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18,19(39). Santiago
그와 함께 눈 뜨는 마지막 아침이다. 마지막이라는 단어 자체를 의식적으로 머리가 밀어내고 있는 것 같다. 여느 때처럼 씻고 준비하고 간단히 아침을 먹었다.
그리고 배낭을 다시 둘러매고, 산티아고 행 버스에 올라탔다.
처음엔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던 피스테레의 작은 항구가 이젠 제법 괜찮게 느껴진다. 누군가에는 평범하고 소박한 일상일 공간들. 우리가 향했던 길의 끝이 거창하지 않은 것이 지금은 어쩐지 더 고맙게 느껴진다.
그랬다. 우리는 오늘 산티아고로 돌아가야만 했다.
그리고 아틸라는 오늘 헝가리로 떠나는 비행기를 탈 것이다. 산티아고로 돌아가는 버스는 구불구불한 길을 오래오래 달렸고, 포장되지 않은 길을 이리 들썩 저리 들썩 거리며 요란스럽게 지나가고 있었다.
쉼 없이 흔들리는 와중에도 나는 그의 손을 꼭 잡고 한 순간도 놓지 않았다.
아직 실감 나지 않는다.
그와 함께인 아직은 그를 다신 볼 수 없다는 것을 상상할 수 없다.
오래간만에 장거리 버스여행으로 속과 머릿속은 엉망진창이 되고 말았다. 5분만 더 탔다간 진짜 멀미를 할 것만 같았던 순간, 우리는 다시 산티아고에 도착해 있었다.
익숙해진 길을 따라 시내로 향했다. 오늘 하루 산티아고에 더 머물러야 했던 나를 위해 조용한 방을 찾았다. 오늘만큼은 시끌벅적한 알베르게에서 혼자 남겨져 있고 싶진 않았다. 방에 짐을 풀고, 아래에서 기다리던 그에게 내려갔다.
한 시간 여가 지나고 나면 그는 공항으로 가는 버스를 타야 했다. 아무렇지 않아 보이는 아틸라, 그리고 아마 아무렇지 않아 보이는 나를 그는 바라보고 있었을 것이다.
낯익은 얼굴이 간간히 나타났다. 모두 반갑게 인사를 했고 잠시 후 떠난다는 그에게 작별인사를 했다. 서로의 행복을 빌어주고 돌아서서 각자 갈 길을 간다.
다시는 못 볼 확률이 만날 확률보다 터무니없이 높은 인연. 우리의 인연도 그러하리라.
함께 앉아 음악을 듣던 산티아고 대성당 뒷 광장으로 향했다. 거리의 악사는 오늘도 같은 노래를 연주하고 있었다. 마이콜 같이 생긴 마스크를 쓴 익살스러운 그의 모습도, 오늘은 어쩐지 쓸쓸해 보인다.
둘 다 말이 없었다. 그저 간간히 시계만 바라 볼뿐이다.
그가 돌아가서의 계획에 대해 이야기한다. 바르셀로나에서 부다페스트행 비행기로 갈아타고, 부다페스트에 있는 친구 집에서 며칠 묵을 예정이라고 한다. 그곳에서 잠시 친구들과의 회포를 풀고 그가 사는 마을로 돌아간 다음 시간을 보낼 것이라고 했다.
"넌 어떻게 할 거야? "
글쎄. 아직 아무것도 알 수 없다.
나는 정말로 아무런 계획이 없었다. 막연히 포르투갈로 가야겠다 생각하고 있었지만 사실 새로운 여행을 준비할 기력이 남아있지 않았던 것 같다.
"글쎄, 여기에 며칠 더 머무를 수도 있고, 내일 포르투로 떠날 수도 있고. 아직 잘 모르겠어."
지금은 그런 것들을 생각할 수 없었다. 어떻게든 되겠지..라고 그저 생각할 뿐이었다. 한 달이나 남은 나의 계획 없는 시간도 불안했지만, 그런 답도 없는 일들을 걱정하느라 그와 함께인 지금을 허비하고 싶지 않았다.
