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초 , 대한민국
갑자기 성큼 가을이 온 듯 하늘이 푸르고 공기가 선선하다.
내 마음과 정확히 반대되는 날씨가 너무 갑자기 찾아왔고, 나는 공황장애가 온 것처럼 무엇을 해야 할지 아무것도 생각해낼 수 없었다.
가만히 있긴 너무 싫어 무작정 집을 나왔다.
나와서 걷다 보니 바다가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 오늘 같은 날씨와 오늘 같은 기분에는 꼭 그 바다를 가야겠다는 생각만이 들어 주저 없이 버스 터미널로 향했다. 꼭 그 바다여야 했다. 다른 바다는 전혀 가고 싶지 않았다.
"한시 오십 분 속초 한 장이요. "
"매진입니다. "
..
이런... 차표가 없는 것은 내 예상에 없었다.
강릉으로 가서 돌아가야 할까 아니면 한 시간 반을 기다려서 다음 차를 탈까 고민을 했지만 그 어떤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나는 꼭 이십 분 뒤의 이 차를 타고 오늘 그 바다를 다시 보고 싶었다.
다음 시간 차표를 끊어 들고 한시 오십 분 버스를 찾아갔다. 무작정 태워줄 수 없느냐 물어보았다.
"허허. 기다려보세요. 남는 자리가 생기면 태워줄게요. "
그리고 정말 다행히도 나를 위한 딱 한 자리가 남았다.
그 바다로 가는 토요일 낮의 버스는 정말 지독히도 막혔다.
여름의 끝자락, 마지막 휴가는 아직도 끝나지 않았나 보다.
내겐 첫 휴가인 8월의 마지막 주인데.
혼자가 되어 맞는 첫 주말, 슬프게도 날씨가 너무 좋다.
끝없이 뜨거울 것만 같았던 여름이었는데 너무 금세 시원해져 버려 다소 당황스럽다.
너를 피해 찾아든 그늘이 너무 춥다.
나의 하늘이 이토록 맑은 것처럼 지금 너의 하늘도 눈부시게 맑겠지.
마음을 더 시리게 만드는 푸른 하늘이다.
왜 이 바다여야 했을까?
문득 생각났다.
봄이 시작되던 푸르게 시리던 어느 날 혼자 찾았던 이 바다를 온통 너로 채웠던 그 밤이.
또 생각났다.
서늘한 가을의 중간에 너와 함께 찾은 이 바다에서 우리가 함께 그렸던 달콤한 미래가.
두 번을 찾았고 두 번 모두 어떤 형태로든 네가 함께 있었던 바다였다.
그래서였나 보다. 다시 혼자 찾아야 하는 바다가 당연히 이 바다여야 했던 것은.
그리고 이번의 바다에서도 네가 함께 하게 될 것 같다.
가는 내내 내 머릿속에 너밖에 없는 것을 보면 말이다.
2016년의 여름은 정말 지독 시리 뜨거웠다.
모든 것이 녹아내릴 듯 뜨거웠고, 그 뜨거움을 이겨내지 못한 듯 수많은 것들이 사라져 갔다.
사라져 가는 그 모든 것들을 붙잡을 힘이 없었다.
붙잡을 수 있는 것과 그럴 수 없는 것들 모두를 나는 놓아버렸다.
너무 뜨거워서 그랬던 것 같다. 더위에 지치고 세상에 지친 나는 그저 가만히 앉아 위로를 받고 싶었다.
하지만 그 위로 속에 네가 없었다. 그리고 슬프게도 놓아버리고 싶던 그 많은 것들 중에 네가 있었다.
우리가 함께 만들어왔던 시간들을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만들기엔 이해할 수 없는 기준과 이유일 뿐임을 잘 안다. 하지만 너무도 뜨거워진 내게 너의 존재는 위로가 되질 못했다.
뜨거운 내게 너는 나를 더 뜨겁게 만드는 태양이었다.
버텨내기가 힘들었다. 너무 뜨거운 그 모든 것들이.
너의 뜨거움에 나는 조금씩 사라져 가는 것 같았다.
너무도 뜨거웠던 너라는 태양은 지금의 나에겐 너무 버거웠다.
더 버티지 못해 그늘로 숨어들었다.
그렇게 나는 너를 놓아버렸다.
어렵다면 어렵고 쉽다면 쉬운 선택이었을 테지만, 혼자 버텨내야 하는 얼마간의 시간이 지옥처럼 괴로울 것은 뻔했다. 지옥을 예상했던 나와 예상하지 못했던 너에겐 분명 다른 시간이 되겠지만.
이번 여름이 이토록 뜨겁지 않았다면 우린 괜찮았을까?
지금 너는 무엇을 하고 있을까?
아무것도 알 수 없다.
님이라는 글자에 마침표를 찍어 남이 되었더니 당연히 알고 지내던 수많은 것들을 아무것도 알 수 없게 되었다.
다시 혼자가 익숙해져야 할 시간이다.
오늘도 이렇게 너로 채운 이 바다가 너와 함께하는 마지막 바다가 되겠지.
또다시 이 바다를 찾게 되겠지만 그땐 어떨지 모르겠다.
여름의 끝자락에 찾은 이 바다에서 시리게 너를 떠올린 오늘과 같은 바다는 다신 없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