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때는 나도 누군가에게 소중한 사람이었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키우며 살다 보니 어쩐지 낯설어져 버린 과거형의 감정이다.
사랑을 주고받으며 반짝이던 그 존재들은 어디로 사라져 버리고 피로와 권태로 채워진 우리만 남은 걸까?
좋아서 안달 나 결혼을 하고도 금세 사랑을 잃어버리고 마는 게 현실이라는 사실이 비현실적이게 느껴진다.
지금의 시간은 진짜가 아니라고,
내 사랑은 내 곁을 떠나 다른 어딘가를 방황하고 있다고,
십 대 소녀 같은 우스운 상상을 해보기도 한다.
지금의 하루들은 나의 꿈속에 단 한 번도 등장하지 않은 모습의 것이기에 더 비현실적이게 느껴지는 건지도 모르겠다.
아이 둘을 낳아 키우면서도 나는 여전히 몽상가인가 보다.
ㅡ
내가 살고 있는 지금이 너무 숨통을 죄어올 때면 잠시 눈을 감고 예전의 순간들을 떠올려본다.
나지막한 숲 속의 샛길 끝에서 만났던 작은 바위에서의 바람을
뜨거운 여름 에어컨도 없던 작은 식당에서 내 목구멍을 태울 듯 흘러 들어오던 술을
닿을 듯 말 듯 나란히 걷던 길 가에 소복이 쌓여 있던 낙엽을
눈을 떠도 빛 하나 보이지 않던 완전히 밀폐된 그 방의 어둠을
수많은 눈빛들과 내쉬어지던 숨들을 말이다.
내 마음속 깊이 감춰 둔 그 장면들을 하나씩 꺼내본 뒤 다시 넣어 둔다. 그때의 반짝이던 내가 지금의 나에게는 너무 소중하다.
그 시간들 속의 내가 가끔 너무 그립다.
특히 오늘 같은 밤에는 말이다.
ㅡ
일상은 참 단조롭지만 바쁘게 흘러간다.
어느덧 내 나이가 40에 가까워졌다는 것도,
오래 사귄 벗과 함께한 시간이 20년이 넘었다는 것도,
인생을 바꿔줄 것이라 믿었던 여행이 10년 전 일이라는 것도,
큰 아이가 벌써 5살이 되었다는 것도
매번 놀랍게만 느껴지는 사실이다.
내가 살아온 것이 분명한 그 시간들 속에 내가 없는 듯 느껴지는 이유는 뭘까? 술 취해 기억을 잃어버리지도 않는 요즘은 더욱 의아하다. 기억력은 점점 감퇴하고 어제와 똑같은 오늘은 점점 권태로워진다.
넘치게 부지런하고 활동적이던 예전의 나도 그립고
원 없이 나누고 아낌없이 즐기던 시간들도 그립다.
나의 이런 매너리즘을 팔자 좋은 애엄마의 허세쯤으로 보는 남편의 태도에 속상하지만 또 그런가 싶기도 하다.
육아가 쉬운 줄 아냐고 반문하는 것도 귀찮고
따지고 들어 사과받고 다시 얘기를 하는 것도 피곤하다.
그렇게 대화는 이어지지 못하고 각자의 방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하루를 마무리한다.
ㅡ
나는 늘 대화를 원하지만 우리는 단 한 번도 대화다운 대화를 나눈 적이 없다. 내 기준에서 말이다.
나의 추상적 소통을 남편은 이해하지 못하고,
남편의 현실적 대화가 나에게는 무의미하게만 다가온다.
그래서 우리의 대화는 일차원적이고 단발적이다.
아이가 없었다면 정말 대화라고는 없었을지도 모르겠다.
한솥밥을 먹지만 남편이 너무 남같이 느껴지는 날들이 있다.
그에겐 내가 아직도 소중할까?
아니, 예전의 소중했던 내가 얼마 큼이나 남았을까?
어쩌면 없을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생각하니 조금 씁쓸하지만 그럴 가능성이 높을 것 같다. 내가 지금껏 겪은 남편이라면 충분히 그럴 수 있을 지도. 다른 부부들도 다 이렇게 사는지 궁금하다.
억지로 지켜지는 인연도 있다는 것을 깨닫는 중인
쓸쓸한 결혼 5년 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