버스터미널로 걸어갔다. 가는 길에 있는 큰 슈퍼마켓에서 공항에서 대기하는 동안 그가 먹을 간단한 음식을 샀다. '우리'를 위한 음식이 아닌 '그'만을 위한 음식이었다. 늘 함께 나누던 것들의 반만 사서 들고 나오는 마음이 너무 아프다.
버스 시간이 조금 더 남았다. 우리는 교차로 끄트머리에 있던 벤치에 나란히 앉았다. 까맣게 먼지가 낀 삼층짜리 건물과 커다란 타워크레인이 우리가 함께 본 마지막 광경이다.
"우리가 함께 마지막으로 보는 모습이 공사장이네."
"그러게. 재밌네 그래도. 뭐 좋은 건 이미 많이 봤잖아? "
"그래도 너무 삭막해 보인다. 안 그래?"
"뭐, 난 괜찮아."
아무것도 특별할 것이 없는 모습. 흔해빠진 만남과 이별. 둘 다 이별 앞에 유난을 떨진 않았다. 난 정말로 그러고 싶지 않았던 마음이었고 그 역시 그랬던 것 같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앉아 있어도 너무 빨리 흐르는 시간이 야속했지만 그래도 어쩔 수 없음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려 애쓰고 있었다. 어떤 말도 어떤 행동도 할 수 없었다. 시간은 흐르고 그는 떠날 것이다.
버스가 올 시간이 되어 가는지 사람들이 하나 둘 정류장으로 모이고 있다. 우리도 자리에서 일어나 움직여 본다. 절대 울지 않으리라 다짐했었다. 이를 악 물고 다짐하고 또 다짐해본다. 절대 울지 않을 것이다.
버스가 도착했다. 사람들이 하나 둘 버스에 타기 시작한다.
이제 정말 헤어질 시간이었다. 그렇게 이를 악 물고 참았건만, 차오르는 눈물을 막을 수 없었다. 바보같이 울고야 만다. 아직 출발할 시간이 남았다며 아틸라는 계속 내 곁에 있었다.
"울지 마. 네가 울면 내가 갈 수가 없잖아."
"미안, 나도 안 울려고 했는데.. "
그에게 웃어주려 했다. 울다가 웃는 내 꼴이 우스웠을 것 같다. 어제 그에게 써 둔 엽서를 건넸다. 나중에 혼자 있을 때 보라고 얘기하며 그를 버스로 떠밀었다.
"얼른 타. 나 너 떠나는 거 못 보겠어, 계속 눈물이 날 것 같아. 나 돌아갈래."
"응. 그래. 갈게. 안녕. 잘 지내."
"안녕."
..
Adios..
그는 버스에 올라탔고, 버스에 탄 그가 자리에 앉기도 전에 나는 정류장을 돌아 나왔다. 돌아보지 않았다. 다시 만나지 못할 인연일 텐데 돌아봐서 뭐하겠는가. 그렇게 짧게 이별했다. 떠나는 그의 뒷모습을 보며 손을 흔들어 주거나 하는 짓 따위는 하지 않은 채.
사실 바보처럼 펑펑 흐르는 내 눈물을 들킬까 봐 돌아볼 수 없었다. 그가 날 볼 수 없게 첫 번째 골목으로 바로 들어가 버렸다. 버스가 보이지 않을 만큼 걷고 나서야 나는 뒤를 돌아볼 수 있었다.
버스도, 그도 거기엔 없었다. 당연하지.
바보 같았다. 또다시 차오르는 눈물을 꾹꾹 닦아내고 다시 길을 걸었다. 눈물은 마르지 않는 샘처럼 닦아내도 닦아내도 자꾸만 차올랐다. 머릿속은 아무런 생각도 없이 하얗게 비워져 있는데도 눈물이 자꾸만 자꾸만 샘솟아 올라왔다. 슬픈가 보다. 내가 생각보다 더 많이 슬픈가 보다 라고 생각했다.
