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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니 Jan 12. 2022

안녕하세요 화이바 아가씨

그 시절 모두가 좋아했던 그녀



아침 산책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누군가가 교각 위에 예쁘게 버려둔 미에로화이바 통이 보였다.


'아 아직도 이게 나오는구나.'


괜스레 반가운 마음이 앞선다.


예전에 미에로화이바 대용량이 처음 나왔던 그 시절, 나는 집 옆에 있는 대형마트에서 미에로화이바를 판촉 하는 아르바이트를 잠시 했었다. 내가 대학생이던 시절이니 벌써 십수 년이 지나있다는 사실에 문득 또 한 번 놀랐다. 노란 앞치마를 두르고 미에로 화이바 대용량 출시를 안내하던 어린 내가 아직도 생생히 기억나는데 말이다.





마트에는 물건을 사러만 가 봤지 물건을 팔아본 적은 없었다. 하지만 집 바로 옆인 데다가 일당 5만 원도 쏠쏠하고 방학중에 딱히 할 일도 없었기에 친구가 부탁해 왔을 때 옳다쿠나 하고 수락했고, 나름의 엄격한 절차를 걸쳐 2주간의 출근을 하게 되었었다. 내가 알던 마트의 출입구가 아닌 뒤쪽의 직원용 출입구로 첫 출근을 하던 날 어찌나 떨리던지. 흰 셔츠에 까만 바지를 입고 오라던 업체의 안내에 맞춰 깔끔하게 입고 그물망으로 머리를 단정히 올려 묶고 미에로화이바 라고 적힌 겨자색 앞치마를 둘렀다. 내 모습이 우스울 것 같았지만 거울을 들여다볼 새도 없이 내가 팔아야 하는 음료수 상자가 수북이 쌓여있는 곳에 혼자 덩그러니 남겨졌다.


밸런타인데이 시즌을 앞두고 있어서 판촉을 나온 파견 직원이 많아서 덜 외로웠지만 그들은 가운데 모두 모여있었고 나는 정육코너 앞 쪽에 혼자 동떨어져있었다. 형형색색의 예쁜 치마 유니폼을 입고 초콜릿을 파는 또래 친구들이 어쩐지 부럽기도 했고, 나만 혼자 아줌마처럼 앞치마나 메고 있는 것 같아 속상하기도 했었다.


아침의 마트는 생각보다 더 조용했다. 직원들이 각자 자신이 팔 물건을 준비하는 분주한 시간이었지만 나는 할 일이 없었다. 양념육, 생고기, 돈가스, 고구마 파이 가게가 한눈에 보이는 자리에 멀뚱히 서서 그들이 분주히 일하는 모습을 보고 있을 때 갑자기 흰 유니폼을 입은 정육코너 직원이 다가와 구역 비상연락망을 내밀며 이름과 번호를 적으라고 했다. 내 위로 몇 개의 이름과 번호가 있었고, 아 나는 이 구역 소속이구나 하며 빈칸을 채워냈다.


잠시 뒤 노란 조끼를 입고 안경을 쓴 이 구역 담당 이마트 직원이 다가왔다. 간단한 안내를 해 주었지만 뭐 결국은 알아서 적당히 잘 하란 소리 같았다. 유일하게 자신만이 정직원임에 자부심이 있어 보이던 그 주임은 종일 오락가락하며 짐도 나르고 직원들과 대화도 하고 손님들에게 안내도 하며 분주하게 일을 하며 돌아다녔다. 할만하냐는 말을 건네기도 하면서 말이다.


오후가 되고 손님들이 오기 시작하니 한결 나아졌다. 처음에는 정말 입이 떨어지지 않던 "미에로 화이바가 플라스틱 대용량으로 출시되었습니다. 1+1으로 저렴하게 이용해 보세요." 따위의 멘트도 어느새 자연스럽게 하고 있었고, 길이나 상품을 묻는 손님에게 위치 안내도 곧 잘할 수 있었다. 늘 물건 사러 다니던 마트였기에 어렵지 않았다.


그곳에서는 저마다 판매하는 물건을 붙여 부르곤 했었다. 명찰이 떡하니 있었지만 그 누구도 이름을 부르지 않았다. 나 역시 노란 조끼를 입은 정직원은 손 주임님, 돈가스 삼촌, 양념육 오빠, 고구마 파이 언니, 종갓집 이모, 풀무원 이모 등등 살면서 한 번도 불러보지 않은 호칭을 사용했고 그들에게 나 역시 화이바 아가씨가 되었다.


