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을 이루어 가는 과정
3년 전, 친언니가 결혼을 했다. 거의 평생을 나와 함께 살아오던 언니가 다른 집에서 다른 사람과 새로운 가정을 꾸렸을 때, 신기하기도 했고 낯설기도 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갈수록 평생을 함께 산 내가 언니에게서 조금씩 멀어져 감이, 그리고 함께 한 지 얼마 되지 않은 형부가 언니에게 더 이상 가까워질 수 없을 만큼 딱 붙어 있게 되어간다는 것이 느껴졌다.
신기했다. 타인과 저 토록 가까워질 수 있음이.
그리고 낯설었다.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피로 연결되어 있던 우리가 서로에게 이토록 새로워져 감이.
언니에게 형부가 동생인 나보다 편하다는 것이 어쩐지 나는 믿기지가 않았고, 출산과 육아의 과정을 거치는 언니는 보면서 '여자로서' 불편한 점은 형부보다 내가 먼저 챙겨 도와주려 애썼다.
막연히 '남자인 형부보단 내가 편하겠지. '라는 마음에서 그랬던 것 같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나 역시 결혼을 했다. 그리고 조금씩 언니의 지난 시간들이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왜 그토록 형부를 찾았는지, 여자로서 숨기고 싶을 것 같은 부분들도 나보다 형부에게 먼저 부탁을 했던 건지. 언니에겐 형부가 나보다 훨씬 편하고 가까운 존재라는 것을 이제야 알게 된 것이다.
남자와 여자가 만나 한 가정을 이룬다는 것.
두 명의 완전히 다른 사람이 만나 매일매일 함께 눈을 감고 함께 눈을 뜨는 일상이 반복된다는 것.
이 경험은 내가 상상해왔고 기대해왔던 모습과는 사뭇 달랐다.
처음에는 이 사람과 평생을 함께 해야 하나, 올바른 선택을 한 것인가 하는 마음에 시도 때도 없이 의심하고 불안해하곤 했던 것 같다.
상대방이 조금만 나를 실망시키면 '평생을 어떻게 견디나.' 하는 마음에 쉽게 좌절했고, 상대방에게 내 시간과 노력을 조금이라도 양보해야 했을 땐, '이렇게 내 인생은 사라지는 건가.' 하는 마음에 쉽게 우울감에 빠지곤 했다.
결혼을 먼저 한 선배들이 입버릇처럼 얘기하는 '상대방 덕을 보려고 하지 마라. 아무것도 기대하지 마라.'라는 조언은 남의 것인 양 멀게만 느껴졌고, 나 역시 상대방의 덕을 보려는 마음의 덫에 빠져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내 삶에 누군가가 들어온 자리만큼 내 자리를 내줘야 한다는 것을 처음엔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저 내가 가지지 못했던 것들을 더 많이 내 것으로 만들고 싶은 욕심만 가지고 내 자리는 비워주지 않은 채 어린아이처럼 받기만을 요구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시간은 조금씩 흘러갔고, 거칠거칠하던 우리의 두 표면은 서로에게 닳아 조금씩 매끈해져 가는 듯했다.
몇 시간쯤 연락이 닿지 않아도 괜찮아졌고, 상처가 되던 농담들에도 상처받지 않게 되었다.
처음보다 많이 무뎌졌고 처음보다 적게 기대하게 되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나의 뱃속에는 우리의 2세가 자라게 되었다. 새롭게 나타난 엄마라는 타이틀은 또 다른 부담감으로 다가왔다.
여자만 희생해야 한다는 이 사회의 고질적인 문제-혹은 나의 피해의식으로 말미암은 불만이 그대로 남편에게 전달되었고, 그는 그대로 아빠와 가장이라는 책임감에 따르는 무게로 나에게 예민해져 갔다.
달콤하게 속삭이던 사랑의 언어는 실종되었고, 현실을 더 잘 살아내기 위한 타협이 그 자리를 꿰차고 들어왔다. 그맘때쯤엔 늘 이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이러려고 결혼한 건 아닌데. '
'이래도 괜찮은 걸까?'
