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아이는 유치원엘, 작은 아이는 어린이집에를 갔다.
아이들을 바래다주고 동네를 한 바퀴 돌고 집에 올라와 아이들이 벗어놓은 옷가지와 이부자리를 정리한다.
널브러진 장난감을 치우고 매트를 걷어 둔 채 로봇청소기를 작동시키고, 식기세척기에서 그릇을 꺼내 제 자리에 올려놓고 빨래 바구니를 확인해본다. '오늘은 안 돌려도 되겠다.' 커피 한잔을 내려 식탁에 앉았다.
오전 11시. 누군가에게는 한창 바쁠 시간이고 또 누군가에겐 한가로운 시간이겠지.
요즘 남편은 일이 부쩍 많아졌다. 집에 늦게 들어오는 날도 잦아지고 있다. 일을 우선시하는 사람이 아님을 잘 알기에 그의 바쁨을 탓할 순 없다. 우리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한 가장의 무게가 얼마나 무거울지 대충이나마 짐작이 되니까.
덩달아 나의 저녁시간도 바빠졌다. 두 아이를 데려와 먹이고 씻기고 놀아주고 재우는 것은 다 내 몫이다.
아이들이 잠에 들랑 말랑할 때 즈음, 남편은 지친 몸으로 집으로 들어온다. 그리고 늦은 저녁을 찾는다.
평일에 아이들은 아빠 얼굴을 보지 못한 채 잠드는 날이 제법 된다. 가정적인 남편이라 절대 그럴 일은 없을 줄 알았는데, 지금의 변화가 어쩐지 낯설다.
그리고 지금 오전 11시, 이 시간의 나는 제법 여유롭다.
물론 병치레가 잦은 둘째가 내내 집에 있다 다시 어린이집에 간 지 고작 이틀째지만 말이다.
결혼 5년 차의 주부이자 엄마에겐 다소 무료한 요즘이다. 물론 아이들을 보고 집안일을 하는 것은 꽤나 번거롭고 분주한 일이지만 그렇게 보내는 하루들은 나에게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함을 안다. 재미가 있고 없고를 떠나서 무엇인가가 빠진 하루들. 몸은 바쁘고 고단하지만 마음 한 구석이 텅 빈 듯 허전하다.
아이들이 아주 조금 컸을 뿐인데 왜 나는 벌써 조급할까?
이대로 내 시간이 멈춰버릴까 두려운 나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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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20년 지기 친구와 5년 만에 재회해 둘이서 1박 2일을 보내게 되었었다. 처음 만난 건 고등학교 때였지만 친구가 멀리 전학을 가 버려 아주 오래도록 가끔 안부만 묻는 정도로 지켜온 우정이었다. 하지만 서로에게 가장 가까운 옆 자리는 바뀐 적이 없는 그런 친구, 만나서 함께 웃고 떠드는 것 자체가 기적처럼 느껴지는 그런 설명하기 어려운 나의 가장 소중한 친구이다. 친구와 함께 아주 예전의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참 즐거웠고 또 새로웠다.
맞아, 그때 우린 그랬었지.
그래 우리 그때 참 즐거웠는데.
여고생 시절 서로가 꿈꾸던 것과는 다른 삶을 살고 있었지만, 그 꿈을 서로 아직 기억하고 있다는 것이 놀라웠고 또 고마웠다.
꿈은 이루지 못했지만, 지금의 우리도 충분히 행복했다. 꿈을 이루지 못해도 괜찮다는 것을, 그 꿈을 꾸던 그 시절의 모습 자체가 너무 아름답다는 것을 이제야 알게 됨에 그저 웃음이 날 뿐이었다.
그리고 또 아주 얼마 전, 예전 회사에서 같이 일을 했던 한 사람과 연락이 닿았다. 같은 부서에서 근무하진 않았지만 업무 외적인 자리에서 즐거운 시간을 종종 보냈던 동료. 이 회사가 첫 직장이었던 우리 둘은 생각보다 공통점이 많아 보였지만 아주 가까워질 계기는 딱히 없었다. 제멋대로인 데다가 하고 싶은 말은 바로바로 다 내뱉던 몇 안 되는 여직원이 그녀였고 또 나였다. 나보다 훨씬 앞서있는 참 멋진 언니라고 생각했는데 각자의 사정으로 회사를 떠나게 된 후로는 잘 연락이 닿지 않았었다.
그리고 최근 우연히 다시 인연이 닿게 되었고, 다짜고짜 걸려온 전화 너머로 건네 온 "너 참 글 잘 쓰더라."라는 한마디에 아주 오래간만에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3년쯤 전에 그녀에게 내가 써서 보낸 한 장 짜리 글이 있었다. 첫 직장과의 마무리를 아름답게 만들기 위한 한 가지 방법이었달까. 어쨌든 짧게 써서 보낸 나의 글을 기억하고선 다시금 전해오는 감사의 인사와 후한 칭찬에 부끄러우면서도 기분이 좋았다.