한참 뒤에 들은 이야기지만 버스에 앉아 엽서를 읽고 그도 한참을 울었다고 했다. 그에게도 나에게도 온통 눈물로 얼룩 진 이별이었다.
다시 만날 수 있으리라는 기약이 없었다. 우리는 그런 불확실한 기약이 서로를 더 괴롭게 할 것이라는 걸 알았기에 떠나가는 인연을 애써 붙잡으려 하지 않았다.
그저 우리는 서로에게 너무도 달콤했던 한여름 밤의 꿈이고, 카미노의 여정에 포함되어 있는 한 장의 아름다운 추억일 뿐이었다. 그 모든 것들을 가슴에 묻어둔 채 우린 각자의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이런 상황이 싫어 그토록 조심했거늘, 결국 운명은 우릴 만나게 했고 사랑하게 했으며 이별하게 했다. 내가 선택한 고통이기에 불만은 없다. 마음이 너무 아팠지만, 그래도 더 많은 것에 감사했다.
세상에 존재하는지 알 지도 못했던 누군가를 만나고 또 이토록 깊게 교감을 할 수 있었던 것만으로도 너무 큰 선물이었고, 지구 반대편 어딘가에 나의 모든 것을 온전히 이해하는 한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할 일이었다. 그의 모든 것에, 그를 만나게 하고 인연이 되게 한 모든 것에 감사하다.
혼자 산티아고 거리를 정처 없이 걸었다. 그와 함께 걷던 길을 혼자 걸어야만 했다. 누군가 아는 사람을 마주칠까 두려웠다. 혼자 남겨진 나를, 울어서 토끼처럼 눈이 빨개진 나를 아무에게도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건물 사이로 해가 지고 있다. 나의 한여름 밤의 꿈도 함께 지고 있다.
혼자 떠나고 있을 아틸라 생각도 나고, 앞으로 남겨진 나의 시간들도 생각난다.
이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여기에 하루 더 머물면서 생각을 해볼까 했지만 그가 없는 산티아고는 빨리 떠나고 싶었다. 혼자 그를 떠올리며 함께 했던 거리를 돌아다니는 것도 싫고, 누군가 우리를 아는 사람을 만나 그의 얘기를 해주기도 싫었다. 그런 생각을 계속하다 보니 기분이 계속 울적했다. 한숨만 나온다. 나는 이제 어떡하지?
그때, 부드러운 바이올린의 선율이 어디선가 들려왔다. 내가 걷고 있던 그 길의 중간에서 오케스트라 공연이 펼쳐지고 있었다. 부드러운 현악기의 아름다운 선율이 내 마음을 다독여 준다. 괜찮아, 괜찮아 라고 나를 안아주는 듯하다. 거짓말처럼 내 마음에 한줄기 기쁨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우울해하는 나에게 누군가가 준 선물인 것만 같았다. 정말 고마운 길이다. 이젠 제법 멈춘 눈물도 바람에 마저 말리고, 다시 힘을 내서 숙소를 향해 걸었다.
숙소로 돌아가 메일함을 확인했다. 루이스로부터 온 메일이 반짝이고 있었다. 그의 메일은 언제나 내 마음을 모두 다 알고 있다는 듯 날 위로하고 있었다. 그는 언제나 내가 보호받고 있다는 기분이 들게 해 주고, 평화로움을 느끼게 해 준다.
이 길 위에서 찾은 가장 소중한 두 가지가 바로 평화와 사랑이라 생각했다.
길 위의 십자가에 쓰인 PEACE&LOVE, 루이스는 내게 평화였고 아틸라는 사랑이었다.
평화가 있는 곳에는 사랑이 있다.
사랑이 있는 곳에는 평화가 있다.
지금 내게는 평화와 사랑이 함께 존재하고 있다.
이 평화와 사랑을 나는 평생 기억하며 살아가게 될 것이다. 아니, 그러지 않을 수가 없을 것 같다. 평화와 사랑이 내 삶의 큰 이유가 되리라.
