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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니 Feb 19. 2018

커버되지 않는 것들

비루한 소시오패스 두 사람




결혼을 하고 나면 나 자신을 더이상 포장할 수 없어진다. 코딱지 하나, 발가락의 때 하나 까지 다 내놓을 수 밖에 없는 24시간 밀착 관계가 형성되면서 감추고 숨기던 예전의 나는 다시 나타날 수가 없다. 어쩌다 한번 단장이라도 하면


“아니 오늘은 왜 다른사람이야?”



라는 소리를 듣기 십상이다. 여자들의 가장 흔한 멘트 중 하나인



“비비크림만 발랐을 뿐인데..?”



는 비비크림의 대단한 위용을 드러나게 하는 우스갯소리 쯤으로 넘겨지고 만다. 뭔가 민망하고 자존심 상하는 순간이었지만 이 또한 반복되다보니 같이 낄낄대고 웃어 넘기고 만다. 그렇게 나는 포장되고 커버된 모습이 아닌 나 그대로의 모습으로 적나라하게 노출되고 마는 것이다.


비비크림따위는 우스갯소리여도 좋다. 하지만 그 외에도 속속들이 드러나는, 나 조차도 제대로 모르고 있었던 나의 모습들이 하나씩 나타날때마다 깜짝 놀라기도 하고 메가톤급 멘붕에 빠지기도 한다.


자면서 코를 곤다거나 매일매일 고기를 먹고싶어 하는 모습 같은 것은(나는 내가 고기를 별로 안좋아하는 줄 알았었다.) 그저 애교에 불과하다.


대북정책이나 비트코인 등 같은 그저 개인의 성향차이로 치부할 수 있을 사소한 문제들로도 쉽게 감정이 상하게 되고, 사회적 역할과 성역할에 대한 결코 타협되지 않는 견해차이에 맞닥들이게 되면 내 자존감은 부들부들 떨리는 분노상태를 맞이하고야 만다.


어떻게 직장생활을 하는 것이 잘하는 것인가? 혹은 남자와 여자의 존재과 입장차이에 대한 문제는 늘 전투모드로 우리를 돌변하게 하는 단골 주제이다.


서로의 경험이 바탕이 되었을 그 굉장히 주관적이면서 예민한 문제들 앞에서 남편과 내가 얼마나 다른 사람인지, 그리고 그 다름에 대처하는 나의 태도가 얼마나 미성숙한지 여실히 깨닫게 된다.


이건 상대방의 성향에 따라 달라지는 건지도 모르겠지만 소크라테스급 문답법을 답습하듯 매사에 깊게 파고드는 남편과 대화를 하다보면 결국에 화를 내며 비이성적인 상태로 대화를 종료하게 되는 나를 발견하게 되기 일쑤이다.


“집어쳐!” “그래 오빠가 잘났네!” “잘먹고 잘살아라” 등의 유치하고도 비이성적인 종료 말이다.


이런 상황이 되면, 평소에 이성으로 겹겹이 쌓여있던 방위선이 점령되고 그 밑바닥까지 치게 되는 감정의 소용돌이가 몰아치고, 그 속에서 굳건하던 나의 멘탈은 가루가 되어 흩날린다.


‘너 자신을 알라’ 라고 했던가. 나 자신을 알아가는 과정은 이렇게 충격적일 줄이야. 나 인줄 알았던 모습들이 사실 그럴듯하게 꾸며졌던 나 였음을 인정하고 비루한 본 모습을 시인해야만 하는 수없이 많은 순간들이 높디 높았던 내 자존감의 벽에 조금씩 균열을 만들어낸다. 하아....




‘남들이야 그렇든 말든 난 이렇게 할거야.’


‘이게 내 스타일이니까 괜찮아.’


나만 알고 있던 자기 합리화로 스스로를 보호하며 만들어 놓은 보호막의 겹이 얼마나 많았는지를 깨닫게 되는 순간 맨 몸으로 거리에 내쫒긴듯한 아찔함이 느껴진다. 그렇게 힘들게 만들어 놓은 보호막들이 한꺼풀 한꺼풀 파괴된다.


자존감이 바로 이런 것이구나 그리고 내 자존감이 흔들리는 구나 하는 느낌이 절로 드는 순간들이다.




사소한 말 한마디에도 수없이 흔들리는 나와 독기품고 퍼붓는 유치한 독설에도 전혀 흔들리지 않고 굳건한 남편을 보며 자존감의 싸움에서 내가 지고 말았음을 시인할 수 밖에 없게 된다. 그는 자존감 따위 알지도 못하고 그저 고집만 센 소시오패스라 치부하며 나 자신을 위로해보지만 내가 지고 말았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아서 마음이 쉬이 좋아지지 않는다.


양보 혹은 배려라는 이름의 우월감을 바탕에 둔 오만한 위로를 받게 되는 그 상황들이 못견디게 힘든 것은 내세울 것도 없는 얄팍한 내 자존감이 바닥까지 드러나버린 것을 인정할 수 없는 나의 마지막 자존심 인 것 같다.


자존감이 높다 자부하며 평생을 살아온 나에게 결혼후의 삶은 아무리 생각해도 엄청난 변화임이 틀림없다. 아직은 인정할 수 없는 나의 모습들을 마주하게 되면서 겪는 성장통이 이 시간들인걸까?



물론 나 스스로를 제대로 직면하게 되면서 어떤 모습이 진짜 나 인가를 알게되는 좋은 순간들도 많이 있다.


마음속 깊은 곳에 숨겨놓고 꺼내지 않던 어린 시절의 상처들을 끄집어 내어 얘기를 하다보면 내가 조금 더 성숙해가는 느낌을 받기도 하고, 어른이 되고 달라진 내 모습들을 깨달아 가며 나의 지금에 위안을 얻기도 한다.


예전엔 미처 알수 없었던 이런 나의 모습들이 결혼으로 말미암은 것인지 퇴사로 인한 온전한 나의 시간들을 갖게 되어서인지 혹은 그 둘 다인지 잘 모르겠지만, 온전히 나에게만 집중하며 나 자신과 직면하는 것이 이토록 힘들고 어려운 일일거라 미처 생각지 못했다. 아마 아무런 준비없이 맞닥뜨린 상황들이라 더 그런건지도 모르겠다.



아내의 마음은 결단코 몰라주는 이 시대의 남편들. 예전의 내가 그랬던 것 처럼 누군가에게는 식상해빠지고 흥미없는 주제일테지만, 그 속에서 오늘도 수없이 많은 아내들이 울고 웃고 있는 현실도 존재함이 참 웃프다.


한없이 사랑하다가도 가차없이 상대방에겐 소시오패스가 되고 마는 것이 결혼 생활인걸까.


우리집 소시오패스 1번은 오늘도 잠을 자고, 2번은 오늘도 이렇게 수만가지 생각을 끄적여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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