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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니 May 29. 2022

한 때는 개발자였지 말입니다

공순이로 살아가던 그 시절



옆집에는 7살 남자아이가 살고 있다. 그리고 엄마는 나와 동갑이다. 그 덕에 우리는 쉽게 친해졌다.


아이가 커서 뭐가 되면 좋겠냐는 별 시답잖은 질문에 친구는 주저 없이 개발자가 되면 좋겠다 말한다.


"? 개발자? 진짜? 아니 왜? "


"개발자 너무 멋있잖아! 그런 걸 대체 어떻게 하는 거람. 암튼 난 내 아들이 개발자가 되면 좋겠어. "



꽤나 충격적인 대답이었다. 한 때 개발자였던 내가 공부를 하고 일을 하던 시기에 개발자는 선호 직업이 아니기도 했었고 나의 경험에 비추어 봐도 추천할 만한 직종이 아니라 생각하고 있었는데, 내 아이가 개발자가 되면 좋겠다니. 거기에 더해 뼛속까지 문과 출신인 옆집 친구는 개발자를 거의 찬양하고 있었다.


새삼 시대가 이렇게나 달라졌구나 싶어 놀라울 따름이었다.





컴퓨터공학과에 진했던 당시에 80명 정원 중 여자는 열댓 명에 불과했다. 물론 다른 공학 전공에 해선 여자가 많은 편이었지만, 팀 프로젝트가 많던 과 특성상 소그룹으로 모이다 보면 팀에 여자는 한 명이 있을까 말까였다. 나름 공부도 잘했던 당시의 나는 정말 공대 특수 영광을 두루두루 누리며 즐거운 대학시절을 보냈다. 여자가 귀한 과에서 호강하며 학교를 다니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공부가 재밌었다. 대학 수학은 정말 싫었지만 프로그램을 만드는 모든 과목, 특히 알고리즘이 너무 좋았었다. 아무것도 없는 빈 화면에 내가 타이핑해 만드는 대로 결과가 나오면 어떤 희열이 느껴졌다. 컴파일을 눌렀을 때 버그가 0이고 실행창이 단번에 떴을 때의 만족감이란...


공학은 대충 감으로만 인생을 살던 내게 결과를 예측해 과정을 만들어가는 방법을 알려준 참 고마운 학문이었다. 꼭 전공을 하지 않더라도 공학은 삶에 여러모로 도움이 되는 듯 해 내가 딸을 낳는다면 꼭 공대를 보내리라 결심도 그즈음부터 했었다.



전공을 살려 취업을 하고 실전에 투입되고 보니 현실은 학교와는 너무도 달랐다. 위로 줄줄이 있는 남자 상사들은 터무니없는 이유들로 나를 숨 막히게 했고, 혼자 여자라는 무언의 압박도 버거웠다.


업무로 들어가면 더 힘들었다.

홈페이지와 사내 인트라넷 담당이었던 나는 거의 365일 내내 사건사고에 시달려야만 했다. 그 중간중간 홈페이지나 애플리케이션 리뉴얼 작업도 해야 했고, 수시로 바뀌는 법에 맞춰 서비스 업그레이드해야 했다.

주말과 공휴일도 교대로 당직을 해야 했고, 콜센터에서 처리하지 못한 진상 고객도 상대해야 했으며, 제 멋대로 찾아오는 D-dos 공격으로부터 DB를 지켜내느라 밤도 새워야 했고 기타 등등의 다양한 이유로 36시간 연속 근무도 꽤나 자주 해야만 했다. 침 5시에 회사 근처 모텔에 들어가 간단히 씻고 잠시 눈을 붙인 뒤 10시에 출근을 하던 나날들.

 

거기에 기술은 왜 또 계속 발전하는지... 수시로 발전하는 신기술을 배우러 교육이다 훈련이다 주기별로 다녀야 했고, 신기술을 접목시켜 사이트를 또 개편해야 했다. 아이폰 앱 개발을 위해 맥북을 사고 레오파드를 깔아 시답잖은 코드들과 싸우다가 결국 나는 번 아웃되어버렸다. 


그냥 다 싫었다. 하루 종일 모니터에 파묻혀 보내는 시간이 너무 힘들었고, 똑같은 처지의 팀원들과 퇴근 후 술 마시며 하루를 마무리하는 일상이 우울했다. 휴일엔 나도 마음 편히 놀고 싶었고, 개발자가 아닌 사람을 만나 일 얘기가 아닌 대화를 하고 싶었다. 네이버보다 데브피아를 더 자주 들어가 보던 그 시절. 탈출구가 안 보이는 깜깜함 동굴 속에서 손으로 더듬어 가며 한발 한발 내딛는 듯한 일상이었다.


