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표를 사서 들어가는 기분이란
■ 원어 제목: 말대황제 (末代皇帝, 모따이황디)
■ 영어 제목: The Last Emperor
■ 장르 : 드라마 / 전기 / 역사
■ 년도 : 1987
■ 감독 :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 주요 배우 : 尊龙,陈冲,邬君梅 등
오늘 소개해드릴 작품은, <패왕별희> 급으로 유명한 영화죠? 아카데미 최우수 작품상에 빛나는 <마지막황제(末代皇帝)>입니다. 한자 표기로는 '말대 황제'라 제목에는 저렇게 적어두었습니다. 이 영화를 중국 영상물이라 할 수 있는지 의문을 제기하시는 분이 계실 수 있겠는데요. 그도 그럴 것이 이 영화의 감독은 이탈리아 사람이고, 배우들은 영어로 대사를 칩니다. 하지만 그들이 연기를 하는 배경이 되는 나라가 중국이고 중국에 실제로 존재했던 역사를 다루는 영화이니 일단 이 매거진에서 한 번 다뤄보기로 하겠습니다.
이 영화는 청 선통제의 자서전 <나의 전반생(我的前半生)>의 내용을 영화화한 작품입니다. 위안스카이를 제외하고, 중국 최후의 황제였던 선통제(애신각라 부의, 爱新觉罗 溥仪)가 황제가 되던 시기부터 청의 몰락과 함께 중국의 평범한 시민으로 돌아가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약 60년의 역사를 보여주는 작품이죠. 현존하는 영화 중 실제 북경에 있는 자금성(故宫)에서 촬영 허가를 받아 촬영한 유일한 작품이며, 이 때문에 마침 이 영화의 촬영 기간 중 중국을 방문했던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2세가 자금성에 들어가 보질 못했다는 안타까운 사연도 있습니다.
선통제가 살았던 시기는 참으로 변화무쌍하던 시기였죠. 군주제에서 공화제로의 전환도 있었고 일본의 침입도 있었으며, 일본의 괴뢰정부도 만들어졌고,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이 역전당하는 문화대혁명 같은 사건도 있었습니다. 그 시기에 그 사람들에게서 태어났다는 이유로 그가 겪어야 하는 일들이 참 많았죠. 그리고 이 영화는 그의 인생에 약간의 예술적 색채를 더해 좁게는 한 명의 인생, 넓게는 중국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게 만들어두었습니다.
사실 이 영화는 하도 유명해서 예전부터 제목은 알고 있었고, 2012년 북경에서 교환학생을 할 때 학교에서 방과 후 극장 같은 개념으로 강의실에서 특별 상영을 해준다길래 쫄래쫄래 가서 봤던 기억이 있습니다. 다만 러닝 타임이 너무 길어 강의실을 예약해둔 시간이 끝날 때까지 영화가 끝나질 않았고, 찝찝하게 후반부 일부분을 보지 못한 채로 기숙사로 돌아왔더랬죠. 그 뒤로 따로 찾아서 볼 생각은 못했는데, 2019년 중국에 있으면서 갑자기 이 영화가 떠오른 겁니다. 또우빤에서 평점 좋은 영화 리스트를 보다가 이 영화를 발견해서 그랬던 것 같네요. 덕분에 이번에는 끝까지 볼 수 있었습니다.
많은 분들이 이 영화를 떠올리면 표제에 보이는 저 꼬마 아이가 넓은 궁궐을 제집처럼(네, 진짜 자기 집이 맞긴 하죠) 뛰어다니는 장면을 가장 먼저 떠올리시던데, 물론 그 장면도 인상적이긴 했지만 저는 후반부에 주인공이 한 때 '제집처럼 뛰어다녔던' 궁궐에 들어가기 위해 표를 사서 들어가는 장면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옛날 자신이 앉았던 자리라며 숨겨둔 귀뚜라미를 꺼내는 모습이 좀 짠하기도 하고 그렇더라고요. 중국 정부가 그를 죽이지 않고 남겨둔 이유에는 사실 어느 정도 체제 선전을 위한 목적도 있었을 텐데, 살아남은 그는 중국에서 무엇을 느꼈을까 궁금해졌습니다.
저만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영화를 보면서 저는 선통제라는 인물이 좀 불쌍했습니다. 자신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어느 가정에 태어나, 서태후의 부름을 받고 황제가 뭔지도 모르면서 그 자리에 앉았고, 궐에 갇혀 아무것도 모르는 와중에 자신은 더 이상 황제가 아니게 되었고, 하지만 이미 어릴 때부터 황제로 사는 것이 습관이 되어 있고. 역사에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고, 결국 다시 황제가 되어보려고 했지만 이 역시 누군가의 농간에 불과했다는 슬픈 사실. 여러모로 자신의 의지보다는 역사적 흐름에 휘둘린듯한 느낌이 강합니다. 아마 이런 포인트가 이 영화가 사랑받는 데 영향을 주지 않았나 싶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간과해서는 안 될 사실은, 비록 시작은 그의 의지가 아니었다 할지라도 인생의 그 긴 여정에서 그에게는 여러 번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고, 그의 모든 인생이 그의 자유 의지에 반한 결정은 아니었을 것이라는 점입니다. 영화 자체가 당사자가 쓴 자서전에 기반하고 있어 어느 정도는 그의 변명과도 같은, 동정심 유발 작전이 가미된 점도 분명 있다고 생각합니다. 여기서 갑자기 드라마 <아적전반생(我的前半生)>의 제목이 선통제의 자서전 <나의 전반생(我的前半生)>과 같은 것은 왜일까 하는 의문이 드는데, 드라마에서 여주인공이 삶의 전반부를 후회하고 새 삶을 사는 모습이 나오니 어느 정도 비슷한 계열이라고 할 수도 있겠네요.
3시간에 가까운 러닝타임을 가졌지만 재생 버튼을 누르는 순간 시간이 순삭될 영화, <마지막 황제>였습니다. 그럼 마지막으로 이 영화를 보고 나서 위챗에 올렸던 감상문을 공유하며 오늘 리뷰 마치겠습니다.
(스포가 있을 수 있습니다.)
[譯] 2012년 인민대에서 학교 다닐 때 본 적이 있었는데, 그때는 시간이 별로 없어서 끝까지 보질 못했다. 요 며칠 다시 한번 보았는데, 3시간 반 러닝타임이네. 누구도 자신의 부모, 자신의 가정을 선택할 수 없으니, 내 생각엔 푸이 역시 역사의 희생양이 아니었을까 싶다. 어떤 일은 개인의 힘으로는 좌지우지할 수 없는 경우도 있으니.. 마지막에 푸이가 자금성에서 스스로 표를 사서 들어가는 장면을 볼 땐 정말 마음이 아팠다.
(※마지막 황제 푸이의 한자 이름은 溥仪인데, 이 글에서 잘못 표기하여 정정함)