언제나 부끄러운 마음으로 몰래 써 내려간 나의 글들이, 나를 잘 모르던 누군가에게 힘이 되고 또 위로가 된다는 사실이, 그리고 그런 마음이 나에게 다시 돌아온다는 것이 얼마나 눈물겹게 고마운 일인지. 아마 그때 그 한 장 짜리 종이를 써 주지 않았다면 느끼지 못했을 감정일 것이다.
어쩌면 우리 인생에서 아주 사소한 일이었을 그 종이 한 장이, 그녀에게도 나에게도 좋은 기억으로 남겨짐에 감사하다.
이렇게 갑작스레 닿은 연락에도 함께 나눌 수 있는 좋은 추억이 있음에도 감사하다.
아이와 관련된 인연이 아닌, 예전의 나 아니 원래의 나를 아는 좋은 인연들을 다시 만날 수 있음에 감사하다.
누구 엄마 누구의 아내가 아닌 나 로서 오롯이 인정을 받는다는 것이 새삼 반갑고 고마운 요즘이다.
어쩌면 그동안 너무 엄마로만 살아왔나 보다. 이 별것 아닌 일들에 감동 아닌 감동을 받는 걸 보면 말이다.
ㅡ
5년 전, 갑작스레 결혼을 하게 되었을 때부터 지금까지의 고군분투가 이 <보통의 일상>에 다 담겨 있다.
서툴렀지만 기대에 차 있던 내가 있고, 두려움과 불안 그리고 불만으로 가득한 내가 있고, 사랑과 분노가 공존하는 내가 또 있다. 그리고 또다시 설렘과 불안을 떠안은 내가 있다.
나에게는 너무 소중하고 의미 있는 공간이지만, 언젠가부터 이곳에 무엇인가 새 글을 써넣을 수가 없었다. 비슷비슷한 사건과 고만고만한 감정, 그리고 결론 없이 뻔한 이야기들.
어쩐지 이미 써낸 듯한 느낌이 드는 육아 이야기의 반복인 것 같아 써 내려가기도 전에 무료함이 들었달까?
한때는 육아 이야기만 찾아 읽었었다. 다른 사람들의 육아가 궁금했고, 내가 하고 있는 것이 잘하고 있는 것인지 확인하고 싶었다. 나와 같은 마음으로 같은 시간을 살아내는 그들의 이야기에 공감하고 같이 울고 웃으며 혼자가 아니라는 위로를 받았다. 내 글 또한 누군가에게 그렇게 읽히기를 바랐던 시간들이었으리라.
하지만 요즘은 넘쳐나는 육아 에세이들 중 하나일 뿐인 것만 같아 특별하지도 않게 느껴지고, 다른 이들의 육아 에세이에도 쉬이 손이 가지 않게 되었다.
아이 둘을 키운 지 4년째, 오만한 말이지만 이제 나는 육아가 지겨워졌구나 싶다.
이제 아이를 키워내는 일상은 그만 쓰고, 그동안 아이들 뒤에 숨겨 놓은 나의 이야기를 다시 쓰고 싶어졌다.
어쩌면 이제 나의 시간은 다시 흐르고 흘러 또 다른 갈림길 앞에 서 있는 중인지도 모르겠다.
올해 끝자락에 나에게 찾아온 소중한 인연들이 일종의 신호인지도 모르겠다.
문득 오늘의 나는 지금처럼 살고 싶지 않아 졌고, 무엇인가 새로운 것을 해보고 싶어졌다.
어쩌면 오늘이 너무 무료해서인지도 모른다.
그렇게 또 의욕만 앞섰다가 뜻대로 할 수 없어 또 아무 일도 없었던 양 평소처럼 지내게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제 이 <보통의 일상>은 한동안 찾지 않을 것 같다.
어느 정도 커 버린 아이들과, 한번 해 봤던 육아를 두 번째 하는 나에겐 정말로 보통이 되어버린 이야기이기에.
다시금 재미난 일을 하고 싶어졌다.
붉어진 얼굴로 숨이 턱밑에까지 차 오르도록 열심히 뛰어보고 싶어졌다. 이 평화로운 오전 시간 따사로운 햇살 아래에 앉아있지만 어제와는 다른 기분이다.
이제 그럴 때가 되었나 보다. 한 해가 끝나가고 새로운 해가 오고 있다.
역시 모든 것은 지나가기 마련이었구나. 새롭게 다가올 내년이 벌써부터 기대가 되기 시작한다.
새로운 한 해가 오기 전에, 아이들 이야길랑 잠시 미뤄두고 그동안 잠시 미뤄둔 나를 찾는 시간을 가져 보아야겠다.
나가서 달리기나 한번 하고 와야겠다.
애엄마의 나이던 그냥 나이던.. 여전히 나는 소중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