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를 키우다 보면 가끔 마음이 벅차오를 때가 있다.
낯선 곳에서 불안하게 동공이 흔들리다가 나를 보고선 미소 짓는 아기를 볼 때
자지러지게 울다가도 내가 안아주면 울음을 뚝 그칠 때
잠자다 뒤척일 때 눈을 뜨고선 옆자리에 내가 있는지 확인하고서 다시 편안하게 눈을 감을 때
내가 아니면 안 되는 그런 순간들이 보일 때, 엄마이길 참 잘했다 싶은 생각이 든다.
아이가 없었다면 결코 몰랐을 감정이다.
이제 9개월인 둘째는 세상이 가장 무서운 시기를 겪고 있다. 낯선 사람도 무섭고 낯선 장난감 낯선 음식도 두렵다.
낯을 가리는 아기 때문에 힘들고 지치기도 하지만 동시에 내가 아니면 안 된다는 사실에서 어떤 만족감이 오기도 한다. 나와 함께 그 무서움들을 조금씩 이겨내는 모습들을 보면 무한한 감동에 벅차오른다.
혼자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작은 생명체가 온전히 나에게만 의지하고 있다는 것, 그 기적 같은 일이 주는 감동이 있기에 엄마들은 피곤해도 일어나고 아파도 이겨내는 게 아닐까?
세상의 모든 엄마를 위대하게 만드는 그 힘은 바로 그 기적에서 오는 게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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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를 낳고 키우는 것이 결코 칭찬받을 일이 아니듯이 아이를 낳지 않고 키우지 않는다는 것도 비난받을 일이 아니다. 임신과 출산 그리고 평생 이어질 육아는 누군가의 엄청난 희생을 강요하는 일이기에 결코 쉽게 입을 댈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둘째의 조리원 동기 중에는 어린 친구들이 꽤나 있다. 이제 갓 서른을 넘긴 젊은 엄마들, 특히 출산을 처음 한 엄마들은 사라진 자신의 인생과 불안한 미래에 힘겨워하고 있다. 3년 전의 내가 그러했듯이 말이다.
출산과 육아라는 것이 여자들만의 것은 아니지만 엄마가 되어보면 느낄 수 있는 어떤 상실감이 있다.
망가진 몸과 깨져버린 신체리듬, 존중받지 못하는 나의 기호와 사라진 혼자만의 시간. 거기에 사회에서 동떨어져있는 듯한 고독과 쓸모없는 사람이 되어버린 것 같다는 자괴감까지 한 번에 찾아오는 시기가 바로 출산 후 1년 즈음인 것 같다.
무엇을 하고 싶어도 아이에 매여 포기하고 단념하는 시간들이 쌓이고, 반복되는 단념의 시간들 속에서 몸도 마음도 지쳐버린다. 그렇게 자율 의지가 사라진 하루들을 겨우겨우 살아내지만 공허한 마음을 무엇으로도 채울 수 없는 시기이기도 하다.
그런 나의 고뇌를 남편이 들어주길 바랬던 시간들이 있었다. 엄마가 와서 제발 내 짐을 좀 덜어주길 바랬던 시간들도 있었다.
누군가에게 떠넘기고 도망치고 싶었던 그 모든 순간들을 버티게 해 준건, 말도 못 하는 이 작은 아기였다.
학교를 다니고 졸업을 하고 취직을 하고 연애를 하다 행복하게 결혼을 하고, 임신과 출산 그리고 육아까지 모든 게 처음인 초보 엄마들이 홀로 감당해야만 하는 그 엄청난 심리적 방황을 곁에서 함께 이겨내 준 존재가 고작 이 작은 아기라는 사실이 참 슬프지만 또 고맙기도 하다. 적어도 진짜 혼자는 아니니까.
너무나도 부족한 나를 엄마라고 부르며 자기 세상의 모든 것을 엄마로 채우는 아이 앞에서는 무너져 내릴 수가 없다. 엄마들은 그렇게 강해지고 또 강해진다.
엄마가 아기를 키우기도 하지만 아기 또한 엄마를 성장시킨다. 서로가 더 단단해지도록, 그렇게 보듬고 토닥이고 어우르며 하루를 살아낸다.
아이가 내뱉은 말 한마디에 감동받고, 고사리손으로 두드려주는 안마에 위로받고, 품 안에 쏙 들어오는 포옹에 세상을 다 가진 듯 행복해진다.
가끔 너무 힘들어 아이가 주는 이 엄청난 행복들을 잊고선 원망하기도 하지만, 결국 내 옆에서 나를 향해 잠든 아기를 보면 나쁜 마음들은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고 만다.
둘을 키워보니 아주 조금 알 것 같다.
아이를 키운다는 것,
그것은 내가 자라는 또 하나의 과정이라는 것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