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낙 밝고 씩씩하던 S였기에 출산 후 건강이 악화되었거나 명절을 앞두고 외출했다 사고를 당했을 거라지레짐작했는데 산후 우울증이라니.
우울증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던 밝고 적극적이던 S의 모습이 떠오르고, 엄마를 기억하지 못할 핏덩이 공주님이 자꾸만 생각나 마음이 미어진다.
가장 최근의 S를 나는 알지 못한다. 각자 선택한 삶에 충실하다 보면 가깝지 않았던 것들은 아주 멀어지기 마련이라 그녀의 최근이 어떠했을지 짐작조차 하기 어렵다. 하지만 한 달도 되지 않은 핏덩이 딸을 두고 세상을 등질 결정을 했을 S의 마음을 조금은 알 것 같아 너무 속상하다.
참 많이 외롭고 힘들었나 보다.
정말 많이... 많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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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보고서도 모두가 "너는 산후 우울증 따윈 없을 것 같아."라고 말을 하곤 했었다. 나 역시 그럴 줄 알았었다.
하지만 웬걸... 85%의 산모들이 겪는다는 산후우울증을 나 역시 피해 가지 못했었다.
말도 못 하는 아기만 종일 들여다보며 때맞춰 젖만 먹이는 일상 속에는 내가 없었다. 하루 종일 밖에서 일을 하다 돌아온 남편에게서도 나를 찾을 순 없었다.
책을 좋아하고 커피를 좋아하고 산책을 좋아하던 내가 사라져 버린 시간들, 그 시간을 버텨내는 것이 못 견디게 힘든 날들이 있었고 그런 날이면 한없이 우울해지곤 했었다.
아기는 너무도 작고 소중하고 아름다웠지만, 아기를 키우는 내 모습은 너무도 초라하고 보잘것없게만 느껴졌다. 세상의 절반이 당연히 해 왔던 그 역할을 제대로 해내지 못하는 것만 같아 두려웠고, 그 두려움을 누구와도 나누지 못해 마음이 답답했다.
나의 부족을 입밖에 꺼내면 안 될 것만 같아겉으로 잘 지내 보이는 그런 나날을 꾸며 보여내곤 했다.
괜찮은 척 행복한 척 좋은 척하는 그런 꾸밈말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아기만 보는 시간이 나와 맞지 않는 것 같아 다 포기하고 싶은 순간들도 많았고, 내려놓자와 그래선 안된다는 책임감의 고뇌는 온전히 나만의 몫이 되어 내 숨통을 죄여 오는 것만 같았다.
산후우울증은 할 일 없는 애엄마들의 사치 정도로만 치부해버리는 남편 앞에서 나는 더 침울해져만 갔고, 결국 그가 미워져 버렸다.
나를 예전처럼 소중하게 대해주지 않는 남편이 미웠고,
이런 남편을 선택한 내가 미웠고, 남편을 떠나지 못하게 만든 아이가 미워졌었다.
남편을 괴롭히기 위해 죽어버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내가 사라진 세상을 생각해보기도 했었다.
하루를 잘 보내다가도 이따금씩 슬퍼졌고, 이따금씩은 우울해졌었다. 아기를 웃게 하려 갖은 재롱을 부리는 이면에는 회의감이 쌓여만 갔다.
이러려고 결혼한 건 아닌데... 후회도 커져만 갔었다.
어쩌면 아직도 진행 중인지도 모르겠지만, 예전보단 많이 좋아진 게 확실하다.
결국 시간이 지나 내가 무뎌져 버린 건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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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보다 10살이 많은 언니가 있었다. 20살에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은 그 언니는 아들 셋을 2년 터울로 키우고 지금은 둘은 군대까지 보낸 상태이다. 같이 육아 이야기를 하다,
"근데 산후 우울증 그거 왜 걸리는 거야? 난 그런 거 없었어서 솔직히 이해가 안 돼. 뭐가 문젠 거지?"
라고 물었다. 나 역시 우울증에 걸려있다는 건 모르고서 물어본 것이겠지.
"언니는 너무 오래전 일이라 좋았던 기억만 남았나 봐요."
"아니야~ 힘들었던 것도 기억나는데 그냥 정신없고 바빠서 우울증 같은 건 생각도 못했던 것 같아서 그래. 요즘 엄마들은 시간이 많아서 그런 거 아니야?"
숨이 턱 막혀온다. 우리네 엄마들도 자주 하는 말이다.
"요즘 애들은 팔자가 참 좋아. 청소는 로봇청소기가, 빨래도 건조기가 다 말려주고 그릇은 식기세척기 돌리고. 밥은 맨날 사 먹거나 시켜먹음 되고 얼마나 편해~ 우리 땐 그런 거 하나도 없었다. 우울증 같은 거 걸릴 겨를이 어딨어? 애 키우고 집안일하고 바빠 죽겠는데."