휴식 시간에 창고 겸 직원들 쉼터에 나가면 시식 이모들이 맛있는 것들도 입에 쏙 넣어주었고, 무거운 내 음료수 상자는 정육코너 젊은 삼촌 오빠들이 비기가 무섭게 채워주었다. 가공식품 코너에서 초콜릿을 팔던 판촉 직원들에게는 허용되지 않았던 여유였다. 함께 교육을 받아 친해졌던 길리안 초콜릿 동생은 무겁지는 않지만 부피가 큰 초콜릿 박스를 창고에서 꺼내 옮겨도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다 불평을 하며 박스를 옮기지 않는 나를 부러워했다. 처음엔 외로웠던 내 자리가 소소한 정이 넘치는 따뜻한 자리인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가끔 쉬고 자리에 돌아오면 내 눈에만 보이는 박스 뒷 구석편에 사탕, 초콜릿이 놓여있기도 했고, 키친타월에 숨겨진 소시지 같은 먹거리가 놓여있기도 했다. 쉴 시간 아닌데 사람 없으니 가서 쉬고 오라며 창고도 돌려보내기도 했다. 그렇게 몰래 먹던 간식의 맛이 얼마나 꿀맛이었던지. 지금 생각해도 참 즐거웠던 추억이다.


코너 내 유일한 여자였던 고구마 파이 파는 언니랑 시간 맞춰 휴식하러 나가 고구마 파이도 얻어먹고, 언니가 살아온 인생 이야기도 들어가며 하루를 보냈다. 판매 알바였지만 좋은 사람들 덕에 즐겁게 일을 했고 예정된 2주는 훌쩍 가버렸다.


마지막 출근을 하던 날, 돈가스를 팔던 오빠가 다가와 저녁에 다 같이 송별회나 하자고 했다. 고작 알바 2주에 송별회까지 하는 건 너무 거창해 보였지만 딱히 거절할 이유도 없어 그러겠노라 말했다. 참석 멤버는 손주임, 고구마 파이 언니, 돈가스 오빠, 양념육 오빠 그리고 길리안 아가씨와 나였다.





사석에서 만난 그들의 모습은 마트에서의 것과 사뭇 달랐다. 늘 흰 조리복과 위생모를 착용한 모습만 보다가 사복을 입고 만나니 대학교에서 만나던 선배들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나이도 그랬다. 나보다 고작 두세 살이 많던 언니 오빠들. 그렇게 남자 셋 여자 셋 짝을 맞춰 우리는 술집으로 갔고 서로에 대한 사적인 얘기를 나누며 즐겁게 술을 마셨다.


1차가 끝나고 결혼을 했던 고구마 파이 언니가 먼저 집엘 갔고, 우리는 따로 2차엘 갔다. 그리고 그때 돈가스 오빠가 내가 처음 출근했던 날 들이민 비상연락망이 사실은 위조된 서류였음을 고백했다. 첫눈에 나에게 호감을 느낀 돈가스 오빠와 양념육 오빠가 급조해 만든 서류에 내가 의심할까 싶어 몇 개 미리 이름과 연락처를 적어놓았단다. 공문서 위조 사실의 자백에 손주임은 화가 난 것 같았고 나는 깜짝 놀랐다. 그리고 내 자리에 초콜릿을 숨겨놓은 것도 다 그 오빠들의 소심한 애정 고백이었음을 그날 알게 되었다. 선택은 너의 몫이라며 깔끔히 차려입은 돈가스 오빠와 양념육 오빠가 갑자기 진지한 얼굴로 변신했고, 당황하던 손주임이 뒤늦게 뭐 하는 거냐며 자기도 나에게 호감이 있다며 끼어들었다. 세상에 이게 무슨 일이람.


그제야 내가 즐겁게 일을 할 수 있었던 그 모든 상황이 이들의 배려였음을 알게 되었다. 파견 알바의 송별회 따위도 전례 없는 일인 데다가 자기 물건을 자기가 나르지 않는 일 또한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나를 두고 자기들끼리 실랑이를 하던 그 오빠들의 모습이 그때의 어린 나는 조금 불편했던 것 같다.


며칠 뒤, 엄마와 함께 마트에 물건을 사러 갔다가 엄청난 서비스 고기와 고구마 파이, 그리고 왕부담스러운 눈빛들을 잔뜩 받았고, 그 뒤로 나는 한동안 마트엘 가지 않았다.  





누군가의 관심을 받고 애정을 받는다는 것은 분명 기분 좋은 일이다. 진심 어린 호감에서 우러나오는 사소한 배려들이 얼마나 고마운 것이었는지를 사회에서 한 발짝 떨어져 나와 혼자 시간을 보내다 보니 깨닫게 된다. 작은 애정을 나눠 주지도, 또 받지도 못하며 작은 섬에 갇혀 아이들과 지내는 코로나 시국을 살다 보니 예전의 그 사소하지만 따뜻했던 관계들이 조금은 그립다. 그리고 그 시절의 어리고 반짝이던 내 모습도 그립다.


비어있는 미에로 화이바 통 위로 하얗게 서리가 내렸다. 공허한 마음에 차가운 서리가 내려앉았다.


누군가의 목을 축여주고선 버려져 이곳에서 나를 기다려 준 미에로화이바 통을 들고 분리수거함에 넣어 주었다.


오늘 나를 기다려줘서 고마워.

우리 이제 새롭게 각자의 길을 가자꾸나.


안녕 미에로화이바 아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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