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향기를.

그라스(GRASSE), 프랑스

by 황사공



'향수:어느 살인자의 이야기'라는 책이 있다.

내가 좋아하는 책 중 한 권이자, 향에 관심을 갖게 만든 장본인이다.

그리고 그 책이 나를 이 남부 프랑스의 작은 마을을 지나치지 못하게 만들었다.



이 책은 독일인이고 프랑스에서 공부를 한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장편소설로

영화로도 만들어진 유명한 작품이다.

살인자의 이야기라기엔 너무 아름답고 슬픈 내용의 영화 '향수' 속에서 주인공 그루누이가

향수 만드는 법을 배우는 마을이 바로 이 곳 그라스(GRASSE)이다.


프랑스 남부의 작은 마을 그라스(GRASSE)는 입구부터 온통 향기로 가득했다.

온화한 남부 프랑스의 기후가 꽃들이 자라기에 안성맞춤이라

가장 좋은 품질의 향수가 만들어진다고 한다.

향으로 유명한 프랑스에서도 향수로 가장 유명한 곳이 바로 이 곳이다.



grass5.jpg 마을입구에 위치한 공식 향수 박물관 - 프라고나르(Fragonard)



그라스는 아주 가파른 언덕에 위치하고 있어 좁은 골목길을 사이에 두고 따닥따닥 지어진 집들이 인상적인 마을이다. 어떤 골목에서는 영화 '향수'의 주인공 그루누이가 나올 것만 같기도 하다.



향 과는 거리가 멀게 생긴 어두운 골목이지만,

그 골목의 1층에는 대부분 방향제품을 판매하는 향수 샵들이 위치하고 있어 온통 향기로 가득했다.


오래된 역사가 묻어나오는 어두운 골목길에서 향긋한 향이 풍겨나오는 경험은 정말 색달랐다.

어두운 골목에 대한 편견을 깨 주는 새로운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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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마다 저마다의 향이 있다.


향수를 뿌리지 않아도 내가 좋아하는 사람에게선 좋은 향기가 나고

아무리 좋은 향수를 뿌려도 내가 싫어하는 사람에게선 그 향이 느껴지지 않는 법이다.


향보다 더 중요한 것이 사람 그 자체인 것은 분명하지만,

때론 향수의 좋은 향이 나의 못난 부분을 감춰주길 기대하고 지내는 것 같기도 하다.

처음 만난 누군가가 나에게 좋은 향이 난다고 말해 주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은 것을 보면 말이다.




몇 년간 같은 향수를 바꾸지 않고 사용했던 적이 있었다.

어느 순간부터 향으로 나를 기억해 주는 사람이 생겼고, 그 향으로 평가받는 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내가 너무 좋아하던 향으로 나를 기억해 준다는 것이 처음엔 반갑고 좋았지만,

그런 말을 해 준 사람을 만날 때는 향에 더 신경 쓰게 됨이 느껴졌다.



누군가에게 향으로 기억된다는 것, 분명 어릴 땐 꿈꿔왔던 일이었지만

문득 온전히 나의 것이 아닌 모습이 상대방에게 남게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다음부터였던 것 같다. 여러 개의 향수를 그날그날 맞춰 사용하게 된 것이.






어떤 모습으로 기억되고 싶은가?



물론 사람은 저마다 다 다르기에 상대방이 기억하고자 하는 대로 남게 되겠지만,

나 자신의 노력이 그 기억에 조금의 영향이라도 끼칠 수 있다면,

다른 누군가에게도 날 수 있는 그런 흔해빠진 향기가 아닌

나만의 특별함으로 오래오래 기억될 수 있는 노력을 해야겠다 생각했다.



좋은 향기로 나를 기억할 수 있도록.

좋은 사람에게서만 느껴지는 좋은 향을 내게서 찾을 수 있도록.



향기보다 더 좋은 사람으로 기억될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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