이젠 쉽게 바꿀 수도 없는 현실 앞에서 막연한 불평불만이 쌓여가던 시간들. 다른 선택을 했다고 해서 달라지진 않았을 것임을 잘 알고 있었지만 무엇을 향하는 것인지 모를 두려움과 아쉬움이 뭉게구름처럼 자꾸만 피어올라왔다.
결혼에 대한 기대가 너무 컸던 걸까?
이상과 너무도 달랐던 현실의 결혼은 꿈만 꾸던 이상주의자에게는 쉽게 받아들여지지 못했다. 지극히 현실적이던 남편에게도 꿈만 꾸는 아내가 당혹스럽기는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임신으로 인한 호르몬 변화 때문에 생기는 감정 기복이라 애써 생각하며 서로 조금씩 양보하고 배려하고 맞춰가며 그런 시간들을 참아내었다.
그렇게 시간은 흘렀고 모든 것들은 지나갔다.
this too, shall pass away.
이 또한 지나가리라.
시간은 흘러 나는 출산을 했고, 둘이던 우리는 셋이 되었다.
새로운 행복과 낯선 책임감이 몰려왔다.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우리가 함께 지켜내야 할 이 작고 연약한 존재 앞에서 '너와 나'로써의 우리는 한걸음 뒤로 물러나고 '함께'로써의 우리가 한 발짝 앞으로 나섰다.
우리는 출산이라는 고통스러운 시간을 함께 견뎌냈다. 부러질 것 같은 작은 몸뚱이를 함께 받쳐 들었으며, 허약해진 나의 몸을 회복시키려 함께 노력했다.
결코 보여주지 못할 것만 같았던 나의 아주 개인적인 부분들을 남편에게 보여줘야만 했고, 그는 기꺼이 모든 것을 받아들여 주었으며, 나는 모든 것을 내려놓은 채 온전히 그에게 의지했다.
그렇게 그는 나의 일부가 되었고, 나 역시 그의 일부가 되었다.
그 모든 시간들에는 아주 약간의 이기심도 존재하지 않았다. 너와 내가 함께 만들어 낸 작디작은 생명 앞에서 희생과 양보, 그리고 배려와 감사만 존재했고, 그 순간들은 현실의 것이 아닌 듯 아름다웠다.
병실 소파에서 쪽잠을 자고 있는 남편을 보니 그저 미소가 피어올랐다. 내 뒤를 항상 이렇게 지켜줄 것이라는 믿음에 온 마음이 든든했다.
작은 아기를 안고 어쩔 줄 몰라하는 모습이 너무 사랑스러워 그를 안아주고 싶었다. 그에게도 처음일 이 모든 경험들 앞에서 한없이 행복해 보이는 그의 모습에 온 마음이 따뜻해졌다.
그렇게 잠시 권태에 빠졌던 사랑이 새로운 가족의 탄생과 함께 다시금 피어올랐다.
이제야 비로소 나는 남편을 내 사람으로, 나의 지난 가족보다 더 가까운 나의 새로운 가족으로 받아들이게 되었음을 문득 깨달았다.
그리고 언니가 먼저 밟았던 가족이 되어가는 과정을, 그리고 내 부모님이 만들어왔던 가족이라는 길을 이제야 이해했다. 언니가 곁에 있었다면 느끼지 못했을 감정들. 엄마에게 외할머니가 왜 나보다 먼 존재 같았는지에 대한 이해가 비로소 마음으로 느껴졌다. 그동안 예전 가족의 구성원으로만 살아왔던 나는 정말 몰랐던 것이다. 지금의 가족이 '내 가족'이 된다는 것을. 그리고 지금 나는 온전한 '내 가족'을 이루게 되었다.
그렇게 지난 삶의 대부분의 시간을 한 가족으로 살아왔던 우리는 각자의 새로운 가정을 꾸린 채 그 속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가게 되는 것이었다.
이제 우리는 세 가족이 되었다. 너와 나, 남자와 여자로만 존재하던 시간들이 새로운 생명과 함께 우리로 합쳐졌다. 그렇게 하나의 가정을 이루게 되었다.
너와 나, 남과 여, 그리고 아빠와 엄마로서 살아가야 할 앞으로의 나날들이 아름답고 쉽지만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새로운 가정을 이룬 지금의 행복했던 과정을 오래오래 기억에 남겨두고 싶다. 함께 더 행복할 우리의 미래를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