결국 우리 땐 그런 거 하나도 없이 고생만 무진장했다로 끝나는 조언을 가장한 폭행들. 그 언니의 발언이 묘하게 엄마의 그것과 닮아있는 듯 느껴진 건 기분 탓일까?
그 언니가 아기를 낳은 시절은 잘 모르겠지만 어린 나이에 출산을 하느라 시가에 들어가서 지냈었다고 한다. 육아에도 적잖은 도움을 받았겠지. 그리고 아기를 봐주는 할머니 할아버지 고모 삼촌 이모 등등이 주변에 있었을 것이다.
사실 아기를 키우면서 가장 힘든 것은 고립이다.
결혼을 하면서 낯선 곳에 터를 잡아 동네에 아는 사람 하나 없이 아기와 둘이 덩그러니 떨어져 버린 상황을 옹기종기 친인척이 모여 살던 윗 세대 사람들은 모르지 않을까? 물론 안 그런 사람도 많겠지. 하지만 응답하라 1988에서 볼 수 있듯 2~30년 전에는 이웃과의 왕래가 지금처럼 끊겨있지 않았다. 가족보다 가까운 이웃사촌들과 한 동네에서 부대끼며 살았기 때문에 육아의 고통은 반감되었으리라 짐작해본다.
요즘은 전혀 그렇지 않다. 두 세대 사는 아파트의 옆집 사람을 알지도 못한다. 하루 종일 대화라고는 퇴근한 남편과 조금 나눌 수 있을 뿐이다. 남편이 회식이라도 하면 말 한마디 내뱉지 못한 채 하루가 끝나기도 한다. 마음이 답답해 어디라도 가보고 싶지만 어린 아기를 데리고 밖에 나가는 것에는 제약이 많아 주로 집에서 휴대폰만 들여다보고 있게 된다. 다들 그러다 보니 맘카페가 그토록 활성화된 듯싶다. 낯선 동네에서 외로운 엄마들의 살고자 하는 발버둥, 외로운 건 너 혼자가 아니야 라는 묘한 위로를 받고 나와 비슷한 동네 친구도 만드는 곳이 바로 맘카페임을 나도 출산을 하고서야 알았다.
하지만 이런 식의 교류는 나를 포장하고 꾸미느라 일종의 피로감을 동반한다. 멋들어지게 꾸며 입고 아기를 데리고 나갔다 집에 돌아오면 피로감과 함께 정체모를 무기력감이 엄습해온다. 거기에 퇴근한 남편이 동네 아줌마들과 백화점이나 쏘다니는 팔자 좋은 여자 취급을 하면 걷잡을 수 없는 우울감에 빠져버리고 만다.
그러면 이러려고 결혼했나 후회가 되기 시작하고, 결혼 전 혼자서 행복하게 잘 지내던 예전이 그리워지기 시작한다. 힘들게 입시를 치르고 좋은 회사에 입사해 능력을 인정받으며 승승장구하던 나날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면서 지금의 내 모습이 너무도 초라하게만 느껴지게 된다.
그 와중에 아기가 울면 달려가 안고 젖을 아기에게 물려야 한다. 그럴 땐 아기가 이뻐 보이기보다 아기의 젖통 신세가 되어버린 지금의 내 모습이 못나 보이기만 하게 된다.
그러면 또 아기를 보며 이런 몹쓸 생각을 하는 나 자신이 수치스러워지고 남들은 다 해내는 엄마의 역할이 나는 왜 이렇게 어려운가 하는 자괴감에 빠지게 된다. 그리고 이런 상황이 반복된다.
숭고한 어머니? 그런 건 다 이렇게 나약한 엄마들에게 강제최면이라도 걸어보고자 하는 상술에 불과한 것 같지만, 그 최면으로 엄마들은 억지로 버티고 또 버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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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에 태어난 우리는 원하는 걸 다 하고 갖고 싶은걸 다 가지며 자란 행운의 세대였다. 경쟁에서 이기기 위한 방법들을 배웠고, 삶은 그렇게 쟁취해내는 것인 줄로만 알았다. 남들보다 더 나은 삶을 살아야 한다 주입받으며 자라는 동안 부모님의 희생은 당연한 것인 줄로만 알았다. 그렇게 받기만 한 우리들은 부모가 되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전혀 모른 채 남들이 다 하니까 해야 한다는 결혼을 하고 출산을 했다. 육아는 지금껏 내가 살아온 모든 삶의 방식과 정 반대되는 것임을 직접 부닥치며 배워야 했다.
