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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볕이드는창가 Mar 18. 2021

색, 계 (色, 戒)

탕웨이의 선택


■ 원어 제목: 색, 계 (色, 戒, 써졔)

■ 영어 제목: Lust, Caution

■ 장르 : 드라마 / 멜로

■ 년도 : 2007

■ 감독 : 李安

■ 주요 배우 :  梁朝伟,汤唯,王力宏 등



오늘 소개드릴 작품은, 아, 소개하지 않아도 아신다고요? ㅎㅎ 네, 아마 제목만 들어도 많은 분들, 특히 남자분들은 이미 고개를 끄덕거리고 계실지도 모르겠네요. 제목은 <색, 계(色, 戒)>라고 하고요. 사실 미국과 홍콩 자본으로 만든 영화인 데다 감독도 대만 사람이라 중국 영화라고 하기가 좀 뭐한데(앗, 이거 위험 발언인가요?), 그래도 다루고 있는 내용이 중국에서 실제로 존재했던 시기의 역사이고, 원작 소설도 중국계 작가 장아이링(张爱玲)의 소설이니 중국 영상물로 소개해도 무방할 듯합니다.


이 영화는 사실 저도 제목은 많이 들어봤습니다만, 내용이 어떤 것인지는 잘 몰랐습니다. 제목이 사람들 입에 회자될 때도 그 영화의 내용을 언급하기보다는 성적인 장면이 많이 나오는 자극적인 영화라는 점밖에 언급되지 않았죠. 왜 제목이 <색, 계>인지조차 깊게 생각해보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런 제가 이 영화를 보게 된 건, 상해 근교의 수향 마을 신창고진(新场古镇)을 갈 계획을 세우던 중이었습니다. 바이두 지도에서 신창고진을 검색하니 영화 <색, 계>의 촬영지라고 나오는 것이 아니겠어요? 기왕 가는 김에, 가기 전에 영화를 보고 가면 좋겠다 싶어 찾아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당시 중국의 모든 영상 관련 플랫폼 VIP 회원이었던 제가 이 영화를 찾질 못했습니다. 모든 플랫폼에서 이 영화는 예고편 정도밖에 없고 풀영상을 볼 수 있는 방법이 없었습니다. 이유는 아마도 여러분이 생각하시는 그런 이유겠죠? 검열을 피해 삭제를 한다고 했다는데도 영상 플랫폼에서는 다 못 보는 겁니다. 그래서 어찌어찌 여러 가지 경로를 통해서 겨우 볼 수 있었습니다. 과연 베니스 영화제 황금사자상 수상작 답더군요. 탕웨이는 너무 아름다웠고, 양조위는 너무도 섹시했습니다. 극 중 역할은 차치하고요.


방금 말씀드린 것처럼 이 영화는 상해를 대표하는 작가 장아이링(张爱玲)의 단편소설에 살을 붙여 완성한 영화입니다. 1940년대 일본에 의해 세워진 괴뢰 정부 왕위정부(汪伪政府) 시절, 국민당과 공산당이 수면 위아래로 혼전을 벌이던 바로 그 시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그래서 영화 곳곳에 근대 상해탄의 모습이 나옵니다. 특히 제가 당시 머물고 있던 난징시루(南京西路)의 장면이 많이 나왔죠. 주인공 왕쟈즈(王佳芝, 배우: 탕웨이)는 현대의 개념으로 하면 스파이입니다. 왕위정부의 고위층이자 대표적인 친일파인 이모청(易默成, 영화에선 주로 이선생으로 나옵니다)을 미인계로 유혹해 암살하라는 임무를 받습니다.


그 뒤의 내용이야 아마 잘 아시겠죠? 미인계로 타겟을 유혹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막상 결전의 순간이 다가오자 그녀는 자신이 이 남자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고, 절호의 찬스를 놓치고 맙니다. 때문에 정체가 탄로 난 여자 주인공을 남자 주인공은 죽이기로 결정하죠. 여기까지만 보면 그냥 적과 사랑에 빠진 스파이, 뭐 이런 단순한 내용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사실 이런 내용을 전달하는 과정에서 이안 감독은 등장인물 한 명 한 명의 미묘한 심리 상태의 변화까지 놓치지 않습니다. 같은 감독의 다른 영화 <음식남녀(饮食男女)>를 볼 때도 느꼈던 것인데, 비언어적인 상징들이 상당히 많이 숨어있습니다. 임무를 받아 작전에 투입되었을 때 여주인공이 보인 적극적인 태도, 하지만 막상 암살 대상과 성적인 접촉을 해야 함을 알았을 때의 당혹스러움, 그리고 분명 과한 임무를 부여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항일 운동이라는 대의를 내세워 여자 주인공을 압박하는 주변 사람들까지. 인물들의 심리 상태나 그들 사이의 관계가 굉장히 은근하게 표현됩니다.


