 없었다. 속상하고 또 속상했다.


집에 와서 속상한 마음을 남편에게 풀어놓았더니 대뜸 가서 그냥 해보라고 한다. 말 같지도 않은 소리다.


6개월 뒤에는 출산휴가와 육아휴직을 갈 예정인 사람을 누가 채용을 하겠는가?


6개월 동안도 임산부의 몸으로 수많은 배려를 받아야만 하는 사람을 누가 불러다 쓰겠느냔 말이다.


속상한 내 마음을 헤아려주지 않는 남편이 또 밉다. 이렇게 된 게 다 남편 탓인 것만 같아 원망스럽기도 하다.


그날 밤, 그 자리는 내 것이 아닌 것이었다고 나의 것은 또다시 어딘가에서 나타날 것이라 애써 위안을 해 보았지만 아주 오래도록 잠들지 못했다.







경단녀 3년 차. 아직은 그래도 마음만 먹으면 다시 복직을 할 수도 있었다. 물론 우리는 아기를 봐줄 사람이 없기에 복직에 제약이 제법 있긴 했지만, 좋은 일자리만 있다면 도우미를 구해 볼 수도 있었다. 하지만 늘 둘째에 대한 고민이 함께했었고, 나의 경력과 둘째 중 하나를 선택해야만 하는 시간이 이어졌었다.


둘째에 대한 고민은 맘 카페의 단골손님이다.

둘을 낳은 모든 사람들은 둘째를 추천한다. 둘째는 사랑이라 말한다. 여건이 되면 꼭 낳으라 말한다.


하지만 아이들과 맞바꾼 엄마의 삶에 대해서는 아무도 말해주지 않는다. 너무 이쁜 두 아이를 키우기 위해 온 몸이 망가지고 사회에서 동떨어져 나를 잃은 채 하루하루 버텨가는 엄마의 삶은 아무도 말해주지 않는다.


그저 모든 대답의 주어는 아이들이고, 그들은 모두 너무 이쁘고 사랑스럽기만 하다.



나 역시 오래 고민했었다. 외동을 확정한 집들이 주변에 많았기에 더 많이 고민되기도 했었다. 넉넉지 않은 외벌이의 생활도 점점 힘들어지는 듯 보였고, 이젠 다시 사회로 나가 경제활동을 해야 할 것만 같았다.


둘째를 단념하고 이제 다시 무언가를 해 보려 했을 때 갑작스레 둘째가 찾아왔고, 사회에서도 나를 불렀다.


이 무슨 머피의 법칙란 말인가.



시작부터 크게 환영받지 못한 우리 둘째에겐 미안하지만, 지금 상황이 그랬다. 나의 젊음과 새로운 기회와 맞바꾼 선택.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둘째는 몰랐으면 좋겠다는 생각 너머로 자꾸만 아쉬움이 든다.

둘째와 맞바꾼, 사라져 버린 나 자신의 것들이 말이다.






얼마 전 개봉해 이슈가 된 <82년생 김지영> 영화를 나는 보지 않았다. 책 보다 괜찮다고 꼭 보라는 지인들의 추천이 이어졌지만 어쩐지 보고 싶지 않았다.


대한민국의 여성들 그리고 엄마들이 직면한 부당함 혹은 부조리함에 대해 투쟁할 힘도 없었고, 같이 공감해 신세한탄을 하고 싶지도 않았다. 또 다른 나 같은 타인의 삶을 극장에서 보며 눈물 흘리는 내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았다.


이미 그러했고 여전히 그러한 세상을 사는데.

꾹꾹 눌러놓고 참고 살고 있는 내 감정을 터트리고 싶지 않았다. 그래 봐야 달라지는 건 없다는 걸 아니까.



나 역시 한때는 페미니스트였다. 지금과 같은 의미의 페미니스트를 말하는 것은 아니다. 여성으로서 사회에서 인정을 받기 위해, 여성이 받는 부당한 편견을 극복하기 위해 남들보다 더 열심히 했다는 의미에서의 페미니즘을 말이다.

요즘은 페미니스트라는 단어 자체가 혐오의 한 축이 되어버려 말을 꺼내기 조차 두렵다. 그리고 이러한 사회의 분위기는 여성의 인권을, 모성의 지위를 바닥으로 끝없이 추락을 시키는 듯하다.



유모차를 밀며 커피 한잔 먹는 모든 엄마가 맘충인 시대.

스스로를 통제하지 못하는 어린아이를 데리고 어딘가를 나가는 것이 민폐인 시대.

카페에서 울고 지하철에서 우는 아기를 달래지 못하는 엄마가 눈총을 받는 시대.

유모차를 끌고 마트나 백화점을 다니는 것이 팔자 좋다며 비아냥거림을 받아야 하는 시대.

임신을 한 것도 출산을 하는 것도 부담스러워 고용을 하지 않는 시대.

아기 있는 엄마는 일을 열심히 하지 않는다며 기회조차 주지 않는 시대.

애엄마에게는 최저임금을 받으며 마트에서 식당에서 일할 기회만 제공되는 시대.

여자와 아줌마가 완전히 다른 취급을 받는 시대.

모두가 서로를 혐오하는 혐오 과잉의 시대.




아기를 키우며 내가 만난 세상은 처녓적의 그것과 너무도 달랐다. 이런 시대를 살면서 왜 나는 둘째를 선택했을까.

이 시대를 탈출할 시간이 거의 다가오고 있었는데, 이 모든 것을 다시 겪어야 하다니. 어쩐지 좌절감이 느껴진다.








아이를 키우는 것. 곧 두 아이를 키우게 될 나에게 펼쳐질 미래가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을 것임을 안다.


아이에게도 엄마에게도 배려가 없는 이 사회는 엄마라는 이름에 너무 많은 책임을 부과하고 있는 듯 하지만 그런 불만 조차 배부른 소리로 치부되기 일쑤라 뭐라 말하고 싶지도 않다. 엄마도 힘들고 아빠도 힘들다. 학생도 힘들고 직장인도 힘들고 백수도 힘들다. 누가 더 힘들고 덜 힘든가의 문제가 아닌데 늘 우린 비교를 하려고 한다. 그래서 더 힘들다. 결국 모두가 힘든 세상인 것 같다.


어쩌다 이런 지경에까지 와 버렸는지 모르겠지만, 난 지금 모든 것을 단념하고 받아들이는 법을 배워가는 듯하다. 그저 혼자 참아내고 감당해내야 하는 길이 이 길임을, 우리 엄마들이 살아온 길임을 온몸으로 배워 갈 뿐이다.



앞으로도 힘들겠지. 하지만 또 견뎌내고 이겨 내겠지.



누군가는 이렇게 말한다. 인생 참 길다고.

지금의 힘듦은 긴 인생에서 아주 잠시인, 지나고 나면 행복이었을 시간이라고.

너의 꿈은 그 뒤에 펼쳐도 결코 늦지 않을 것이라고.



그 시간이 올 때까지 나의 꿈이 나의 기회가 사라지지 않길 래본다.


작고 작은 아이를 키워 냈을 그 시간은, 우리 아이가 다 자란 그 시간은 지금과 같은 시대가 아니만을 바래본다.




네이버웹툰 <용이 산다>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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