그렇게 나는 개발이라는 시한폭탄을 아슬아슬하게 들고 있다가 허공에 던져버리고 말았다.


사표를 내던  부대표님과의 면담에서


"저는 컴퓨터 말고 사람과 대화하고 싶어요. 사람과 하는 일을 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더 이상 이 일을 못할 것 같아요. "


라고 말했다. 정말 다시는 개발 따윈 하지 않겠다 다짐하고 사표를 내고 산티아고로 떠났었다.


아 까마득한 옛날이여. 그때의 나는 참 어렸구나 싶다.





요즘은 개발자들의 처우가 많이 좋아진 모양이다. 예전 같이 일하던 개발자 동료들은 아직도 각자의 위치에서 코드들과 싸우며 고군분투 중이만 밥벌이에 어려움은 없어 보인다. 몇 개의 프로젝트를 하다 보면  어느새 소문이 나 프로젝트가 끝나기도 전에 다른 자리에서 더 좋은 조건으로 제안이 오기도 한다고 한다. 그렇게 프로젝트를 끝낼 때마다 몸값이 뛰는 요즘의 개발자들, 나보다도 한참이나 뒤에 있던 후도 좋은 차를 끌고 자가도 마련해 살아가는 걸 보면 발자로 살아가는 게 그래도 꽤나 괜찮은 일이구나 싶다. 물론 나름의 고충은 있겠지만 말이다.


개발자들이 착하고 정이 많은 것은 맞지 싶다. 사람을 대하는 일이 잘 없는 직업적 특성 때문에 더 그런 것 같기도 하다. 사람을 잘 만나지도 않지만 만나는  관계는 대부분 오래 유지한다. 어떤 모습으로 변했든 으스대지 않고, 믿어주고 지지해주며 함께 고생했던 기억을 꺼내가며 지금을 웃어넘긴다. 아직도 연락하고 지내는 개발자 동료들이 주로 그렇기에 나 역시 개발자들을 여전히 좋아하는 편이다.


가끔 개발을 다시 해 보면 어떠냐는 말을 듣기도 한다. 요즘 어린이 코딩이 인기가 좋다며 코딩을 배워보라 말하고, 방과 후 컴퓨터 교사 같은 것도 아이를 키우며 할 수 있으니 지원해보라고도 한다. 코딩을 하는 언어는 달라졌어도 기본 알고리즘은 달라지지 않기에 전공자라면 쉬이 재접근이 가능한 것도 맞긴 하다. 하지만 어쩐지 발자가 다시 되는 건 영 내키질 않었다.

내 아들들도 개발자가 아닌, 무엇이 되든 일에 삶이 좀먹지 않고 스스로를 지켜낼 수 있는 일을 하면 좋겠다 싶은 바람이다.


개발자를 꿈꾸고 선망하는 이웃에게 개발자가 그렇게 좋은 직업은 아니라고 말해 주고 싶었지만, 누군가에겐 그렇지 않을 수 있기에 그냥 좋은 점만 말해주고 말았다. 무엇보다 이젠 까마득한 과거가 되어버린 나의 경은 지금 개발자들의 모습과는 많이 다를 것이기 하니 말이다.


 

개발자던 시절의 나



세상이 참 많이 변했다. 기술은 예상보다도 더더욱 빠르게 발전했고, 그 발전에 따라 수많은 직업들이 사라지고 또 생겨났다.


정확히는 몰라도 새로 생긴 많은 직업들이 IT와 관련이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다. 핀테크니 블록체인이니 메타버스니 하는 모든 것들의 기반이 되는 것이 눈에 보이지 않는 그 정보기술(IT)이니 말이다.


세상이 바뀌었는데 너무 옛날 생각만 하며 살고 있었던 건 아닌가 싶다. 아이들의 장래희망 리스트에 개발자가 들어가고, 무에서 유를 창조해내는 개발자가 점점 더 대우받을 미래가 다가오는 건 아닌가 싶기도 하다.


다시 개발자나 해볼까? (누가 시켜준대?)


뭐부터 해야 할까... 싶지만 일단 애들부터 재워야지 싶은 일요일의 끝자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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