내일 나는 포르투로 가게 될 것 같다. 그 이상의 여정은 아직 알 수가 없다. 그저 내일 해야 할 일만 오늘 결정하는 것, 이 길에서 배운 첫 번째 규칙이니까.
나는 아직도 길 위에 있고, 내일도 그러할 것이다.
[day 19. porto]
포르투로 가는 버스는 오전 9시에 한 대가 있었다. 그 버스를 타기 위해 아침부터 조금 서둘러본다.
산티아고 성당을 마지막으로 한번 더 볼까 하다가 관두기로 했다. 아는 사람을 마주치고 싶지도 않았고, 혼자 남겨진 산티아고는 어쩐지 쓸쓸하게 느껴질 뿐이었다.
버스 터미널로 찾아가 포르투행 버스를 타는 플랫폼에 서서 기다린다.
어디론가 떠다는 사람들 틈에 우두커니 앉아 있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날 지켜주는 가방의 조가비는 떼어 내지 않았다. 그냥 쭉 달고 다닐 예정이다.
포르투행 버스가 도착했고 다들 부산스럽게 버스에 오른다. 들떠 보이는 사람도 있고 피곤해 보이는 사람도 있다. 난 잘 모르겠다. 다시 관광객이 되었지만 마음은 여전히 순례자이다.
오른쪽 창가에 자리를 잡고 앉아 창 밖을 바라본다.
안녕 산티아고. 언젠가는 다시 올게. 또 만나자.
버스는 도시를 돌아 나가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시내를 한번 더 보고 싶었지만 아쉽게도 그 길로 가지 않았다.
둥근 커브길을 돌았다. 오른편 창밖으로 산티아고 집들의 붉은 지붕이 보인다. 그때 정말 너무도 강렬한 데자뷔의 느낌이 나를 사로잡았다. 분명히 어디서 본 장면이다!
올해 초에 꿨던 꿈이 떠올랐다. 나는 어딘가를 떠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떠나는 버스에서 정말 극도의 슬픔을 느끼며 엉엉 울고 있었고, 꿈에서 깨어서도 한참을 울었었다.
그 꿈의 마지막 장면과 똑같았다. 그 꿈처럼 강렬한 슬픔이 오진 않았다. 하지만 내가 몹시 슬퍼했던 그 기억은 너무도 생생히 떠올라 마치 슬퍼해야만 할 것 같았다. 정말 신기한 일이다.
데자부, 살면서 무수히 많은 데자부를 겪긴 했지만 이처럼 강렬하고 생생한 적은 처음이다.
그것도 내 생전 한 번도 와 본 적이 없는 곳에서 겪는 낯선 데자부는 너무도 강렬했다.
아직도 생생하게 떠오르는 설명할 수 없는 그 슬픔은 무엇일까?
그 꿈에서 왜 나는 그토록 슬퍼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었던 것일까?
세상은 설명할 수 없는 것들 투성이다. 하지만 확실한 건, 나는 이 길을 왔었어야만 했었구나 하는 사실이다. 내가 이 길을 선택한 것이 아니고, 이 길이 나를 부른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이유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나는 이 시기에 이 길을 걸어야만 하는 운명이었으리라 생각했다.
베토벤 교향곡 7번을 들으며 창밖을 바라본다. 베토벤을 가져오길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음악은 슬픈 내 마음에 큰 위로가 되어주었다. 7번 2악장, 이미 충분히 유명한 그 곡은 들을수록 슬펐고 따뜻했다. 음악은 계속 반복되고, 창밖의 풍경들도 아무렇지 않은 듯 계속 지나간다.
[ beethoven sympony 7. allegretto. ]
시간이 멈춘 것이 아닐까? 그저 흐르는 것은 음악과 창밖의 풍경뿐이다.
그렇게 나는 버스 안에서 가만히, 그저 가만히 앉아 있었다.
안녕 산티아고.
안녕 내 사랑.
언젠가 또 만날 수 있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