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앙마이, 태국
늦은 가을 혹은 이른 겨울, 어디론가 여행을 다녀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따뜻한 남쪽나라 태국, 치앙마이로의 여행을 순식간에 결정했다.
물론 결정장애가 있는 내가 단 한순간도 흔들리지 않고 비행기 티켓을 사게 된 것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그 사람. 너무 보고 싶던 그 한 사람 때문에.
여행 중에 우연히 만나 운명처럼 사랑에 빠졌지만 두고 왔던 나의 삶을 포기하지 못해 놓아 버렸던 사람.
그때는 이렇게도 사랑할 수 있구나 싶을 정도로 그에게 푹 빠져 있었다.
함께 있던 모든 시간이 너무 소중했던, 그 존재 자체에 너무도 감사했던 그 사람을 치앙마이에서 다시 만나기로 했던 것이다.
3년 만의 재회, 다시 만났을 때 무슨 일이 일어나게 될지 두려웠지만 나는 그를 꼭 다시 만나야만 했다. 아니 꼭 다시 만나고 싶었다.
풀지 못한 숙제처럼 남아있는 그를 반드시 풀어내야만 다시 행복해질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낯선 공항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던, 너무도 보고 싶었던 그와 재회했다.
3년의 시간이 만들어 놓은 낯섦 앞에서 우리는 그저 서로를 향해 미소를 짓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안녕."
"안녕."
"잘 지냈어?"
"응"
"한번 안아보자."
그의 품은 여전히 넓었고 또 따뜻했다.
그렇게 그를 다시 만나게 되었다.
치앙마이는 굉장히 매력적인 도시였다.
번화한 듯하면서 소박했고, 소란스러운 듯하면서 차분했고, 새로운 듯하면서 익숙했다.
태국의 북쪽에 위치하고 있는 이 도시는 뜨겁지도 않았고 또 습하지도 않았다.
태국이 정말 놀라운 점 중의 하나는 여행객이 정말 많다는 것인데, 이 곳 치앙마이도 예외는 아니었다.
하지만 모든 여행객에게 친절했고, 관대했고, 또 따뜻했다.
태국 사람들의 온화한 미소와 다정한 인사는 여행객들의 마음을 한결 편안하게 만들어 주는 것 같다.
씨끌벅적하고 소란스럽지만 즐거움이 가득한 태국의 야시장에서 우린 오랜만에 마주 보고 앉았다.
"그동안 어떻게 지냈어? "
예의로 묻긴 했지만 이미 우린 서로의 근황을 다 알고 있었다.
지금의 그에게는 미래를 약속한 약혼녀가 있었고,
나는 여전히 혼자였기에 우리의 재회는 공평하지 않았다.
그에게도 나에게도 공평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괜찮았다.
무엇을 바꾸고자 했던 것은 아니었으니까. 그저 다시 한번 만나보고 싶을 뿐이었다.
그도 나도 지금 서로가 살아내고 있는 현실을 바꿀 마음이 조금도 없었다.
그리고 서로의 현실에 속하고 싶은 마음도 전혀 없었다.
그저 서로의 선택을, 서로의 지금을 존중해주고 받아들여 줄 뿐이다.
함께였던 짧은 시간보다 너무 길었던 떨어져 있던 그 시간 동안 우리는 슬펐고 괴로웠고 또 외로웠다.
그 끝에서 간신이 되찾은 평화는 깊은 시간이 만들어 놓은 것이라 쉽게 바뀌지도 않을 것이었다.
우리가 각자로 살아온 그 시간을 부정할 순 없으니 말이다.
그도 나도 잘 알고 있었다.
그때 하지 못했던 선택은 지금도 할 수 없다는 것을.
우리가 함께인 미래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11월의 치앙마이는 러이 끄라통(Loi Krathong) 축제가 한창이다.
매년 11월 중순, 왕과 강의 여신을 기리기 위해 보름달이 휘영청 뜬 밤에 열리는 태국에서 가장 낭만적이고 아름다운 축제.
사방에서 피어오르는 랜턴이 하늘에 은하수를 만든다.
저 멀리 올라간 랜턴 하나하나마다 서로 다른 소원들이 담겨있다. 소원을 한가득 담은 연등이 까만 하늘에 밝고 아름다운 별이 되어 떠다닌다.
연등을 하나 날렸다.
예전의 우리를 한가득 담아
앞으로의 우리를 위하는 마음으로.
이젠 예전의 너를 보내고
다시 새로운 누군가를 기다리겠노라고,
그렇게 하늘 위로 내 소원을 실어 보내본다.
11월의 아름다운 치앙마이의 밤하늘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