받기만 하던 내가 갑자기 주기만 해야 하는 사람이 되어 있었고, 나의 모든 것은 아기의 엄마라는 역할 뒤로 사라져 버렸다. 엄마라는 역할은 아무도 인정해주지 않았고 아무도 잘한다 해주지 않았다. 늘 무엇인가 쟁취하는 단기 목표를 두고 살던 우리에게 '육아'라는 끝이 안 보이는 장기 목표가 생겼고, 너무나도 길어 보이는그 목표는 삶의 전의를 상실하게 하기에 충분했다.
또 우리는 도와달라 손 내미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 돈을 주고 도우미를 쓰는 게 부모님께 도와달라 하는 것보다 편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대학부터 유학까지 타지를 떠돌며 부모님과 떨어져 지낸 게 십여 년이 넘어가는 우리에게 부모님은 가깝지만 먼 존재였다. 늘 잘한다 칭찬만 받던 부모님께 나의 힘든 모습을 보여드리기가 싫었다. 남들 다 하는 걸 제대로 못한다는 것을 인정하기 싫었고 남들에게 알리기는 더더욱 싫었다.
그렇게 혼자 세계 각지로 떠돌아다니면서도 제 밥그릇을 찾아 잘 살아온 우리들은 각자의 집에 고립되어 버렸다. 출산과 육아를 겪는 여자들이 지나왔을 이런 삶의 시간을 대부분은 잘 이겨내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도 있을 것이다. S처럼 말이다.
사실 간단한 문제이다. 누군가 한 명이라도 진정으로 손을 내밀어주면 된다. 이 모든 우울감은 혼자 남겨지고 아무에게도 위로받지 못한다는 고립감에서 비롯되는 것인데, 이 작은 위로를 가장 가까운 사람이 해주지 않으면
문제가 커지고 복잡해지게 되는 것이다.
O. 헨리의 마지막 잎새에서 존시는 하나 남은 잎을 보며 삶에 대한 희망을 이어나간다. 누군가의 마음을 위로해 주기 위해서 사실 크고 거창한 것이 필요한 것만은 아니다. 아주 작은 배려, 아주 사소한 행동이 누군가에게는 삶을 이어나갈 이유가 될 수도 있음을 우리는 너무 쉽게 간과하고 만다.
특별한 날에 하는 거창한 이벤트가 아닌, 평범한 일상 속에서 보여주는 사소한 배려가 하루하루를 이어가게 하는 마법의 끈이 되어 주는 것일 텐데.
오늘도 참 힘들었지? 고생 많았어.
이 한마디면 될 텐데 그게 참 어려운가 보다. 그런 상황을 잘 알기에 마음이 더 아프다.S의 끈을 이어주지 못한 건 그녀를 가장 필요로 하는 그녀의 소중한 가족 들이었을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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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더 힘들다고 해서 내가 안 힘든 건 아니다.
힘듦의 크기는 상대적이기에 비교가 불가능하지만 우리는 너무도 쉽게 나의 경험에 비추어 상대방의 고통을 평가절하하곤 한다. 그리고 출산 후 첫 육아를 시작한 상황에서는 이런 평가절하는 '이것도 못하면서 뭘 하겠어 그냥 나가 죽어.' 란 소리로 들리기도 한다. 이것은 당사자 개인의 문제만은 결코 아니다. 자존감이 낮아서, 사회적으로 부적응 성향을 원래 갖고 있기 때문에 등으로 잘못 판단되기 쉽지만 실로 이 것은호르몬이 그렇게 만들어 버리는 것임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출산 후에는 임신 내내 높아졌던 에스트로겐의 수치가 급격히 낮아지며 찾아오는 호르몬의 불균형에 더해 긍정 호르몬인 도파민을 억제하는 효소의 분비도 급격히 늘어난다고 한다.
평소에 아무리 밝고 우울증과 거리가 멀어 보인다고 해서 괜찮을 것이라는 과오를 범해서는 안 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모두에게 가장 소중한 것은 자기 자신이다. 그리고 그다음이 아마 가족이겠지.
이 정도는 괜찮겠지.
예전에는 안 그랬는데.
나도 힘들어서 너를 챙길 여유가 없어.
'나'가 우선이기 때문에 다른 것에 소홀해지다 보면, 그 다른 것은 영영 내 것이 아니게 되어 버릴 수도 있다.
소중한 것들을 항상 소중하게 생각하고 아껴주는 것이 나의 삶을 행복하게 이어주는 유일한 끈 임을 잊지 말았으면 좋겠다. 나 역시도 잊지 말아야지. 바쁘다는 핑계로 한동안 연락하지 못한 친구들에게 연락을 해 보고 싶은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