영화의 제목은 사실 두 개의 단어입니다. 색(色)은 Lust, 욕망을 말하죠. 계(戒)는 Caution, 경계(警戒)를 말합니다. 개인의 욕망과 집단이 요구하는 경계 사이에서 흔들리는 인물들을 이야기합니다. 결론만 보면 역사라는 흐름 앞에서 개인은 결국 집단의 요구대로 행동할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계(戒)가 모든 것에 우선하지는 않는다는 것, 결국 어쩌면 사랑(愛)이나 마음(心)이 그 모든 것을 이기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마지막 장면을 보면 들게 됩니다. 이걸 표현하는 과정에서 또 그 섬세한 감정표현이 들어가죠.


이렇게 섬세한 감정표현을 중시하는 감독의 특징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본인의 작품에도 완벽을 추구한다는 점입니다. 작품 활동에 까탈스러운 이안 감독을 만나, 주연배우 탕웨이와 양조위는 영화 촬영 전에 아주 다양한 요구를 받고 준비를 합니다. 절강성 출신 탕웨이 언니는 상해 고위층 여인의 분위기를 내기 위해 악기도 배우고, 마작도 배우고, 치파오 입는 법도 배우고, 상해 말투도 배우죠. 양조위 오빠는 어떻게요? 장아이링의 소설에서 묘사한 이선생의 느낌을 갖기 위해 8kg이나 체중 감량을 하고, 홍콩 배우로서 너무 하기 힘든 보통화(표준어) 발음을 배웁니다.


하지만 이런 정성이 아쉽게도 막상 이 영화에 대한 대중들의 인상은 그저 에로틱한 영화, 삭제된 장면이 많아 무삭제판을 꼭 봐야 하는 영화 정도로밖에 남아있지 않은 듯합니다. 제 주변 지인들에게도 그렇고요. 탕웨이는 이 영화를 찍고 나서 중국 당국의 미움을 사 3년간 중국 영화 출연이 금지되었고, 한국과는 달리 중국에서의 이미지는 선정적인 영화를 찍는 배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게 되었습니다. 영화를 보고 나서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탕웨이의 이런 장면들이 정말 영화에 필요했을까? 굳이 그런 장면을 잔뜩 넣지 않더라도 충분히 인물의 감정선은 잘 드러났을 텐데. 이슈 메이킹을 위해 들어간 장면 때문에 여배우 한 명의 이미지가 훼손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요.


하지만, 결국은 탕웨이의, 양조위의, 배우 자신의 선택이었겠죠. 시나리오를 보지 않고 촬영에 동의하는 배우는 없고, 이런 장면이 전개상 포함되어 있고 이것을 촬영하는 것이 중국 연예계에서 어떤 것을 의미하는지는 탕웨이 자신도 분명 잘 알고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를 선택한 것은, 그것을 상쇄할만한 장점이 있다고 판단해서였겠죠. 결론적으론 이 영화로 탕웨이의 지명도는 확 올라갔고, 중국을 약간 포기하게 되었지만 글로벌 시장으로 진출하는 데는 성공했으니 말입니다.


상해에 있을 때, 이 영화를 본 뒤 얼마 되지 않아 좋은 기회로 위위안루(愚园路) City walk에 참여했습니다. 그때 이 영화와 관련된 실제 인물 딩모춘(丁默邨)이 왕위정부 시절 살았던 집이 그곳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왕위정부 당시 고위층 사람들은 대부분 위위안루에 모여 살았는데, 그래서 그들을 대상으로 한 암살작전을 펼치는 스파이(特务)들도 이 근처에 잠입해서 살고 있었다고 합니다.


이 동네에는 스파이 골목(特务弄堂)이라는 구역이 있었는데, 추격전이 벌어져도 어떻게든 빠져나가기 위해 막다른 것 같은 길에 작은 틈이나 구멍을 만들어두었다고 하네요. 스파이들의 처절함도 느껴지지만 당시 이곳에 살던 고위층 사람들도 참 피곤하게 살았겠다 싶습니다. 왕쟈즈와 이선생이 만약 그 시절에 만나지 않았다면, 색도, 계도 아닌 사랑으로 살고 있지 않을까요?


그럼 마지막으로 이 영화를 보고 나서 위챗에 올렸던 감상문을 공유하며 오늘 리뷰 마치겠습니다.

(스포가 있을 수 있습니다.)


[譯] 응, 나 역사 공부하려고 이 영화 본거야 ^^ 비록 실제 이야기와 조금 다르다곤 해도, 왕리홍(王力宏) 말고는 다 괜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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